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나는 왜 공직에 들어왔을까...?
조금 지나서 쓰는 교행 일기
(PART 4에서 이어집니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면 안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모두가 앞을 향해 뛰어갈때 나 혼자만 방에 남아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겨우겨우 가슴을 붙잡고 기다시피 화장실로 걸어갔다. 거실 화장실의 거울에는 배가 불뚝 나오고, 정오가 넘도록 씻지도 않은 채로 있는, 생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 인간이 서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샤워기 물을 틀고 머리부터 감았다. 온몸을 깨끗이 씻고 난 후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서, 군인 시절 훈련 도중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운 이후 처음으로 소리 죽여 엉엉 울었다. 지난 4개월을 헛되이 보낸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이십 대가 된 후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못하고 그저 남들이 세운 기준에 맞춰 어영부영 살아온 내 젊은날 전체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지겨울 때까지 울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나는 널브러진 이불부터 정리하고 교재를 챙겨 곧바로 집 앞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거리에 비친 햇빛이 어제와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낮은 점수를 받은 탓에 꼴보기도 싫어 채점한 이후 펼쳐보지 않았던 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시험지를 훑어봤다. 시험장에선 이런걸 누가 맞혀?라고 출제위원을 탓했던 문제들이 다시보니 기본 중의 기본을 묻는 쉬운 난이도의 문제들이었다. 내가 틀린 수십 문제 중에 정말 고난이도라고 할 만한 문제는 4,5개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기본 강의라도 찬찬히 잘 익혀놨으면 문제없이 수월하게 풀 수 있는 문제들뿐이었다. 내가 낮은 점수를 받은 건 시험이 어려웠기때문이 아니라 내가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었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oo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고3 시절의 친구 덕택에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시험에 붙어야겠단 생각보다는,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기본서부터 펼쳐들고 그동안 무시하며 지나쳤던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체계를 갖추고 공부하다보니 이전과 같은 문제를 틀려도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루하루 지루한 수험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대로 지나고 해가 바뀌어 2017년이 되었다. 나는 공시 2년차가 되었고, 나이는 한 살을 더 먹어 스물일곱살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에 올라 떠오르는 새해 첫 해를 바라보며 올해는 꼭 이 지루한 수험생활을 끝내자는 어찌보면 당연한 다짐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올해는 다를 거란 확신이 들었다.
(PART 6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