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복과 저주(17)
불꽃은 힘을 잃어갔다. 키보다 더 높이 쌓아올린 장작더미는 무너져 내린지 오래였고, 굵은 장작들도 대부분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버렸다. 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반으로 또 반으로 줄여가던 불꽃은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몸을 완전히 누일만큼 약해져 있었다.
덩치 큰 청년 하나가 장작이 가득 담긴 외발 수레를 밀고와 모닥불 옆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어둠을 뚫고 나타난 장정들이 장작을 주워 모닥불 안으로 빠르게 던져넣었다. 수레는 두 번이나 더 왔다갔다 하며 장작을 쏟아놓았고 모닥불 속에서 어지럽게 자리를 잡아가는 장작더미는 금새 허리높이까지 쌓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먹잇감에 불꽃은 마치 악어를 삼킨 뱀처럼 버거워 보였다. 곧 덩치 큰 인영 하나가 양동이와 기다란 집게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집게를 이용해 천조각을 집어들더니 양동이에 푹 담가넣었다. 이내 들어올린 천조각은 기름에 흠뻑 젖은 상태가 되었고, 그는 그것을 얼른 불길 속으로 던져넣었다. 그가 수차례 같은 일을 반복하자 불꽃은 검은 유증기를 피워올리며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장작더미를 휘감은 모닥불이 봉화처럼 피어오르며 주위를 밝히자 어둠속에 묻혀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잡풀이 듬성듬성 올라온 흙바닥 위에 멍석을 깔고 앉아있는 한무리의 잽이들과 백색의 치맛자락이 휘날리도록 분주히 오가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공양주들, 어둠의 경계에서 그들과 모닥불을 애워싼 수많은 사람들, 이곳은 조금전까지 굿판이 벌어지던 현장이었다.
잠시 중단된 굿판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영배의 아빠, 손해식이었다. 그는 불빛 하나 없는 정자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극배우처럼 새하얀 칠을 해 놓았는데, 그 위에 붉은색으로 쓰여진 문자가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퇴병부적에 적히는 한자였다. 하늘과 땅(天地), 태양(日) , 귀신(鬼) , 역병(疫) , 벽사(弓) , 제물(彐 )을 의미하는 한자어가 조합된 것으로 실제 닭피를 이용해 쓰여진 것이었다. 이는 역귀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한다며 영길이 처방해 준 것이었다. 손해식의 의상 역시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새까만 도포를 걸치고 붉은색의 두터운 요대를 차고 있었는데, 요대 가운데에 달린 금속판에 무시무시한 도깨비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가 오늘밤만큼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주는 복장이었다. 그러나 어둠속에 파묻혀 있으니 기괴한 얼굴만 떠다니는 유령처럼 보였다. 이 야심한 시각에 누군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전부 그와 100미터는 더 떨어진 굿판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정작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손해식은 오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역귀를 물리치는데 선봉이 될 것이었다. 그것은 거북한 일이었고 불편한 일이었다. 또한 위험한 일이었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그가 자처한 것이었다. 영배를 고통속에서 죽게 한 더러운 존재를 응징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편을 잃은 무당의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 막중한 임무를 위해서 그는 영배와의 마지막 인사마저도 포기하였다. 그것이 아버지란 존재의 이유라 그는 믿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굿판에서는 역귀에게 희생당한 영배와 춘광을 위한 진오귀굿이 진행 중이었다. 그것이 끝나면 비로소 역귀를 쫓기 위한 대살굿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는 빨리 의식이 시작되기를 바랬다. 모든 것을 끝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진오귀굿은 계속해서 지체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시작된 굿은 벌써 네 시간 째 이어지고 있었다. 