1. 축복과 저주(18)
전오철은 시덥잖은 이야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김석문이 지난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제 무당을 처음으로 봤잖아. 그런데 어디서 한번 본 것 같더라고. 굉장히 낯이 익었어. 무당 생긴게 누구랑 헷갈릴 얼굴은 아니잖아.”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장군보살이라고도 하고 천화신녀라고도 부르는 무당은 상당히 진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얀 피부와 적당히 살이 오른 통통한 얼굴에 도화살이 낀 것이 가히 요부의 상이라 할 수 있었기에 특히나 남자들에게는 한번에 각인이 될 얼굴이었다.
“집에 가서 내내 생각을 해 봤는데도 떠오르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또 한 잔을 했지.”
그가 또 쓸데없는 말을 해대자 전오철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냥 요점만 말해.”
그는 꿋꿋하게 페이스를 유지했다.
“나는 술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니까. 역시 한 잔을 걸치니까 퍼뜩 떠오르더라고. 몇 달 전에 나랑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은 여자였어.”
전오철이 조금은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시비? 싸웠다고?”
“어. 애월이 아니었으면 진짜 크게 한판 붙었을 거야. 그 여자 완전 막무가내 싸가지였거든.”
김석문은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찌푸리며 쓴물을 삼켜냈다. 물처럼 들이켰던 소주가 위속에서 난리를 피우는 탓이었다. 그는 개운하지 않은 트림을 몇번 하고 나서야 인상을 풀었지만 속이 쓰린지 연신 가슴을 문질러댔다. 그런 그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 듯 이야기가 끊긴 것에만 신경을 쓰던 전오철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물었다.
“뭐 때문에 싸웠는데?”
김석문이 인상을 구긴 채로 말을 이었다.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어린노무 자식이 길거리에서 꼬맹이 하나를 두들겨 패고 있더라고. 꼬맹이가 “형 잘못했어” 하면서 애원하는데 들은 척도 안하더라고.”
전오철은 듣지 않아도 그가 어떻게 했을지 알 것 같았다. 이복 형의 학대로 인해 끔찍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가 그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가뜩이나 술에 취한 상태였다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내가 가서 한대 쥐어박았지. 근데 이 자식이 겁도 없이 덤비더라고. 그래서 몇 대 더 쥐어박았지. 그리고 나서 좋은 말로 타일러서 보내려고 했어. 꼬맹이가 잔뜩 움츠러져 있는게 안쓰럽더라고.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그렇게 맞을 정도면 집에서는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겠어. 아무리 형제라도 그러면 안된다고 좋게 말을 해줬더니, 그 어린노무 자식이 막 지랄을 하더라고. 꼬맹이하고 형제가 아니라고 말이야. 지금 생각해봐도 웃기단 말이야. 아니면 아닌거지 왜 그렇게 발작을 해. 아무튼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나더라고. 지 동생이 아니면 때려도 된다는 소리야 뭐야. 이 자식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겠다 생각해서 분위기 좀 잡았더니 그 여자가 나타난거야.”
“무당이?”
“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때렸다고 쌩난리를 피우더라고. 완전 미친년인 줄 알았다니까.”
전오철은 반신반의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어? 똑같이 해줬지. 쓰벌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 모양이냐고 막 지랄을 했지. 그랬더니 가만히 있는 애월이를 걸고 넘어지는거야. 나보고 술집 여자하고 놀아나는 주제에 웬 참견이냐고 하더라고. 니미럴 생각하니까 또 뚜껑 열리네.”
입술을 모아 길게 숨을 뿜어내는 김석문을 보며 손해식이 물었다.
“그래서 싸운거냐?”
김석문은 손해식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애월이가 말렸다니까요.”
손해식은 애월이 누구인지 알 지 못했으나 궁금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무당의 얼굴이 떠다닐 뿐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목전에 둔 처연한 눈동자의 여인, 그것은 김석문의 이야기 속 여자와 조금도 겹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신뢰도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김석문이 들려준 일화는 무당이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오늘밤 귀신을 물리치는 일에 무당이 어떤 마음으로 임할지를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전오철이 물었다.
