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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Sep 03. 2022

공무원도 가끔은 공시생이 부러울 때가 있다

삶이란 결국 받아들이기 나름인 법

 '구꿈사''전한길 카페'와 같이 공시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가끔씩 '현직 공무원'들이 방문하여 수험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oo년차 현직 공무원입니다. 궁금한 점 댓글로 달아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답변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글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질문 댓글이 달린다. 질문 내용은 과목별 공부법에 대한 것부터 공무원의 연차별 실수령액에 대한 것까지 다양하다.


 수험 생활에 지친 공시생들은 합격 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선배 공무원에게 희망과 두려움이 섞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을 받은 현직 공무원은 과거 공시생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대한 친절하면서도 현실적인 태도로 주어진 질문에 답변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의 수가 수백 개에 달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공시생들은 인터넷 검색으로는 알 수 없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 현직 공무원은 지루한 일상 속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 나 역시도 이러한 이유로 인해 두 번의 공시생 시절과 두 번의 현직 공무원 시절을 거치며 공무원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사소통 과정을 거치다 보면 공시생과 공무원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단 기본적으로 공시생 시절에는 내가 아직 못 이룬 것을 이미 이룬 '현직 공무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종의 질투심이 섞인 부러움을 느낀다. 그들이 합격한 시험이 7급 혹은 국가직 상위 직렬의 시험이라면 그 질투심은 더욱더 배가 된다. '진짜 현직인 거 맞아?'라는 심술 섞인 의심을 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공시생이 현직 공무원을 바라보며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에는 기본적으로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수험 기간을 어서 끝내고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되고 싶어하는 수험생으로서의 본능적인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적어도 공무원 수험생의 신분보다는 공무원 합격생의 신분이 더 나을 것이란 확신이 있는 것이다.


 반면 현직 공무원의 입장에서 공시생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에는 조금 더 오묘한 부분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힘들게 공부하는 공시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몇 년 전 동일한 과정을 겪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현재의 공시생들이 조금이라도 적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레 답답한 마음과 함께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누가봐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공시생의 모습이 보이면 생판 모르는 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이 수렁으로 빠지진 않을까 하는 주제 넘은 오지랖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현직 공무원이 공시생들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 '시간', 그리고 하기에 따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부러움이다. 마치 나이든 부자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젊은 날의 모습을 되찾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반복되는 직장 생활과 과도한 업무에 지친 현직 공무원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그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기만 하면 됐던 공시생 시절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막상 힘든 공무원 시험 과정을 통과하고 현직 공무원이 된 이후에야 이러한 예상치 못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바로 현재의 공무원 생활이 공시생 시절 꿈꾸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소중한 줄 모르고 허비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야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한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공시생 시절에는 이미 합격하여 공직 생활을 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들의 모습에 말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끼며,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하면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고민이 사라질 줄만 알았다. 심지어 첫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두번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도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면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며 힘든 수험 기간을 묵묵히 버텨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공시생 시절을 거쳐 현직 공무원의 입장이 되고 나니, 깨끗이 치운 방에 조금씩 먼지가 쌓이듯 공시생 시절의 내 모습이 그리워지고 나보다 어린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공시생 친구들의 모습에 부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처음 공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가지기로 마음 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고민을 하지 말자고 다짐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첫 직장에서 느꼈던 현직 공무원으로서의 고통과 답답함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몇 번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공시생 시절 현직 공무원들에게 느꼈던 그들에 대한 나의 부러움이나, 현재 4년차 공무원이 되어 공시생들에게 느끼는 나의 부러움이나 그 형태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정도의 크기를 가진 똑같은 성질의 부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오래된 속담처럼, 공시생이든 공무원이든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남이 가지고 있는 것에는 끊임없이 탐을 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공시생이든 공무원이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분명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공시생 시절에는 사회와의 단절에 따른 고립감과 더불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뒤처지는 듯한 자신의 모습에 지독한 무기력과 고통을 느낀다. 반면 공무원 시절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무의미함과 점점 닫혀가는 자신의 발전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역시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꼭 공시생과 공무원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어떤 상황을 마주하든 사람이란 존재는 결국 제 각각의 이유를 찾아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


 주어진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과거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미래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현재를 사는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공시생의 자리든 공무원의 자리든 우리들의 인생은 주저하고 후회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단 한 순간도 기다려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줄어들고만 있는데, 지난 날에 대한 후회와 다른 이에 대한 부러움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 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행복하고 싶으면 그저 한눈팔지 말고 현재의 삶에 집중 하라.'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두 번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공시생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상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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