예상치 않게 길어지는 바람에 모닥불까지 다시 지피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만간 굿이 재개될 테지만 언제 마무리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거운 표정을 한 그는 모닥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정자에서 내려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슬래브 형태의 건물에 두 겹의 금줄이 둘러져 있었다. 금줄에는 돌돌 말아놓은 노란 부적이 2미터 간격으로 꼽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붉은색의 깃발이 붙어 있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 바닥에 뿌려놓은 굵은 소금은 1척의 두께로 일정하였고, 그 중 반절은 말피가 뿌려져 시뻘건 색을 띠었다.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이 건물이 마을 중심에 위치한 회관이었다. 이곳에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출입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두 남자는 손해식이 갖춘 복장과 분장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입구를 막고 서 있으니 회관은 마치 호러쇼가 열리는 공연장 같이도 하였고 사이비 종교의 집회장 같기도 하였다. 그들은 마을의 토박이 청년들로 손해식과 함께 오늘 의식에 참여할 이들이었다. 지금은 세 사람이 돌아가며 회관의 경비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한 살 터울의 선후배로 아주 막역한 사이인 두 사람은, 손해식과는 평소에 인사만 하고 지내는 정도였을 뿐 그리 친분이 두텁다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손해식이 이들보다 예닐곱살 가량 나이가 많았을 뿐더러 주로 마을의 어른들과 어울려 지냈기에 이들에게는 한참 항렬이 높은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데면데면하다 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자식을 잃고 비통함에 빠져있는 손해식이 두 사람에게는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경비를 서고 있던 손해식이 자리를 비우자 두 청년이 기다렸다는 듯 잡담을 시작했다.
“오철이형, 근데 이 무당 진짜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껄렁대는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연 이는 김석문이라는 자였다. 넙데데한 얼굴을 가진 그는 실상 그리 작은 키가 아님에도 배가 불룩 나와 있어 키가 작아 보였다. 적어도 농사꾼은 아님은 알 수 있는 몸매였다. 말하는 태도에서 진중한 성격은 조금도 엿 볼 수 없는 그는 긴 시간동안 어떻게 입을 닫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연신 조잘거리더니 상대가 반응이 없자 겁도 없이 목소리를 키웠다.
“조용히 말해. 들으면 어쩌려고.”
김석문을 나무라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는 전오철이라는 자였다. 깡마른 몸매에 굵은 목소리를 가진 그는 착실한 시골 농사꾼처럼 보였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느릿느릿한 말투에 충청도 사투리가 심하여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안 믿으면 어쩔건데? 돈까지 다 받아 놓구서.”
전오철이 주의를 주었음에도 김석문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까짓 돈이야 돌려주면 그만이지. 염병할. 진작에 이 촌구석을 벗어났어야 됐는데. 귀신이라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너 임마 그 돈, 벌써 애월이한테 홀랑 가져다 바친 거 모를 줄 알아.”
김석문이 뜨끔한 듯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늬미럴. 이 촌구석은 비밀이란 게 없어.”
그의 반응을 본 전오철이 황당해 하며 말했다.
“그냥 해 본 말인데 진짠가 보네. 이 새끼야 너 진짜 정신 안 차릴래.”
김석문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빌려준 거야. 전셋집 얻을 돈이 부족하다잖아.”
“넌 순진한 거냐 아님 멍청한 거냐? 그런다고 걔가 너한테 시집이라도 올 줄 알아?”
“인생이야 모르는 거지.”
“너 진짜 다방 레지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전오철이 한심해 하자 김석문이 발끈하며 말했다.
“뭐가 어때서? 형도 참 노인네처럼 구네. 선입견을 버려. 다 사연이 있는거야. 애월이가…”
“됐다 됐어. 그래. 그 돈으로 방구석에 쳐박혀서 인터넷 도박이나 하고 되도 않는 주식에 날리는 것보다는 낫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전오철이 내키지 않는 말투로 넌지시 말을 이었다.
“박영감이나 조심해라. 그 노친네 요즘 애월이 다방에 자주 들락거린다더라.”
“박영감? 누구 말하는 거야?”
“부영상회 박대술 영감.”
김석문이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뭐? 그 미친 노인네?!”
전오철이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을 해보이며 대답했다.