“그게 끝이야?”
“그렇게 있는데 승용차 한대가 와서 서더니 다 타고 가버렸어.”
싱겁게 말을 마친 김석문은 소변이 마려운지 낭심을 붙잡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건물에서 세어나오는 불빛이 닿는 곳에 적당한 자리를 확인한 그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건물의 우측으로 풀숲과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 옆으로 심어진 어린 회양나무 앞에 선 그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일을 보려했지만 치렁치렁대는 도포 자락이 자꾸만 걸리적거려 제대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없이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도포 자락을 붙잡아 제치고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냈다. 그 볼썽사나운 모습에 인상을 구긴 전오철이 못미더운 듯 물었다.
“정말 무당이었어?”
김석문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맞어. 외투 안에 한복을 입고 있었다니까. 요즘에 누가 그렇게 입고 다녀.”
볼 일을 마치고 바지를 올려입던 그가 무언가를 보고 크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짧은 비명과 함께 욕설을 내뱉은 그는 헐레벌떡 일어나 바지춤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전오철은 그가 뭘 보고 그리 놀랐나 하여 유심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데 그래?”
“지네, 지네.”
김석문이 놀란 얼굴로 회양나무 밑을 가리켰다. 절둑거리며 다가온 전오철이 살펴보니 소변으로 적셔진 축축한 땅 위에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하여간 겁은 드럽게 많아.”
별 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떤 김석문을 향해 핀잔을 준 전오철은 자리를 지킨 채 지켜보는 손해식을 향해 말했다.
“별 거 아니에요. 형님. 시골 촌놈이 지네 보고 놀라 자빠지는게 별 일이죠.”
손해식의 얼굴에 처음으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엉거주춤 바지를 추켜 올린 김석문은 머쓱함을 지우려 전오철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제대로 봐!”
전오철이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어둠에 반쯤 묻혀있던 지네의 모습이 완전히 눈에 들어왔다. 그 역시 놀라 입을 벌리고서는 얼른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이렇게 큰 놈은 처음봤는데.”
유독 붉은 머리가 눈길을 사로잡는 지네는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은 몸통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길이도 두 뼘 가까이 되어 가히 압도적인 크기라 할 수 있었다. 오줌물을 잔뜩 묻힌 채 수십개의 다리를 꿈틀대고 있는 그것은 보기만 해도 소름을 끼치게 하였다. 두 사람을 경계하는지 대가리를 빳빳히 세운 그것이 정말 지네가 맞긴 한건지 전오철은 의심이 되어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그러나 함부로 다가가지는 못하였다.
“별 거 아니라며?”
은근히 놀려대는 김석문을 무시하고 전오철은 고개를 돌려 손해식을 바라보았다.
“형님. 이거 완전 물건인데요. 어지간한 뱀도 잡아먹겠어요.”
자신의 팔뚝을 내밀며 그 크기를 일러주는 전오철을 보며 손해식 역시 궁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는 회관 앞을 지키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곳에 신경쓰지 말고 돌아와 자리를 지키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김석문이 움직였다.
“꺼져. 이 괴물같은 놈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떨어지자 놀란 지네가 후다닥 자리를 피해 물러나자 김석문이 다시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는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지네를 죽이려는 듯 정확히 조준을 하여 던졌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전오철이 말리고 나섰다.
“야 하지마. 모르긴 몰라도 너보다도 오래 살았겠다. 저런 건 영물 아니면 귀물이야. 뭐가 됐든 건들면 재수없어.”
다시 돌이 날아와 떨어지자 지네는 몸을 돌려 달아나더니 가까운 곳에 있는 땅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걸 본 전오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이상하네. 지네가 왜 사람 다니는 길에 자리를 잡았데.”
지네라 하면 보통 어둡고 습한 곳에 서식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거대한 몸집을 가진 녀석이라면 원활한 먹이 공급과 수분 보호를 위해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햇볕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어린 나무 근처에, 그것도 사람이 다니는 길 옆에 떡하니 굴을 파놓았으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손해식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 말했다.
