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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ug 25. 2022

공무원 4년차, 다시 본청 근무가 하고 싶어졌다

아직 무서운 맛을 덜 봤나봐

 2018년 봄, OO시 연수원 최종 수료를 이틀 앞둔 연수 3주차 수요일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함께 연수를 듣고 있던 일반행정직 동기들과 근처 호프집에 모여 앉아 미지근한 맥주나 홀짝이고 있는데, 정보에 밝은 한 친구를 통해 모두가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바로 OO시 공무원 '신규 발령' 소식이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모임과 음주로 인해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던 동기들의 눈빛이 발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순간 번쩍 타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친구가 가져온 출력물을 보기 위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 친구가 가져온 출력물에는 약 10여명의 이름과 발령 부서, 그리고 발령 일자가 차례대로 적혀있었다. 필기 시험 점수가 높지 않았던 탓인지 아쉽게도 내 이름은 그곳에 쓰여 있지 않았지만, 함께 연수를 듣던 동기들 대부분의 이름이 그곳에 쓰여 있었다. 발령을 받은 동기들은 좋은 날 다 지나갔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며 서로의 신규 발령을 기분 좋게 축하 해주었다. 나를 포함해 발령을 받지 못한 몇몇 사람들도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감춘 채 그들의 첫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 해주었다. 어느새 4년 반이 지났지만, 그 순간의 모습들은 여전히 눈 앞에 생생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가만히 되돌이켜보니, 그 당시 발령 받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내 감정 속에는 참으로 오묘한 감정이 녹아들어 있었다. 바로 동기들이 부여 받은 '발령 부서'가 어디냐에 따라 그들 개개인에게 느끼는 '부러움'의 정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던 것이었다. 간추려 말하면, 총무과나 기획조정실 같은 구청의 소위 '끗발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난 친구들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지독한 질투를 느꼈지만, 교통행정과나 주차지도과와 같은 구청의 '민원 부서'나 평범한 지역 내 '동사무소'로 발령이 난 친구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이번에 발령이 안나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 판단이었지만, 적어도 사회 생활 경험이 전무했던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 공무원의 첫 발령 부서가 어디인지에 대한 사실은 마치 고3 시절 어느 대학을 진학하느냐만큼이나 중요한 사실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차피 같은 월급 받고 연차에 따라 비슷한 속도로 진급하는 직업이 공무원이란 것은 수험생 시절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다른 동기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남들보다 '끗발 있는' 부서 혹은 '간지 나는' 부서에서 일하고 싶었다. 아마도 회사 생활이 무엇인지,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개념이 없었던 반면, 새로운 조직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싶다는 의욕이 조금은 앞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차례 글로도 남겼듯이 지난 몇 년 간의 고된 공직 생활을 통해 이 조직 안에서의 빠른 승진과 성공을 갈망하던 순수했던 마음은 '당연하게도' 빠른 시간 안에 나의 머릿 속에서 사라져 갔다. 부러운 마음에 총무과나 재무과에 발령난 친구들의 면면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던 내가, 8급이 되어 다음 발령지를 골라야할 때가 되니, 어떻게 해야 동사무소에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이상한 척을 해야 중앙 부서로 옮기지 않을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민의 끝에 2년 6개월 간의 일반행정직 근무를 마치고 결국 면직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처음 공직에 들어갈 때 품었던 신규 공무원 시절의 '야망'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새로 옮긴 직장인 학교 행정실에서의 편안하면서도 지루한 분위기에 한껏 익숙해지다보니, 너무나 신기하게도 구청에서 근무할 때의 부정적이었던 기억들은 대부분 잊혀지고, 구청장을 상대로 사업계획서도 제출하고 국과장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업무 보고를 올렸던 구청에서의 근사했던 기억들만 머릿 속에 남아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신규 공무원 시절의 순수했던 야망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공직 생활을 함에 있어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몇 년 간의 고된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애써 억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빈틈 없이 처리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똑똑한 사람, 합리적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 욕구'가 태생적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만약 이 조직이 일반 사기업처럼 업무 기여도에 따른 승진이나 금전적 보상을 조금이라도 신경 써주는 조직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앞뒤 안가리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 마음처럼 녹록지가 않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해선 안되는 조직. 뭔가 아이러닉한 상황이지만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에서는 충분히 통용되는 이야기이기에, 이런 순수한 열망조차도 혹여나 한번 더 나를 깊은 구렁텅이에 빠뜨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기에 아마 당분간은 이러한 욕구가 불쑥불쑥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직장에 의미를 두지 말자, 나대지 말자' 나 자신을 달래가며 직장일이 아닌 퇴근 후의 삶에 몰입하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어떤 길로 가더라도 후회가 남는다는 점에서, 공직 생활의 어느 한 부분에 다다랐을 때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 본능적인 욕구를 한번쯤은 제한없이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아직은 일반행정직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당분간은 행정실에 틀어박혀 주어진 일만 처리하면서 이 고요와 여유를 즐겨야겠다. 다음 부서로 학교를 쓸 건지, 지원청이나 본청을 쓸 건지는 1년 반이 지난 2023년의 겨울 무렵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의 내가 지극히 솔직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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