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6]나는 왜 공직에 들어왔을까...?

조금 지나서 쓰는 교행 일기

by 옹기종기

(PART 5에서 이어집니다!)


...2017년 스물일곱살이 되자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취업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대기업의 정규직도 있었고, 소위 사짜 직업이라는 전문직도 있었다. 슬슬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 맞는 옷이 없어 누더기같은 옷을 입고 그 친구들의 취업 기념 파티에 다녀오면 며칠 간은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건방진 얘기지만 취업의 기쁨에 밝게 웃는 그 친구들을 보며 내가 쟤보다 못난 게 하나도 없는데 난 왜 여전히 도서관에 짱박혀 있어야하는거지...라는 초라한 생각도 자주 들었다. 이러쿵저러쿵 할 것없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올해는 꼭 합격을 해야했다.


그 해 국가직 시험에는 합격이 절실했기에, 경쟁률이 높은 일반행정직이 아닌 병무청에 원서를 접수했다. 다행히도 원서접수 결과 일반행정직의 경쟁률이 200대1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해 병무청의 경쟁률은 28대1밖에 되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나 행정안전부 같이 멋진 중앙 부처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긴 했지만, 꼭 합격해야했고 이제는 꼭 직장인이 되어야했기에 병무청만 합격해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 같았다. 그렇게 또 국가직 시험이 있는 4월까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드디어 시험날이 왔다. 작년 국가직 첫 시험을 치르고 자만에 빠진채 공무원 시험을 시작했던게 어느새 1년이 지나있었다. 그 사이 한 것이라고 도서관에 앉아 시험문제를 풀고, 집에 와선 유튜브를 본 것이 다였지만...그 시간들이 지난 1년동안 인내와 고통으로 나를 조금은 성장시켜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몇 시간 후 100분동안의 시험에서 내 지난 1년동안의 성적표가 결정된다. 성적표에 기재될 것은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정말이지 꼭 합격하고 싶었다.


시험지가 나눠지고 수험장에 벨이 울리며, 2017년 국가직 시험이 시작됐다. 종이 땡치지마자 앞장을 넘겨 국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고유어 문제 등이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문제가 수월하게 풀려 나갔다. 약 15분만에 국어 문제를 다 풀고 마킹까지 한 후, 영어 문제로 넘어갔다. 다른 과목에 비해 공부량이 많고 문제 풀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영어 과목이라 모의고사를 풀 때 마저도 벌벌 떨며 긴장했던 과목이 영어였다. 아니나다를까 1번 문제로 나온 단어 문제의 단어의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기출에서도 수십번 봤고, 예상 문제에서도 봤던 단어인데 뜻만 생각이 안났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2번 문제로 넘어갔다. 2번 문제의 단어 역시 어렴풋한 의미만 기억나고 정확한 단어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갑자기 배가 찡하니 아프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이번에도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단어 문제에서 2문제 이상을 찍다시피 풀고 나니 문법 문제부터는 잘 읽히지도 않았다. 분명히 공부할 때 수월하게 풀었던 포인트인데 꼭 2개의 선지를 남기고 거기서 갈팡질팡하는 걸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전체 시험 시간은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주변 수험생들은 편안한 자세로 시험지를 휙휙 넘겨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독해문제는 건드리지도 않고 바로 한국사 문제로 넘어갔다. 다행히도 한국사, 행정법, 사회는 문제가 수월하게 출제되어 빠른 시간 안에 답을 골라낼 수 있었다. 세 과목 모두 헷갈리는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모두 틀린다고 해도 다 90점은 수월하게 넘길 것 같았다. 나머지 과목을 마킹까지 모두 끝내고 다시 영어 시험지로 돌아왔다. 시험 시간은 25분이 남아있었다. 이 시간동안 영어 독해 10문제를 풀고 마킹까지 끝내야한다. 한 문제 한 문제에 운명이 걸려있다는 심정으로 애써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남은 10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끝내 내가 독해 3문제를 끝까지 풀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을 끝내는 종소리가 수험장 안에 힘차게 울려퍼졌다. 개운하게 자신의 답안지를 감독관에게 제출하는 수험생도 있었고, 다 풀었으니 마킹만 하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하는 수험생도 있었다. 나도 속으로는 감독관에게 울며불며 매달리고 싶었다.


'딱 5분만 더 주면 안되겠냐고. 1년 동안 준비한 시험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주변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 채, 공단기 강사들이 제공하는 가답안에 맞춰 채점을 해보니, 국어와 영어 과목을 합쳐서만 벌써 10개를 틀렸다. 잘봤을거라 자신했던 국어에서도 말도 안되는 실수로 한 문제를 더 틀렸고, 3문제를 끝내 풀지 못한 영어점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국사, 행정법, 사회 등 암기과목 역시 예상했던 점수거나 한 문제정도씩을 더 틀렸다. 정답을 알고 난 후 다시 시험 문제를 들여다보니 말도 안되는 답을 골라놓고 정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 너무 긴장을 한 탓일까, 아직 공부량이 부족한 탓일까...


결국 그 해 국가직 병무청 시험은 필기합격선에서 두 문제 조금 안나는 점수 차이로 필기 불합격을 하게 되었다. 할만큼했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있었는데 결국 합격엔 실패했다. 1년의 시간을 더 투자한만큼 작년 지방직 때 떨어진 후의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앞으로 두 달의 시간과 두 번의 시험이 더 남아있지만, 만약 그 두 번의 시험에서도 오늘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별다른 생각없이 공무원 시험으로 내 진로를 결정했던 작년의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티비 속에서 사회적 문제라고 소개되는 공시 낭인들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뭐가 다를까라는 무섭고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지하철 안에서 정말 인생의 가장 나락에 와있다고 생각했지만, 더욱더 깊숙한 바닥이 있을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 버티면 두달 후의 지방직 시험에선 높은 점수를 받아 꼭 합격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럼 이 모든 고통이 해소될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진짜 바닥은 두 달 후의 지방직 시험 후에 본격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PART 7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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