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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15화

땅구

1. 축복과 저주(15)

by 유봉


“연희가 요새 많이 무리를 했나 봅니다.”

정은실이 말했다. 올해 28세로 교사생활 3년차에 접어든 그녀는 연희의 담임선생이었다. 통이 큰 검은 정장바지에 베이지색의 목티셔츠로 깔끔하게 스타일을 한 그녀는 생머리를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려 차분한 이미지를 주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는 피곤함이 어렴풋이 묻어 있었는데, 근 이주일동안 영배의 일부터 연희의 부친상까지 이어진 결과였다. 그저 피곤한 탓인지, 원래부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걱정스런 말을 던지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어린 것이 마음고생이 심했겠죠. 아무쪼록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곱게 차려 입은 한복 위에 가디건을 두른 도순은 머리를 올려 쪽을 찌었지만 아직은 화장을 하지 않아 보기에 부담스러운 얼굴은 아니었다. 도순은 곁에 선 연희를 한번 쓰윽 쳐다보고는 은실을 향해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평소의 도순 답지 않게 예의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시내의 작은 병원 입구였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쓰러진 연희를 발견한 은실이 연희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은실은 곧바로 도순에게 연락을 취했고 연희는 병상에 누워 수액주사를 맞았다. 연희가 수액을 다 맞고 20분이나 더 기다린 후에야 도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금, 기운을 차린 연희를 데리고 두 사람이 병원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은실 역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아닙니다. 담임인 제가 더 신경을 못 써준게 마음에 걸리네요.”

“선생님도 정신이 없으시겠죠.”

일주일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었다. 은실이 춘광의 장례식장을 찾았었는데, 그때는 가볍게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도순은 한 팔에 걸린 클러치백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은실에게 건네었다.

“제가 일이 바빠 인사가 늦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연희 잘 부탁드립니다.”

은실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패였다. 백주 대낮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길목에서, 그것도 아이가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 돈봉투를 건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주고 받는 게 오히려 탈이 안납니다.”

도순이 덧붙인 한마디에 은실은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자신을 뒤에서 촌지나 받는 몰상식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늬앙스 때문이었다. 은실은 여러 생각할 것 없이 말했다.

“그런 건 받지 않습니다.”

짧은 한마디를 던지는 표정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도순과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갈무리하는 은실에게서 차분하지만 절대로 쉬워보이지 않는 기백을 엿볼 수 있었다.

도순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봉투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은실을 유별난 듯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다른 아이들은 어쩌라고 여기까지 직접 오신 겁니까?”

도순이 보니 연희는 병원까지 올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으로 양호실에서 조금 쉬다 일어났어도 될 수준이었다. 굳이 수업까지 빼가며 이런 극성맞은 행동을 하는 교사를 고마워 해야할지 나무라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순의 지적은 예리한 것이었다. 실제로 연희는 정신을 잃은지 몇 분도 안되어 깨어났고 멀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혼자서 조퇴를 시켜도 될 상황이었고, 그것이 걱정되면 도순을 학교로 불러 데려가라 했으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은실이 연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도순과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연희 어머니. 잠시만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도순은 담장 너머 대로변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영길이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중요한 일인가요?”

은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순은 연희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거라.”

연희가 조용히 대답을 하자 두 사람은 건물 앞 화단의 작은 길을 따라 한 구석으로 이동했다. 인적이 드문 담장 모퉁이에 선 은실이 쌀쌀함을 느꼈는지 한 손에 들고 있던 자켓을 걸쳤다. 도순을 마주보며 선 은실은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한번 더 고민했다.