“그 밑에 땅이 다 썪었다는 거겠지.”
전오철은 조심히 다가가 회양나무 기둥을 붙잡고 앞뒤로 움직여 보았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그것은 곧 뿌리가 잘 내렸다는 의미였고 다시 말해 땅이 썪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토를 달지 않고 넘어갔다. 인삼농사를 짓는 손해식이 시내의 약방에 자주 드나든다는 것이 떠오른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약방 아재가 저 놈을 봤으면 환장했겠어요.”
가만히 지켜보던 김석문이 혹하여 끼어들었다.
“돈 좀 된다는 얘기야?”
“그럼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잡아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옮긴 김석문은 건물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며 무언가를 찾아나섰다. 부산을 떠는 그 모습에 손해식이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라는 듯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만두고 와서 자리나 지켜라.”
“잠깐만요. 어차피 금방 시작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동안 술값이라도 벌랍니다.”
건물 옆으로 사라진 김석문이 얼마 안되어 삽자루 하나를 쥐고 나타났다. 그는 곧장 회양나무 앞으로 가 지네가 들어간 구멍 옆으로 삽을 푹 쑤셔넣었다. 전오철이 그만 두라며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는 끝끝내 한 삽을 떠냈다.
“담배 한 갑이라도 얻어 피우려면 불 좀 비춰 봐봐.”
“에휴. 이 새끼 진짜 돈이라고 하면 환장을 해가지고는…”
한숨을 내쉰 전오철은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김석문의 옆에 서서 바닥을 향해 폴더를 열고 약한 불빛을 비춰주었다. 불빛이 미약하자 김석문이 한마디 하였다.
“앉아가지고 제대로 비춰 봐.”
전오철은 김석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그냥 해 새끼야.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하라고.”
김석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숙여 움푹 패인 땅 속을 살폈다. 지네가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삽을 들고서 조금 더 깊숙하게 찔러넣었다. 삽질에만 신경을 쓰는 그를 보며 전오철이 말했다.
“근데 맨 손으로 잡으려고?”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김석문은 한 삽을 퍼내며 말했다.
“일단 밖으로 꺼내 놓고 보자고.”
한 자 가량 퍼낸 땅 속에서 지네의 꼬리 부분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김석문은 지네를 피해 옆으로 삽을 꽂은 다음 무게를 실어 찔러넣었다. 무른 땅이었는지 삽은 저항없이 한번에 깊숙하게 들어갔다. 그는 있는 힘껏 삽자루를 뒤로 제꼈다. 거대한 흙더미에 지네가 딸려 나오는 것을 본 전오철이 한걸음 물러났고, 김석문은 그 옆으로 흙더미를 뒤집어 놓았다. 바닥에 닿은 흙더미가 갈라짐과 동시에 식겁한 두 사람이 욕을 내뱉으며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아우 깜짝이야.”
두 사람을 놀래킨 것은 수십마리의 새끼 지네들이었다. 땅속으로 숨기 위해 난리를 피우는 새끼 지네들을 따라 조금 전 보았던 대왕지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함인지 그것은 숨을 생각도 하지 않고 움푹 패인 땅을 천천히 기어다녔다.
두 사람의 호들갑에 손해식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전오철이 대답했다.
“새끼들이 바글바글 한네요.”
“그냥 살려줘라.”
손해식의 명령조에 김석문이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마을회관을 지네밭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어미를 잃은 새끼도, 새끼를 잃은 어미도, 오늘은 보고싶지 않다.”
공허함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손해식의 음성에 전오철이 김석문의 팔을 붙잡고 눈치를 주었다. 김석문은 아쉬움이 남는지 다시한번 지네를 바라보았다. 삽으로 한 번만 내려치면 끝이었이만 그는 더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있는 힘껏 팔을 꼬집는 전오철 때문이었다.
“아~ 아~ 알았어. 알았어.”