“그래.”
김석문은 이를 바드득 갈면서도 깨림칙한 표정이었다.
“이런 씨벌. 진짜야? 이 썩을 놈의 영감탱이를 그냥 확.”
“아서라 아서. 그 노인네 괜히 건드렸다가는 이장이 나서서 니네집부터 뒤집어 놓을 거다.”
“이장이 왜?”
“박영감이 이번에 굿하는데 큰 돈을 내놨다더라. 우리가 받은 보수도 다 박영감 주머니에서 나온거란 말이지.”
“뭔 소리야? 굿 한다고 집집마다 돈 걷어 갔잖아.”
김석문이 순진한 표정으로 말하자 전오철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야 그거 몇 푼 걷어서 이게 되겠냐? 해식이 형님한테 물어봐라. 그때 영배 굿하는데 얼마 들었는지. 아마도 차 한대 값은 들어갔을 거다. 이번에 하는 굿은 그거랑 비교도 안되게 커. 근데 이 마을에 사람 얼마나 된다고, 그깟 푼돈 걷어서 충당이 되겠냐?”
김석문이 넙대대한 아래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근데 그 미친 노인네가 마을 굿하는데 왜 돈을 대줘?”
전오철은 오랜시간 서 있던 탓에 피곤함이 밀려오는지 하품을 길게 해대며 말했다.
“돈이 많아서 쓸데가 없나보지.”
“늬미럴. 그거 다 처자식 물귀신 만들어서 번 돈이잖아.”
“난 그 말 안 믿는다니까. 그 양반, 돈이야 원래부터 많았어. 보험도 남들보다 많이 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효자에다가 인심도 좋다고 사람들한테 평판이 얼마나 좋았는데. 그렇게 점잖은 양반이 그런짓을 했다는 게 상상이 되냐? 처자식 잃고서 정신나간 거 봤잖아. 그게 연기처럼 보이냐?”
“그 영감탱이 미친 건 확실하지. 귀신 잡는다고 요상한 곤봉에 그물에, 소금이니 팥이니, 마늘팔찌에, 별 희한한 것들은 죄다 가지고 다니면서 동네방네 시끄럽게 해쌌잖아. 아니. 근데 씨부럴 이 미친 인간이 왜 우리 애월이네 가게에 드나드냐고 찝찝하게.”
전오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이제껏 한 말은, 박영감이 아니라 애월이 수작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애월에게 푹 빠져버린 김석문은 눈과 귀가 멀어버린 듯 하였다. 그는 이 사실을 확실하게 말 해줄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괜히 김석문의 성질만 돋구어 시끄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에효. 너는 참 순수해서 좋겠다. 세상살이가 아주 행복하겠어.”
전오철의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김석문이 불만 가득한 투로 말했다.
“형은 진짜 그런식으로 돌려 말하지 말라니까.”
전오철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자고로 여자를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다. 이 자식아.”
김석문이 콧방귀를 끼더니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전오철이 급하게 눈치를 주었다. 인기척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둠속에서 자갈길을 걷는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가오는 이가 손해식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어둠을 뚫고 손해식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사람은 식겁하였다. 두 사람의 눈에는 피칠갑을 한 새하얀 얼굴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손해식이 다가오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뭘 그리 놀라나. 자기들도 똑같은 얼굴을 해놓구선.”
전오철은 손해식과 김석문의 얼굴을 슬쩍 번갈아 보았다. 분명 똑같은 분장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른 명태처럼 홀쭉한 손해식의 얼굴과 돼지머리처럼 넙적한 김석문의 얼굴이 전해주는 느낌은 어쩌면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것은 그런 단순한 차이가 아니었다. 생기를 지우고 한기와 독기만을 남긴 손해식의 얼굴은 귀신과 맞서기 위해 스스로 귀신이 된 자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썩은 심장이 한독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전오철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굿은 어떻게 되가요?”
손해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더 늦어질 것 같네.”