은실은 영배의 장례가 치뤄진 3일 동안 매일 수업이 끝나는 대로 식장을 찾아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상주를 위로했다. 때문에 그때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금쪽같은 새끼를 잃은 부모의 통곡이 끊이질 않았고, 영배의 어머니는 울다 지쳐 혼절을 하는 상황도 발생을 했었다. 이런 일이야 장례식이라면 흔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라지만, 이것 말고도 정말 분위기가 흉악해질 정도로 상주와 그 지인들의 분노가 들끓어 올랐던 순간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가 모습을 비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무당이었다. 은실은 곧 무당이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배의 죽음이 오롯이 무당의 잘못 때문일까? 아닐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무당이 정말 영배와 그 가족들을 기망한 것인지는 오직 무당만이 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사기죄에 대한 법적 처벌을 피해가는 것이, 이 비과학적 세계가 21세기에도 판을 치는 이유 아니던가. 은실은 무당이 영배가족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면 장례식장에 나타나 사죄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도 무당을 용서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세상의 도리이자 이치이고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지막 날까지도 무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은실은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연희가 눈에 걸려 따로 불러내 상담을 진행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연희의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그런 아버지를 연희가 며칠 째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별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리에 은실은 연희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을거라 짐작했다. 그것은 상태가 매우 위중하다는 말이었다. 은실은 걱정이 되었지만 우선은 연희를 다독이며 아버지가 곧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했다. 그럼에도 연희는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게 될까 겁에 질려 있었다.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영배도 괜찮아 질거라 했는데 떠났다고… 아버지도 그렇게 떠날까봐 두렵다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두고 굿을 할까봐 겁이 난다고…

그때서야 은실은 연희의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희가 작성해 온 가정환경 조사서를 보며 어머니의 직업을 비밀로 하자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확실하게 떠오른 것이다. 두 달도 안된 일을 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까. 은실은 자신의 실책을 탓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배의 굿을 한 것이 연희의 어머니인지를 말이다. 그렇다는 연희의 대답에 은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은실은 영배의 어머니, 이목화에게 연락을 해 만남을 가졌다. 영배의 상을 치루는 동안 은실이 담임교사로써 보여준 신실함 덕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목화는 남편 손해식과는 달리 영배를 잃은 후에도 무당에 대한 분노를 크게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영배가 죽은 것은 자신 탓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던 모습이 은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었다. 은실이 이목화를 만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차를 마시며 영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얼마 안 가 자연스럽게 무당에 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목화는 답답할 정도로 말투가 느린 편이었다. 그리고 하나를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을 했는데, 그러다 또 갑자기 다른 주제를 꺼내 이야기를 하며 대화의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의적이고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오히려 너무 순박해서 문제가 될 사람이었다. 이런 여자를 데리고 은실은 그간의 일들과 무당에 대해 한참을 캐묻고 또 캐물었다. 이목화는 은실을 믿고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묘하고 또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모를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귀신과 무당, 빙의와 퇴마굿, 역병과 재앙, 이런 이야기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었던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며 그럴듯하게 꾸며낸 납량특집 TV 쇼에서 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뉴스를 통해 사건 소식으로 접하기도 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관심밖의 일들이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의 결론이 어디로 귀결되는지 알 수 없었다. 보나마나 좋은 결말은 아닐 것이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죽음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은실은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무당을 직접 만나보아야 겠다 결심했다. 가능하다면 연희의 아버지까지도. 물론 교사와 학부모로써 말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 날 곧바로 연희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나버린 뒤에야 은실은 도순과 독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이길래 이리도 은밀하게 하려는 겁니까?”

도순이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자 은실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영배의 일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요.”

도순은 비스듬히 몸을 돌려 담장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힘든 일이야 누구든, 어느 시기에든 있기 마련이죠.”

은실은 세상일에 달관한 듯 말하는 도순에게서 비정함을 느꼈다. 단지 말투 뿐만이 아니었다. 옆모습을 통해 보이는 도순의 차가운 눈빛과 표정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이었다. 며칠 전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나누었을 때에도, 도순은 남편과 사별을 한 부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당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한 손에는 삶을, 또 한 손에는 죽음을 들고서 무겁게 춤을 추는 자들이라 거추장스러운 감정 따위는 전부 버려버린 것인가? 은실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또 한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정말 연희의 엄마가 맞긴 한 걸까? 닮은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 생김새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이렇게 매정해 보이는 엄마의 밑에서 연희가 저렇게 순수하고 예의 바르게 자라났다고? 연희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정말 귀한 집에서 자란 태가 나는 아이였다. 하지만 도순은 그런 아이를 키워 내기에는 섬세함이 부족해 보이는 여자였다. 적어도 은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상한 소문도 돌고 있고요.”