고통스런 몸부림을 치던 그는 삽자루를 옆으로 툭 던져버리고는 냉큼 전오철의 우악스런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꼬집힌 팔을 연신 문질러대며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아쉬움이 찐하게 남는 듯 계속해서 지네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손해식이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조금 전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금 전에 했던 그 이야기는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무당들이야 원래 기가 쎈 사람들이니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
김석문은 가뜩이나 아쉬움이 남아있던 판에 이런 말을 듣자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는 언짢은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했다.
“누굴 병신으로 아는거요? 내가 그런 것도 구분 못하고 주절주절 댈 것 같아요? 그때 그 여자는 기본조차 안된 인간이었다고요. 또라이도 그런 또라이가 없었다니까.”
날이 선 반응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손해식이 미간을 좁히며 조용히 꾸짖었다.
“나는 무당과 함께 죽으려 했다. 자식을 잃었기 때문이지. 오철이 역시 자식을 지키려고 이런 위험한 일에 나서는 거고. 네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무당도 사람이고 엄마인데 제 자식 감싸고 도는게 뭐가 어떻다는 말이야. 하물며 저 미물도 새끼를 지키려고 사투를 벌이잖아.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좋아요. 무당을 어떻게 생각하던 내 알 바 아닌데, 내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거요?”
손해식이 대답이 없자 그가 다시 물었다.
“내가 한 이야기 중에 이상한 거 없었냐고요.”
전오철이 그를 나무랐다.
“그냥 말 해. 이 새끼야.”
그는 언짢은 표정 그대로 슬쩍 돌아보더니 턱짓으로 마을회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무당 아들래미가 일곱살이라며?”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전오철을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때 그 버르장 머리 없는 놈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열 살은 넘었어.”
전오철은 김석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눈치를 챘지만 귀담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김석문이 쓸데없는 말만 늘어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였다. 이 주정뱅이가 벌써 몇 분 만에 정신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덕분에 회관 안쪽에 신경을 쓰는 일도 손해식의 눈치를 살피는 일도 모두 그의 몫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이 피곤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방법을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김석문을 보내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마을회관 안에서 누군가 빨리 나와주기를 바라며 그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작은 애가 또 있나보지.”
“그래. 그때 쥐어 터지던 그 애가 딱 일곱살 같이 보였는데. 때린 놈도 동생이 아니라고 하고, 무당도 자식 취급을 안 했단 말이야.”
“그럼 그 애가 아닌가 보지.”
이 성의없는 대답에도 김석문은 혼자 심각함에 빠져 골몰했다.
“그런가… 근데 왜 같이 차를 타고 갔지… 누구 그 아들래미 본 사람 있어?”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누구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손해식이 깨뜨렸다.
“원래 의심이란 게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는 법이야. 이해해. 넌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영배의 죽음을 지켜봤고, 무당의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봤어.”
손해식은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하던 영배의 모습이 떠올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무거운 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어갔다.
“인간 같지 않은 그 참혹한 모습을 직접 봤다면 귀신의 짓이라는 걸 믿지 않을 수 없을거야.”
김석문이 답답해하며 말을 끊었다.
“내내 말했잖아요. 나도 귀신이 한 짓이라는 걸 믿는다니까. 나도 들은 게 있다고.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요상하게 죽겠어요. 그것도 연달아서 말이야.”
“그럼 오늘은 무당을 도와 귀신을 물리치는 일에만 신경쓰자.”
손해식의 부탁이 담긴 말에도 김석문은 떨떠름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기가 막힐 정도로 염병을 떨었던 무당의 첫인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탓이었다. 과연 그 지랄맞은 모습으로 귀신을 상대할 것인지 궁금증이 일던 순간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만약에 귀신에 씌인게 애가 아니라 무당이면요?”
듣다 못한 전오철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냐.”
“편견을 좀 버리라니까. 무당이라고 귀신에 안 씌이라는 법 있어? 생각해 보니까 이게 더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무당이…”
손해식이 김석문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만해. 뭐가 되었든 오늘이 지나고 마을에 또 이런 변고가 생긴다면, 그때는 내손으로 무당의 목을 비틀어 놓을테니 걱정하지마.”
