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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ug 20. 2022

'공무원화'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뼛속까지 공무원이고 싶지는 않은데

 몇 년 전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Tvn 드라마 미생이나 최근 유튜브에서 몇 백만 조회수를 기록 중인 웹드라마 좋좋소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인들의 직장 생활을 다룬 드라마가 주기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왔다. 어찌보면 식상한 소재일 수 있는 회사원 혹은 직장생활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해당 소재가 비록 진부하고 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우리내 삶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학창 시절부터 하기 싫은 공부를 견뎌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시기에는 나 자신을 지원하는 회사에 필요한 근사한 상품으로 포장하기 위해 각종 자격증 취득과 스펙 쌓기에 몰입해왔다. 전문직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우리는 길게는 초등학교 무렵부터 시작된 취업 경쟁의 끝에 받아든 성적표에 따라 일정 직업의 종사자가 되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후 퇴직을 하기까지의 약 30~40년의 기간 동안 해당 직업에 따라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과 사회적 명예를 기반으로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직장이란 공간은 단순히 돈을 벌어오는 곳,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곳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며 살아간다. 나도 모르게 그곳의 질서에 익숙해지고 그곳의 구성원들과 같은 종류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당 직업을 얻기 위해 들인 시간만큼, 또 해당 직장에서 생활한 시간만큼 그곳에 동화(同化)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도 공포스럽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공무원이란 직장을 가지고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그토록 싫어하던 선배 공무원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공직에 발을 들였던 4년 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보면 참으로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만큼 이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능력들을 습득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성공한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은 꽤 많은 부분 잃어버렸다.


 다른 직업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공무원 조직 역시 공무원 조직만의 가치관과 문화가 있다. 가령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투자 대비 성과에 집중하거나 효율적인 일처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책임 소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만 일을 처리하는 식이다. 사업의 실질적 성과가 중요시 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혹여나 자신들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까 개개인의 보신(保身)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적에 대한 보상은 0에 수렴하고, 반대로 튀는 행동에 대한 해코지만큼은 그 어떤 조직보다도 확실하게 해주는 이 조직 안에서 이런 식의 일처리가 일상화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일테지만, 결코 이러한 방식의 일처리 태도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올바른 것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공무원 4년차인 나 조금씩 런 방식의 일처리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실질적 결과와 상관없이 대충대충 문제없을 정도로만 소위 일을 '쳐내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 저게 일 잘하는 거구나, 나도 열심히 배워서 저렇게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나보다 사회 생활 경험이 적은 동료들이 나에게 일처리 방법을 물어오면 "공무원 일은 어차피 다 의미없어~ 서류만 잘 갖춰놓고 감사 때 안걸리기만 하면 돼~" 라고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는 대충대충 별 문제없이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 뿌듯함마저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나는 공무원이라는 삶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부끄럽단 생각이 솟구쳐 올라온다.


 고백하건대 애초에 내가 공무원이란 직업을 나의 평생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여러가지 이유 중에 '공직자로서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서' 혹은 '공직자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싶어서' 등과 같은 숭고한 직업관이 가미된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단지 취업 길이 마땅치 않은 인문대 졸업생으로서 시험이라는 가장 익숙한 형태의 취업 준비를 통해 가장 가성비 좋은 직장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또 나라에서 보장하는 극강의 워라밸을 누리며 퇴근 후의 삶을 즐기고 싶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내 모습이 변해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한 조직뿐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태도의 고착화는 결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란 당연한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초기의 목적이나 실질적인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저 겉으로만 문제 없이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런 지극히 공무원적인 삶의 태도가 혹여나 내 개인적인 삶의 방향 설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적어도 그렇게 되는 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늦기 전에, 앞으로도 치열하게 살아갈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또 30년 후에 공직을 떠나는 그 순간이 후회로 얼룩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공무원으로서의 나의 삶과 본연의 나의 삶에 대해 조금더 집중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점차 변해가는 것도 모른 채 적응하는대로 별 생각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 스스로를 잃어버린 평범해질대로 평범해진 내 모습을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통해 '공무원 조직에 적응한 나'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은 나'가 공존할 수 있는 그 어느 지점을 늦지 않게  수 있었으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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