“그 소문이란 게 저와 관련된 건가 보군요.”

은실은 소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순은 대충 내용을 짐작하고 있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이들이야 언제나 엉뚱한 상상을 품고 성장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들 뿐만이 아니에요.”

도순은 고개를 돌려 은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겁니까?”

은실은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 한번의 눈빛교환으로 도순은 이 젊은 여선생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죄송하지만 전 귀신을 믿지 않아요.”

도순은 흥미롭다는 듯 은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렇군요. 그래서 날 공격하러 오신 겁니까?”

굳이 공격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조롱하는 투로 말하는 도순을 보면서도 은실은 아무런 동요없이 말을 받았다.

“전 무신론자이지 극단주의자가 아니에요. 종교의 긍정적 역할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각자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존중하죠. 다만, 연희의 담임교사로써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거에요.”

“우리 연희가 왜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건가요?”

도순은 어서 얘기를 해 보라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직 아이들은 연희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요?”

은실의 눈밑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머님은 연희가 걱정이 안되시나요?”

“제 딸인데 왜 걱정을 안하겠습니까?”

도순의 무덤덤한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은실은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얘기했다.

“오늘 저녁에 영배네 마을에서 굿을 한다고 들었어요. 꼭 하셔야 되나요?”

도순이 몸을 돌려 은실을 마주보고 섰다. 잠시동안 은실을 쳐다보던 도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희를 굳이 병원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이거였군요.”

은실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으면요? 마을에 역귀가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입니까? 아, 선생님은 믿지 않으시겠죠. 그럼 그 학교에서 다른 아이가 죽어나가야 믿으시겠습니까?”

은실은 이번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귀에는 도순의 말이 터무니 없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박 엔지니어 아버지 밑에서 과학적 사고를 중요시하며 자라난 은실이었다. 신앙생활과는 전혀 연결고리 없이 성장했고, 그녀 스스로도 별다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제나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겼고, 실체적 사유를 통해 문제에 접근했다. 그것이 질서에 부합한다 배웠고 합리적이라 믿었다. 그런 그녀가 살면서 무당을 만나 볼 기회는 없었다. 처음으로 무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심정은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내면의 믿음이 흔들려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순이 어쩌면 망상장애를 겪고 있는 것을 아닐까 의심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뻔뻔하게 공갈협박성 발언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은실의 눈에는 도순이 스스로 내뱉은 말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종교적 신념이 귀신이라는 망상을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그 귀신이라는 것이 종교적 신념을 갖게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은 세상 경험이 부족한 탓일까. 가슴속에 순수함이 남아있는 은실은 도순이 가짜로 무당 행세를 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무속(巫俗) 이라는 허구에 갖혀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기 위해 자기최면에 빠진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도순이 말했다.

“선생님은 영배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실테죠.”

“조금은 알고 있어요. 적어도 귀신 때문은 아니라는 것 정도요.”

도순이 표정을 구기며 은실을 쏘아보았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영배는 병원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 받았어요.”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병원에 확인한 사실이에요. 영배는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수술을 진행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어요.”

은실은 말을 하면서도 또 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영배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은실을 보는 도순의 눈빛은 불편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 확연하게 가늘어졌다.

“아무리 불가사의한 증상이라 해도 병원은 어떻게든 진단을 내려야 하는 곳이죠. 설령 잘못된 치료를 받게 된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다 환자가 죽음에 이르면 병원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죠. 병원을 백프로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 착각하지 마세요. 의사도 사람이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고 또 실패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영배가 보인 신체 징후는 급성백혈병의 증상과 똑같았어요. 그런데 왜 함부로 오진이라 말씀하시는 거죠?”