“정말 안가보셔도 되겠어요?”
전오철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손해식은 오히려 정색을 하며 꾸지랐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군. 역귀가 이 안에 있는데 내가 가긴 어딜 가나.”
무안에 하는 전오철을 보며 김석문이 불만 가득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귀신이랑 멱살잡이라도 하시려나 보네.”
손해식이 김석문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못 할게 뭐가 있나.”
애월과 박영감의 이야기로 심기가 불편해져 있던 김석문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거기에 우린 끼워넣지 말아요. 귀신 잡는 일이야 무당이 할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요. 형님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엄한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트리지 말라고요.”
전오철이 나서 김석문을 타박했다.
“야 형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리고 이게 남 일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를 위한 일이잖아.”
“누가 차기 이장 아니랄까봐 마을 위하는 척은 되게 하네. 오바하지마. 우린 돈 받고 잡도리 해주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김석문의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전오철은 사람들 사이에서 젊은 이장이라 불리울 정도로 마을의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특별히 나서길 좋아하거나 오지랖이 넓어서는 아니었다. 그는 왼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경운기에 깔리는 사고로 인한 것이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던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경운기를 직접 몰고 다닐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귀한 독자였던 그를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 출세길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그의 부모가 가진 바램이었지만, 가난한 농가의 형편은 든든한 뒷바라지를 해 줄 만큼 넉넉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농사일에 자식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날이었다. 약주를 한잔 걸친 아버지를 대신해 경운기를 몰고 귀가하던 그는 어둑해진 길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아이를 피하려다 경운기와 함께 도랑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해 아이는 다친데 없이 무사하였지만 그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군대도 가지 못하였고 미래의 꿈들을 접어둔 채 일찌감치 농사꾼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최악의 일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가 몸을 희생하여 구한 일곱살 아이가 공교롭게도 군수의 하나뿐인 손자였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의 집안에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두 마지기 논과 소 한마리가 전부였던 소작농의 집안은 한순간에 마을에서 제일 크게 농사를 짓는 집이 되었고 열마리의 소가 늘어나 버렸다. 또한 정부에서 지원하는 농촌 진흥 사업에서 빠지지 않고 혜택을 누렸으며, 트랙터와 콤바인 등의 현대식 농기계들을 지원받아 대규모 농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개미처럼 일해도 이룰까 말까 한 일들이 불과 몇년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런 변화들이 비단 그의 집안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가 문제를 일으켰을 테지만, 마을 전반에 걸친 지원이 이루어지며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빚을 진 것이나 진배없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와 그의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고, 그 중 한 집안과는 혼담이 오가더니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성사되었다. 그렇게 가정을 꾸린 전오철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아이를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범안마을은 이렇듯 그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다. 태어나 한번도 바깥세상으로 나가 본 적 없는 전오철에게 마을은 세상의 전부나 다름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딸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마을의 안녕을 지켜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라 해도 평소 이런 마음가짐을 하고 있던 그는 김석문의 말이 자신을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상하였다. 그가 비꼬우듯 대답했다.
“다 너처럼 사는 게 아니다 임마. 책임감이란 걸 가져봐라.”
김석문은 아랑곳 않고 할 말을 하였다.
“처자식 두고 먼저 저승 구경가는 게 책임감이야?”
전오철이 한심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장가도 못 간 네놈이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그래. 모른다. 그래서 묻는 거잖아.”
고깝게 반응을 한 김석문이 불현듯 손해식을 보며 물었다.
“해식이 형님. 멀쩡한 마누라두고 자식따라 저승길 가는게 책임감이요?”
손해식은 가늘게 뜬 눈으로 김석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놀란 것은 전오철이었다. 김석문의 발언이 경솔하다 못해 확실히 선을 넘어버렸다고 생각한 그는 철딱서니 없는 아우를 호되게 나무랐다.
“이 자식이 미쳤나.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뚫린 입이라고 다 내뱉는게 아니야.”