이보다 더 확실하게 걱정을 불식시키는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김석문은 이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혼자서 궁시렁거렸다. 지금 당장 그 입을 다물지 않으면 네 놈 목을 비틀어 놓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 폭력적인 말을 담담하게 받아낸 것은 다른 목소리였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주위가 흐트러져 있던 세 사람은 유리문 너머에서 들려온 굵은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구의 사내가 회관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멀뚱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대신해 전오철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분위기가 이상해 질 것을 걱정해 그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이쿠 도사님. 이제 시작하는 건가요?”
도사라 불린 이는 다름 아닌 영길이었다. 그는 며칠 산간에 악귀를 쫓는 전문 퇴마사로 둔갑해 있었다. 영배의 굿에 참관했던 이들은 그가 장구잽이 였음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런 어리숙한 이들을 속여 넘기는 일은 그에게 있어 손바닥을 뒤집 듯 가벼운 일이었다. 그는 심지어 범안마을에 나타난 역귀의 히스토리까지 지어내 아주 소상한 부분까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영배와 춘광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려진 역귀라는 망상의 씨앗을 그가 제대로 싹이 틀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웬만한 무당보다 더 무속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시시각각 상황에 맞추어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가 가진 재능이었다.
영길은 백색 장삼 위에 군청색과 주황색이 조화를 이룬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 두루마기의 등에는 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을 본 뜬 화려한 금장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기름칠을 하여 올백으로 넘긴 머리는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얼굴에 옅은 분칠을 하고 평범했던 눈썹도 아주 찐하게 그려놓으니 제법 남다른 뽐새가 흘렀다. 키가 크고 육중한 몸을 가진 그는 마치 신라시대 무신가의 귀족처럼 보였는데, 이토록 과하게 치장을 한 이유는 그가 오늘 행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차림새는 박수(博數)의 그것과는 달랐다. 굿을 펼치기 위한 의상이 아니라 제례(祭禮)를 올리기 위한 것으로 조금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는 그가 굿을 직접 주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잠시후 벌어질 대살굿을 주관하는 것은 도순의 몫이었다. 그의 등장은 잠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에 없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부담감이 아니라 설레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영길은 스스로가 무대 체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거짓으로 타인을 속이는 일에는 통달한 그였지만, 그것과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일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의 일이 있었으니, 바로 거짓의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것이었다. 이는 타고난 재능에 반사회적인 성격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도순처럼 말이다. 반사회적인 성격으로만 보자면 그가 훨씬 더 우위에 있었지만, 그에게는 군중들을 홀릴 능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순에게 무당의 일을 가르치고 그녀를 앞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일이 커져버렸다. 기껏해야 몇 사람을 속여 먹던 때에는 도순의 능력이면 충분했지만 오늘처럼 큰 무대에서는 제 아무리 도순이라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여전히 도순이었지만 적재적소에 심어진 나머지 배우들과의 조율은 그가 할 것이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조력자와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게 될 터였다. 물론 오늘의 일이 계획대로 마무리 된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길은 눈 앞의 세 사람을 보며 흡족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순에 대한 불쾌한 말들이 오고갔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바랬던 모습이었다. 저들끼리 아무리 가타부타 해보았자 역귀라는 허상에 빠져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의심이란 묵혀두는 것보다 밖으로 터져나와 공론화 되는 것이 좋다 할 수 있었다. 그 의심을 한번에 불식시켜 버린다면, 의심을 가진 자도 의심에 휘둘린 자도 누구보다 더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줄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저 정신산만한 주정뱅이를 끌어들인 것에 아주 만족하는 중이었다. 적당히 나불거리도록 놓아두었으니 이제 수습을 할 차례였다.
영길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아직이요. 저쪽 일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아 한번 가보려던 참입니다.”
전오철은 그가 손해식의 발언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자 다행이라 여기며 말을 받았다.
“뭔가 잘못된 걸까요?”
