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7]나는 왜 공직에 들어왔을까...?
조금 지나서 쓰는 교행 일기
(PART 6에서 이어집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험은 6월 17일에 있는 지방직 9급 시험과 6월 24일에 있는 서울시 9급 시험. 단 두 개의 시험뿐이었다. 4월 국가직에서 영어를 3문제씩이나 풀지 못했고, 결국 그만큼의 점수 차이로 시험을 떨어졌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영어 20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풀어내는 연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동기 모의고사'와 같은 고난이도 모의고사를 잔뜩 사갖고 와서 일단 빠른 시간 내에 영어 20문제를 푸는 연습부터 했으면 좋았을테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 멍청하게도 다시 '이동기 보카 3000' 단어장을 펴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아는 기본 단어를 한 번 더 다진다는 의미에서 또 반복해서 외웠다. 이미 다 아는 단어를 하루에 300개, 400개씩 외우면서 난 충분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내 자신을 위로했고, 내 영어 점수는 객관적으로 오히려 국가직 직전의 실력에 비해 점점 더 퇴보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시험이 단 두 달밖에 안남은 상황에서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영어 실력 올리기가 버겁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본적인 수준에서 영어 문제가 나오기를 바라며 스트레스를 안받는 선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을 정도만 영어 공부를 했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틀리고, 또 강사가 그 문제를 누구나 맞힐 수 있는 문제인양 설명하면 자존감이 떨어져 오히려 시험을 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두 달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영부영 하며 보내버렸다. 시험 일주일을 앞두고는 도저히 영어 점수에 진전이 없자 그냥 영어는 70점정도만 맞는 다는 생각으로 포기해버리고 이미 어느정도 점수대가 형성된 암기과목 위주로 공부를 진행했다. 아는 부분을 또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안심하고, 모르는 것이 나오면 애써 무시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6월 17일 대망의 지방직 시험날이 다가왔다.
지방직 시험 당일 날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해야했다. 지금은 불가능하게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같은 지방직 시험이라도 여러 지역에 원서를 접수해놓고 시험 당일날 경쟁률을 확인하여 유리하다 싶은 쪽의 시험을 응시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참고로 내가 살던 지자체는 2000년대 들어 신도시 개발 및 국제대회 유치에 큰 예산을 투입해 2010년대 이후로 극심한 재원 부족에 시달려 지자체의 인구수와 대비했을 때 매년 뽑는 공무원의 수가 정말 극심하게 적었었다. 심지어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구' 단위로 모집을 해서, 한 구당 채용인원이 3명, 5명 많아야 10명이 겨우 넘는, 수험생 입장에선 극악의 채용 행태를 보여주는 중이었다.
당시 내가 원서접수했던 구는 2개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oo구와 현재 살고 있는 xx구였다. oo구는 총 채용인원이 10명 남짓이었고, xx구는 채용인원이 20명 남짓이었다. 마음은 어린 시절을 지내 익숙하고 애정이 있던 oo구의 시험을 치고 싶었지만, 채용인원이 2배 가까이 차이 났기 때문에 xx구가 합격 가능성은 더 클 것 같았다. 나는 시험 당일날 아침까지 두 개의 응시표를 모두 출력해놓고 갈팡질팡 고민하다가 결국 좀더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xx구의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에 도착한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며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조만간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내 운명이 걸린 지방직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 문제는 국가직때에 비하면 수월하게 풀렸다. 영어가 조금 까다로웠을 뿐 나머지 과목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수월하게 쭉쭉 잘 풀려나갔다. 그렇게 지방직 시험에서는 국가직 때의 악몽에서 벗어나 제한 시간 내에 영어 포함 100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 게다가 마킹 후에 헷갈렸던 문제를 복기해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까지 있었다.
나는 시험 종소리와 함께 감독관에게 깔끔하게 마킹된 답안지를 건네주면서, 비록 국가직 이후 지난 두 달간 최선을 다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쯤 했으면 이제 합격시켜줄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시험장을 나오는 길에 파랗게 펼쳐진 초여름의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 이 지긋지긋한 터널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바랐다...
(PART 8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