“뉘미럴. 궁금한 것도 못 물어봐?”
김석문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전오철은 뒷목이 싸늘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설마 너 술 먹었냐?”
그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으며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는 다짜고짜 김석문에게 다가가 코를 들이대며 술냄새가 나는지 확인하였다. 김석문의 숨결에서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겨나오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짧은 욕을 내뱉었다.
“언제 쳐먹은거야!”
“뭘 먹어?”
김석문이 태연하게 발뺌을 하자 전오철은 거친 손길로 김석문의 바지춤을 더듬었다. 김석문의 허리 뒤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지자 그는 냅다 김석문의 팔을 붙잡고 한손으로 옷자락을 들췄다. 그러자 두터운 요대에 감추어진 소주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씨벌. 내가 오늘은 절대 안된다고 했지.”
전오철이 역정을 내자 김석문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도 긴장 좀 풀자. 이게 보통 일이야. 귀신이랑 엉겨붙어 부르스를 출지도 모르는데.”
“이 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술 안 먹는 조건으로 일하게 해 준 거 아냐.”
술병은 반쯤 비어 있었다. 손해식보다 먼저 자리를 비웠던 김석문이 그 몇 분 사이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술을 마시고 온 모양이었다. 내내 자리를 같이 했던 김석문이 대체 언제 술병을 챙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오철은 남은 술을 바닥에 부어 버렸다. 그 모습이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인 김석문이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게 다야. 쬐금 밖에 안 먹었어. 걱정할 정도 아니라고.”
전오철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작 몇 잔만 마시고 술을 남겨왔을 리가 없었다. 저 무식한 소대가리 같은 인간이 그 정도로 절제라는 걸 알었다면 애초에 이런 무책임하고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인사불성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까운 풀숲으로 무심하게 술병을 던져버린 그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손해식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자 김석문이 대뜸 불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까지 해. 내가 뭐 죽을 죄 지었어?”
전오철은 김석문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이장의 말에 그는 마을의 몇 안되는 젊은이들이 전부 이번 일을 거절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굿판에 올라 귀신을 상대하는 생경한 일을 누가 섣불리 나설 수 있겠는가. 그것도 벌써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주 지독한 역귀에게서 생판 남인 무당의 자식을 구해내는 일에 말이다. 제 아무리 담력이 쎄다 한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 입을 꾹 닫고 있었으면 되었을 것을 김석문을 입에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당연히 반대할 줄 알고 농담처럼 던져 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이장은 파격적인 조건까지 제시하며 김석문을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되려 그가 황당해 하며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범안마을은 외지인의 출입이 지극히 드문 곳으로 어지간해서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이 마냥 평화롭다고만은 할 수 없었는데, 늦은 밤이 되면 이따금씩 벌어지는 소란 때문이었다. 귀신을 잡겠다며 온갖 괴기스런 도구를 챙겨다니며 사람들을 놀래키는 박대술 영감과, 고주망태가 되어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 김석문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망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노인과 억눌린 감정을 술에 취해 뿜어대는 주정광 청년, 두 사람이 빚어 낸 소란은 늘 똑같았다. 적개심과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분노의 절규였다. 이 음울한 광끼를 마주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즐겁지 않은 경험을 해야만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비교적 동정어린 시선이 작용하는 박대술 영감과 다르게 김석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가움과 멸시만이 가득했다. 이런 차이가 빚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지만, 결정적인 것은 바로 박대술 영감의 분노는 귀신을 향해 있고 김석문의 분노는 사람을 향해 있다는 것이었다.