“영배의 피부가 검게 변했죠. 그것도 전형적인 증상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은실도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목화의 말을 정리해 봤을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건 약을 잘못 먹였기 때문이에요. 영배네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인삼농사를 지었어요. 자연스럽게 약방과도 왕래가 오갔고 친분이 두터웟죠. 영배 어머니는 그곳에서 약을 지어다 영배에게 먹였어요. 정말로 진귀한 재료로 만든 값비싼 약이었죠. 그런데 그게 영배와는 맞지 않았던 거에요. 누구도 악의는 없었어요. 무지한 것이 뼈아픈 결과를 만들어 낸 거에요.”

이런 이유로 이목화는 영배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일 이후로 영배는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무당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무당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연희 아버지는요? 영배와 똑같은 병으로 죽은 걸까요?”

“그거야 어머니께서 진실을 들려주시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죠. 아마도 그럴 확률은 낮을거라 생각해요. 전염병이 아니니까요.”

도순은 불편한 심기를 조용히 드러내었다.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남편을 잃고 생과부가 된 사람에게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은실은 불쌍한 영배의 생각을 지워내고 평정심을 찾은 눈빛으로 말을 받았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영배 어머니께서 굿을 하는 걸 원치 않으세요.”

“선생님께서 계몽이라도 시키셨나 보군요.”

도순의 말투에서 은근히 비꼬우는 늬앙스가 풍겨났지만 은실은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요, 영배 어머니는 저와는 달라요. 절실하게 신을 믿고, 진정으로 귀신을 두려워 하죠. 그래서 연희 어머니를 말리는 이유도 저와는 완전히 다른 거에요. 오늘 일로 인해 죽은 영배를 편히 쉬지도 못하게 할 것 같아서 그렇대요. 영배의 혼을 불러내 이승에서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할 거라 걱정하더군요. 그리고 영배 아버지마저 잘못될까 겁이 나서 그렇대요. 귀신을 잡는 일에 영배 아버지가 총대를 매고 나섰다 그러더군요. 영배의 복수를 하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영배 어머니는 남편이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라며 걱정만 하고 계세요. 그러니 영배 아버지가 남은 가족들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도순이 고개를 몇 번 젓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 분은 단순히 자식을 잃은 복수를 하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은실은 도순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영배 어머니가 경계성 지능인이란 걸 알고 있으시죠?”

누구라도 이목화와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알게 될 사실을 도순이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무도 영배 어머니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거에요.”

도순은 은실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인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영배의 발인이 끝나고 영배 아버지께서 연희 어머님을 찾아갔던 그 날, 영배 어머님은 영배를 만났어요.”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도순은 태연하게 받아쳤다.

“죽은 이가 꿈속에 나타나는 건 흔한 일이죠.”

“꿈이 아니에요. 영배 아버지가 연희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각, 영배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영배를 보고 집안에서 뛰쳐 나왔어요. 만질 수 없는 흐릿한 형상이었지만 정말로 영배였대요. 외로운 엄마에게 친구처럼 살가웠던 아들이 살아생전 건강했던 모습으로 나타난 거에요. 영배 어머니는 울며불며 사과를 했대요.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영배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줬대요. 왜 하늘나라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갈 수 없다고 말했대요. 그러면서 아빠가 위험하다고 했다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다짜고짜 무당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네요.”

물론 은실도 이 이야기를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저 이목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영배 엄마를 나도 조금은 압니다. 정말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죠. 그 순수한 마음이 환상을 만들어 냈나 봅니다.”

은실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연희 어머님이 보는 것은 영적인 존재이고 영배 어머님이 보는 것은 환상인가요?”

도순은 실수를 했다 생각했는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 환상이라는 것이 귀신의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악귀가 영배의 모습으로 나타나 훼방을 놓으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놈이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정말 심각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악귀가 영배의 혼을 붙잡고 조종을 하는 거라면 이미 터주마저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것이죠. 그렇게 되면 오늘 일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해 질 수도 있습니다.”

은실이 도순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제 눈에는 연희 어머님이 더 위험해 보여요. 그러니 이만 멈추시는게…”

도순이 짐짓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잘랐다.

“선생님은 정말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리겠군요.”