“글쎄요.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저쪽의 수심방과 소미가 워낙 고명하신 분들이니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수심방(首神房)과 소미(小巫)는 둘 이상의 무당이 함께 굿을 진행할 때, 굿을 주관하는 무당과 굿을 보조하는 무당을 각각 일컫는 말이었다. 전오철은 그것을 알 지 못했지만 당연히 무당들을 말하는 거겠거니 하며 넘어갔다.
“그런가요.”
“네. 서울에서 힘들게 모셔왔지요. 저와 깊은 인연이 있어 바쁜 일정도 미루어 두고 이런 곳까지 흔쾌히 와주셨습니다.”
영길이 은근슬쩍 스스로를 추켜 세우자 아니나 다를까 김석문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면 귀신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요? 왜 일을 어렵게 가는거요?”
영길은 김석문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마을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이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장이 먼저 마을의 골칫거리라며 김석문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이다. 그는 어쩌면 김석문을 이용할 수 있겠다 싶어 이장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었다. 그가 보니 김석문은 이장의 말 그대로였다. 술이 없으면 사람도 없는 듯 하였고, 술을 마시면 불쾌하고 불편한 인간이었다. 그 밑바탕에 복잡한 가정사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김석문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김석문이 영길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질문 속에 영길은 물론 도순에 대한 불신도 짙게 깔려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길은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어 미소까지 보이며 대답을 들려주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국의 무당들을 다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니 저보다 많은 무당을 만나본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갓난 아기일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였고 수 많은 무당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이후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넘어갔다.
“저는 영적 기운을 읽어내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이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어떤 영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때문에 무당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몸이었다. 그의 입에서 거짓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제가 본 무당들의 기운은 정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정말 무당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가는 이도 있었고, 눈만 마주쳐도 짓눌려 버릴 것 같은 대단한 기운을 내뿜는 이도 있었지요. 그런 분들은 정말 귀신도 알아서 피해갈 정도로 겁을 먹는답니다. 그렇지만 아주 보기 힘든 경우에요. 천화신녀께서는 그런 분들 중 하나입니다. 감히 단언컨데, 제가 본 무당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타고난 신력을 가지신 분이에요. 그렇기에 역귀도 겁을 먹고 숨어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쓸 데 없는 걱정은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는 김석문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귀신을 잡는 일만큼 저쪽의 일도 중요합니다. 역귀는 역병을 퍼뜨리고 희생된 자들의 혼을 먹어치우며 힘을 키웁니다. 아이에게서 역귀를 강제로 끄집어 내는 순간 역병에 희생당한 영혼이 이곳에 남아있으면 위험합니다. 때문에 먼저 두 영혼을 승천시켜야 하는 겁니다. 이곳도 안전하게 만들고 두 영혼도 지켜내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전오철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뜻이 있었군요. 저희는 단순히 영배와 무당의 부군을 위한 일인줄로만 알았네요.”
“굳이 굿판에서 이렇게 떨어진 곳에다 역귀를 가둬두고 금제를 한 것 또한 같은 이유입니다. 두 영혼을 승천시키려는 것을 역귀가 안다면 어떻게 움직일 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전오철은 근심이 싹 가셔버린 얼굴이 되었다.
“이제야 모든게 이해가 됐네요. 어서 다녀오세요. 여긴 저희가 완벽하게 지키고 있겠습니다.”
영길이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 전에 다들 잠깐 들어오시지요.”
마을회관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두 가닥의 금줄로 가로막혀 있었다. 세 사람은 금줄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꺼려지는 눈치였다. 전오철이 물었다.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아이가 조금 전 겨우 잠에 들었습니다.”
손해식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여기서 시작하는 겁니까?”
영길은 푸근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한가지 더 알려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일이 무슨 의미를 가진 건지 말이에요.”
손해식이 허리를 숙여 금줄 안으로 들어서자 전오철은 뒤에 빠져 있는 김석문을 불러 손으로 떠밀며 안으로 집어 넣었다. 안으로 들어선 김석문은 밖에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구슬픈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안쪽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살며시 열린 방문 사이로 무당의 뒷모습이 보였다. 흰색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녀는 아들의 몸을 감싸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축 늘어진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조금만 견디거라. 엄마가 꼭 살려주마. 내 목숨과 바꿔서라도 다시 살게 해주마.”