김석문은 서른살이 훌쩍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도 없었고, 멀쩡한 사지를 놀려 땀흘리는 법도 알지 못하는 놈팽이였다. 집에서조차 불량품 취급을 받는 그는 주로 방구석에 쳐박혀서 주식과 온라인 도박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사실만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고, 평소에는 과묵하고 소심한 성격의 그가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되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운이 좋아 돈을 딴 날에는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나 주식이 떨어지거나 도박으로 돈을 다 탕진한 날에는 술을 잔뜩 마시고 나와 동네방네 고성을 지르며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였으며,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가가 세상의 부조리와 삶에 대한 불평불만을 거칠게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동조하지 않으면 곧바로 욕설을 퍼부으며 시비를 걸어댔고, 이로 인해 싸움으로 번진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조용히 찾아와 쭈뼛쭈뼛 사과를 건네는 그에게 순박한 사람들은 매몰차게 대하지는 못하였다. 그저 상대할 가치없는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하며 피할 뿐이었다.
전오철은 마을 내에서 유일하게 김석문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렇기에 이장이 그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는 몇 번을 고민해 보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설령 마을의 축제가 열린다 해도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 김석문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술에 취해 여기저기에서 분위기나 잡치고 다닐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이번 일은 남다른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필요로 했다. 그런 면에서도 김석문은 자격미달이었다. 술과 노름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한심한 한량의 인생에 무슨 책임감이 있겠는가.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영배의 장례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정도로 사회성이 결여된 자에게 무슨 공동체 의식이 있겠는가.
그러나 전오철은 이장의 집요한 부탁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하였다. 마을에 민폐만 끼치고 사는 김석문도 한번쯤은 마을을 위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설득이 된 것이다. 그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김석문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김석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늘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가 어쩌면 마을에 대한 소속감을 조금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미우나 고우나 고향땅에서 함께 자란 동생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기를 바랬다. 김석문이 왜 이렇게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오철이 김석문과 가까워진 것은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고 난 뒤였다. 그가 수술을 위해 입원 중이었던 병원에 김석문이 입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오다 가다 마주치며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말을 섞는 사이는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병실을 쓰게 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꽤나 남자답고 활력이 넘치는 전오철에 비해 김석문은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주로 전오철이 말을 걸면 김석문이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김석문은 한가지 질문에는 절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그렇게 다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지고 얼굴이 많이 상한 것이 누구라도 폭행의 흔적임을 알 수 있었지만, 누가 왜 그랬는지는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웃집 대소사가 제 집 일처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작은 마을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전오철은 김석문에 대해 관심이 없이 살아왔을 뿐 알아내려 하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물어 알게 된 사실은 이러했다.
김석문에게는 나이차가 열 살 이상 나는 형이 둘이나 있었다. 그 중 둘째형인 김차성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을 때려 경찰서에 들락날락 거리는 삼류 건달이었다. 마을에서도 말썽꾼으로 유명했기에 전오철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차성과 김석문이 형제지간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가 났고 닮은 구석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김차성은 아직 어린 동생에게도 상습적으로 폭력을 가했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김석문이 병원에 입원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차성은 왜 어린 동생을 이리도 괴롭게 하는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이유는 있었다. 김석문이 배다른 형제였던 것이다. 김석문은 아홉살이 되어 범안마을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던 아버지가 본처에게도 돌아오며 데리고 온 것이었다.
김석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전오철은 가깝게 지내며 제 동생처럼 잘 챙겨 주었다. 그나마 전오철이 있어 김석문은 불우한 학창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을 무렵 김석문은 마침내 김차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습관처럼 주먹질을 해대던 김차성이 제대로 사고를 치며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폭행죄로 재판을 받던 기간에 피해자가 사망하며 소장은 상해 치사로 변경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감방에서 보내야 하는 김차성의 운명이 김석문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었을까? 그렇지 못하였다. 삶에 대한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던 김석문은 억눌린 삶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쳐박혀 지냈다. 꽤나 오랜 시간을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살았던 김석문은 어느날부터 주정뱅이가 되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김차성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있고 난 뒤였다.