정신을 차려야 할 건 당신이야. 라는 말을 점잖게라도 꼭 해주고 싶은 은실이었다. 그러나 차마 학부모에게 그런 경솔한 발언을 할 수는 없었다.

“연희의 어머니잖아요. 당연히 연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속을 알 수 없는 도순의 표정을 살피며 은실이 말을 이었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선 무당이 영배를 죽였다는 말이 돌고 있어요. 그런데 그 무당이 연희 어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연희가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보신 거에요? 연희는 보기 드물게 속이 깊고 심지가 곧은 아이에요. 비뚤어지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게 되면 그 상처는 평생 남을 거에요. 오늘 그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굿을 하신다면 전부 다 알려지게 될 거라고요.”

도순은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 젊은 여선생이 던져놓은 불쾌감은 기름불처럼 삽시간에 타올랐다가 금세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열정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해도 그래봤자 애송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젊어서 그런가 열정이 넘치는군요.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도 훌륭하고요. 그런데 너무 경솔하고 오만합니다. 자신이 아는 세계가 전부인 것 마냥 말씀을 하시니 대화가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신을 믿지 않고 영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가지고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그 믿음을 조금도 고쳐 볼 생각없이 무당과 대화를 하러 오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설마 싸우자는 것은 아닐테고요. 적어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두려운 존재들과 맞서겠다 나선 사람들을 모욕하지는 말아야지요.”

은실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무당이 아니라 학부모와 대화를 하러 온 거에요.”

“좋습니다. 학부모로써 말씀을 드리죠. 연희를 걱정해주시는 마음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제가 굿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제 손으로 역귀를 물리쳐 영배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죠. 그래야 우리 연희가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지 않겠습니까.”

은실은 더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음을 느꼈다.

“이제 신의 뜻을 섬기는 사람으로써 한 말씀을 드리죠. 보인다고 전부 진실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 거짓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고 온 게 아닙니다.”

은실이 말을 끊어버리자 도순은 슬쩍 웃어보이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정말 완강하신 선생님이군요.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에 귀 기울였던 것처럼 저도 조금은 이해를 해주시죠. 선생님이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는 것처럼 저 또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산 자를 위해 푸닥거리를 하고, 죽은 자의 뒤치닥거리도 하고, 이승을 떠나는 자들을 위로하고, 또 떠나지 못하는 자들을 달래어 보내고, 그렇게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의 세상이 어지럽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저의 일입니다.”

얼핏 듣기에 도순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으나 은실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거래를 하는듯한 도순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다. 입으로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다고 떠들고 있었지만 분명 그보다는 마을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서 어떻게든 굿을 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은실이 생각하기에 지금은 남편을 잃은 슬픔과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러나 도순의 말투와 태도 그리고 눈빛에서 그 어떤 애달픈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은실은 눈길을 돌려 멀찌감치에 있는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는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꼼짝 않고 서 있있다. 가녀린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 모습이 안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일을 하세요. 전 저의 일을 할테니.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잘 이끌어 주실 것 같군요. 우리 연희도 보기보다 강한 아이이니 어떤 일이 생겨도 잘 이겨 낼 겁니다.”

은실은 도순을 쳐다보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듯 했다. 강한 아이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계속 맴돌며 신경을 긁어댔다. 연희를 위해 애를 쓴 자신이 한순간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요 몇 주동안 힘들게 참아 낸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은실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저도 선생님도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만하시죠.”

도순은 조용히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고 은실은 말없이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몇 걸음 걷던 도순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한 가지만 묻죠. 왜 신을 믿지 않는 겁니까?”

은실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제 삶에는 필요가 없으니까요.”

도순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오만함으로 인해 아주 큰 고통을 겪게 될 겁니다.”

무당이 이런말을 던진다면 누가 있어 깨림칙하지 않을까. 그러나 은실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녀에게 무당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별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은실은 알 지 못했다. 연희를 위해 나섰던 자신의 행동이, 적당히 하고 넘어가려던 도순의 계획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은실은 연희를 향해 걸어가는 도순의 뒤를 따라나섰다. 연희에 곁에 이른 도순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척에 다다른 그녀가 연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미소를 보이며 살갑게 말했다.