김석문은 무당의 등에 가려진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영길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혹 술을 드신 겁니까?”
진득한 술냄새로 인해 거짓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으로 막 들어선 전오철이 멋적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도사님. 그게…”
“조금 마셨소. 크게 문제될만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쇼.”
김석문의 당당함에 영길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십시오. 빨리요.”
위급함을 느낀 전오철이 먼저 밖으로 몸을 빼자 김석문과 손해식이 재빨리 뒤를 따랐다. 다시 회관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몸을 숙이며 금줄 밖으로 나오는 영길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회관 문을 닫은 영길은 전에 없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술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을 텐데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자 영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김석문이 잘됐다는 듯 전오철을 보며 말했다.
“들었지. 난 가라고 해서 가는거야.”
전오철은 김석문이 있어봤자 방해만 될 것 같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돈 문제를 그냥 넘어가 주는건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영길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영길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착수금으로 받으신 돈은 내일 중으로 돌려주시면 됩니다.”
요대를 풀고서 검은 도포를 벗어버리려던 김석문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왜 돈을 돌려줘야 되는데?”
영길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돌려주셔야지요. 엄연히 계약 위반이니 위약금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뉘미럴. 그렇게는 못하지. 이미 다 써버렸는데 어쩌란 말이요.”
김석문이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자 영길은 짐짓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그거야 그쪽 사정인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석문은 전오철을 향해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전오철은 인상을 푹 쓰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술은 왜 쳐먹어 가지고 지랄이야.”
김석문은 하는 수 없어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투는 여전히 뻔뻔하기만 하였다.
“일 안 망칠테니까 눈 한번 감아주쇼. 사실 내가 마실려고 해서 마신게 아니오. 저기 정자 위에 누가 멀쩡한 소주를 버려놨다니까. 안주도 뜯지 않은 채로 있었고. 그게 아까워서 내가 먹은 것이 아니오. 혹시나 동네 아이들이 마실까봐 내가 치워버린 것이지.”
말도 안되는 핑계를 들으며 다들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영길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제가 지금 걱정하는 게 그쪽인 걸 모르시는군요.”
김석문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오늘 역귀를 잡고 그 피를 성스러운 땅에 뿌릴 것입니다. 그래야 역귀가 다시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할테니까요. 귀신이야 신녀께서 물리치실 테지만 귀신이 뿌린 저주는 나도 신녀도 그 자리에서는 막아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얼굴에 액막이를 하고 저승의 사자처럼 보이도록 의복을 갖춘 것입니다. 준비한 것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 것들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음기가 강한 술을 마셔버렸으니 자칫 삼살방에 섰다가 살을 맞을수도 있단 말입니다.”
삼살방(三煞方)은 뭐고 살(煞)은 또 뭐란 말인가. 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동토(動土)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전오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토? 동투를 말하는 건가요?”
“네. 이 지역에선 그렇게 말하지요. 동토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건드려 저주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집안에 재앙이 닥치고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는 것이지요. 헌데 역귀의 저주는 동토보다 더 지독한 것입니다. 벌레가 살을 파먹듯이 몸이 조금씩 썩어들어갈 것 입니다. 음경이고 눈알이고 내장이고 가리지 않고 말이에요. 그것은 온 몸이 썩어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되지요. 그렇게 죽은 혼이 역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 되었지만 김석문은 얼이 빠진 채로 두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전오철이 나서서 영길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돈은 제가 돌려드릴테니 이 놈은 그냥 보내주세요.”
영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미 늦었습니다. 내내 역귀와 가까운 이곳에 있었으니 지금 빠진다 해도 그 음기를 쫓아 갈 겁니다. 차라리 저희와 같이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녀께서 살펴주실 수 있게요.”
김석문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요?”
영길은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목숨을 거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