전오철이 보기에 김석문의 삶에 희망은 없었다. 제 입버릇처럼 말하는 촌구석을 벗어나는 일도, 애월이라는 요망한 계집과 가정을 이루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삶이 계속 된다면 말이다. 그는 어쩌면 마을에 닥친 재앙의 그림자가 김석문의 삶을 조금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하던 이웃들도 외부의 적이 나타나면 한 편이 되어 싸우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역귀라는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악에 대항하는 일이었으니 약간의 위험만 감수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펼쳐질지도 몰랐다.
김석문을 찾아간 전오철은 다짜고짜 돈봉투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장에게 부탁해서 받은 수고비 명목의 돈을 제 몫을 제하지 않고 모두 담은 것이었다. 설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룻밤 고생하여 두 달치의 급여를 벌 수 있는 일이었으니 일은 하기 싫지만 돈이 궁한 김석문에게는 두말 할 것 없이 좋은 기회였다. 전오철은 김석문에게 한가지 다짐을 받아낸 뒤에야 돈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날만큼은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김석문의 술주정을 걱정해서 이기도 했지만 무당의 당부이기도 하였다. 음기를 끌어모아 살을 대살굿판에 부정이 타게 되면 잡귀들이 들끓어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것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전오철은 알 지 못했지만 어찌 되었든 온전한 정신으로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상식이었다.
전오철은 화를 꾹 참아내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무당이 술은 절대 안된다고 했잖아. 부정탄다고. 일 잘못되면 니가 책임 질거야?”
“내가 왜 책임을 져? 그건 다 무당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거지.”
김석문의 뻔뻔한 태도에 전오철은 한숨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생각을 해 봐. 나 같은 놈 하나 때문에 망칠 일이었으면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리지를 말았어야지. 다 핑계라고. 내가 한두번 당한 줄 알아. 자칭 전문가라는 놈들이, 처음에는 지들 말만 들으면 다 잘 될 것처럼 해 놓구서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존나게 핑계를 대요. 지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다 지들 말을 정확히 안 따라서 그렇대. 이 개새끼들.”
말을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른 김석문은 거칠게 침을 내뱉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손해식이 무거운 얼굴로 묻자 전오철이 급히 끼어들었다.
“형님. 신경쓰지 마세요. 이 새끼 이거 또 주식 얘기 하는거에요. 야 임마. 주식 얘기를 왜 여기다 같다 붙이냐.”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어. 주식판이랑 굿판이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니까.”
전오철은 적당히 하라는 눈치를 주면서도 마지 못 해 대꾸를 하였다.
“뭐가 비슷한데?”
김석문은 두 눈에 힘을 팍 주며 책을 읽듯이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놈들이 판을 지배한다.”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을 향해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놈들 말에 놀아나는 수 밖에 없다는 거야.”
손해식이 물었다.
“무당이 가짜라는 말이냐?”
김석문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나야 모르죠.”
“이 새끼가 장난하나.”
전오철이 당장에라도 요절을 낼 것 처럼 눈알을 부라렸다.
“말했잖아. 우리 같은 일반인은 알 수가 없다고.”
“그럼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해. 책임지지도 못 할 말 지껄이지 말고.”
“나도 그러고 싶어. 적당히 놀아나는 척 해주다 빠지고 싶다고.”
“그런데 왜 니 멋대로 술까지 쳐마시고 지랄이야.”
“불안해서 그런다고.”
“이 새끼야 그렇게 귀신이 무서우면 애초에 못하겠다고 했어야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도 큰소리를 내지 못 하는 전오철과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김석문의 투닥거림은, 기괴한 분장과 요상한 차림새를 무색하게 할 만큼 우스워 보였다. 김석문이 얕은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늬미럴 귀신 안 무서워 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 말 하는 인간들 다 거짓말이지. 진짜로 귀신이 눈 앞에 나타나 봐. 당장에 도망가거나 오줌을 질질 흘려대거나 둘 중 하나지. 근데 그건 그거고, 내가 진짜 불안한 건 무당이라고.”
전오철 역시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물었다.
“대체 무당이 뭐가 문젠데?”
김석문이 손해식과 전오철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몇달 전에 시내에서 무당을 봤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