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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l 23. 2024

나이 든 공무원이 되어간다는 것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도저히 잠이 안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요새 나도 모르게 내 나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91년생 올해 나이 서른 넷.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 가서 어리다는 소리를 듣는 나이었는데 어느새 마냥 어리다는 소리를 듣기엔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25살에 결혼해 26살에 나를 낳았다. 두 분이 내 나이던 무렵에는 이미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을 둔 완전한 어른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돈을 모으고, 나를 키우기까지 한 그 34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이루고 살아왔을까.


적당한 나이에 대학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오늘 같이 알 수 없이 우울한 날을 맞이해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 앞엔 묵묵히 각자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 속에 혼자서만, "공무원 하기 싫어요. 공무원 너무 끔찍해요. 나는 공무원 할 사람이 아니예요." 라고 밑도 끝도 없이 찡찡대고만 있는 서른네 살의 내가 서 있다.


왜 난 이 직장에 이토록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보다도 훨씬 잘나고 능력 있는 친구들도 군소리 없이 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난 왜 이토록 이 직장이 싫은 것인가.


단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힘든 부서 위주로 발령 나서 그렇다는 궁색한 핑계 하나로 이 직장에 대한 내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공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든 쉽사리 적응하고 감내하지 못하는 내 나약한 성격 때문에 내 자신이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자신 있게 답변을 못하겠다. 어디서부터 이 매듭이 잘못 꼬인 건지를 잘 모르겠다.


지금도 뉴스 방송을 틀면 하루가 멀다하고 신규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고 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한 공무원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공무원 경쟁률이 몇십 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9급 공무원 임금이 최저시급에도 못미치고 있다, 기타 등등등등. 수많은 공무원과 관련된 안좋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사들 아래 달린 댓글엔 여전히 하는 일에 비해 공무원들 대우가 너무 좋다, 공무원은 인생 망한 고졸들이나 하는 일이다, 누가 칼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냐, 꼬우면 그만둬라 할 사람 많다 등등등등. 안좋은 기사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악성 댓글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퇴근 후 그 부정적 기사와 댓글들을 보고 있는 나는, 그 독화살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결코, 가볍게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나의 모습이 확고해져만 갈수록, 거울 앞에 서있는 지친 내 모습이 더더욱 슬퍼져만 간다.


4년 전에 서른 살의 나이에 일반행정직을 그만둘 때에는 나에겐 지켜야 할 것도, 고려해야할 것도, 두려워야 할 것도 많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4년이 더 지난 지금, 나에겐 그때에 비해 지켜야 할 것도, 고려해야할 것도, 두려워야 할 것도 너무나도 많이 생겨나 버렸다.


4년이란 시간을 더 살아온 것에 대한 할증료라고 해야할까.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몰라보게 늘어나 버렸다.


이젠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직장을 과감히 던져 버릴 것이 아니라, 이 직장에 꽉 매인 채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4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맨몸이 아닌 만큼, 앞으로의 나의 인생엔 지금까지의 몸부림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할 것이다.


문득 나와 친했던 구청 팀장님들의 말이 생각난다.


"○○씨, 나도 처음부터 공무원 되고 싶었는 줄 알아? 30대 때까지만 해도 공무원인 내 자신이 정말 미치도록 싫었어... 근데 올해만 참자, 올해만 참자 하면서 어영부영 살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지 뭐야?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그들이라고 어린 시절 파랗고 새하얗게 빛나던 꿈이 없었겠느냐.


나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렇게 그들과 같이 조금씩,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 이렇게,


'나이 든 공무원'이 되어가고 있다.


* 배경 출처: 영화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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