“연희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며칠 정도는 집에서 푹 쉬어. 그리고 잘 먹어야 돼. 알았지?”

“네. 선생님.”

“어머니께서 넌 강한 아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잘 이겨낼 거라고. 선생님도 그렇게 믿어.”

기운이 없던 연희의 얼굴에 봄꽃 처럼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은실은 마음속의 근심이 전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수개월을 동굴속에서 지내다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본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는 도순을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연희 어머니. 제가 오늘 굿을 보러 가도 될까요? 그럼 다음 만남에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도순은 내키지 않았다. 마술은 그저 속임수일 뿐이라 치부하는 자가 마술쇼에 와서 무엇을 하겠는가. 마술사의 트릭을 찾아내는 일 밖에 더 하겠는가. 하지만 제 발로 온다는데 딱히 막을 방도는 없었다. 핑계거리를 생각하던 도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마을 사람들에게 철저히 단속을 시켰습니다. 외지인이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자칫 일이 크게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요. 역귀는 외지인의 몸에 숨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할 겁니다. 그 역귀란 것이 저조차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그런 놈에게 살(煞)을 맞게 되면 제가 지켜줄 수 있다는 장담을 못합니다. 가뜩이나 선생님 기운을 보니 양기(陽氣)가 흘러넘쳐 귀신들의 눈에 너무 띄는군요. 잡귀들이야 선생님께 들러붙지 못하겠지만 오늘 제가 사생결단을 내려는 놈은 흉신악살(凶神惡殺)입니다. 악귀 중의 악귀죠. 이런 지독한 음기(陰氣)를 가진 것이 강한 양기를 잡아먹으면 극음의 마기(魔氣)를 내뿜습니다. 그것은 저주와도 같은 것이죠. 한번 사로잡히게 되면 정신이 병들어 끝없이 고통받게 됩니다. 그러니 미치광이들의 마을을 보고 싶지 않다면 오늘은 자중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은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도순의 언행이 누군가는 당당해 보인다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은실에게는 너무 조심성이 없어 보였다. 굳이 아이 앞에서 이렇게까지 겁을 줄 필요는 없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보니 조금 전까지 미소를 보였던 연희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도순이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부끄럼 없이 촌지를 건네는 모습부터 열 살 아이 앞에서 하기에는 부적절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해대는 모습까지, 그녀가 보기에 도순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자기중심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런 여자에게서 연희같은 딸이 나왔다는게 그녀로서는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은실은 내키지 않지만 예의를 차리려 한마디를 건넸다.

“그렇군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를 바라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오늘 밤, 그 흉귀는 만신(萬神)의 가족을 건드린 댓가를 처절하게 치를 겁니다.”

도순은 남편이란 말 대신 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은실은 알 지 못했다. 그저 환상의 세계에 사는 인간의 정신나간 소리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래서 은실은 또한 알 지 못했다. 도순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친 여자라는 사실을.

은실은 아픈 연희가 걱정되어 말했다.

“그럼 연희는 동생과 둘만 남아 있는 건가요? 괜찮다면 오늘은 제가 아이들을 봐드릴께요.”

“우리 연희가 오빠가 있다는 말은 안했나 봅니다.”

연희를 보며 말하는 도순의 눈빛이 은연중 한기를 내뿜었다. 그 눈빛을 피해 연희는 고개를 숙였고, 그런 연희를 은실이 말없이 지켜보았다.

“연희는 오빠가 잘 돌봐 줄 것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끝으로 돌아선 도순은 연희를 재촉하며 길을 나섰다. 연희가 은실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는 그 뒤를 따랐다. 연희의 힘없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은실은 다시 한번 연희를 불러 기운을 불어넣어 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도순이 돌아보며 연희를 채근했다. 연희는 종종걸음으로 도순의 뒤에 따라붙었다. 은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빠른 시일 내에 연희와 상담을 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것이 연희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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