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옹기종기 Aug 10. 2022

공무원 비상근무, 이대로 정말 괜찮나요?

이젠 바뀔 때도 된 것 같아요

 이번주의 시작과 함께 한반도로 몰려온 비구름은 여전히 서울을 포함한 중부 지방에 시간당 50mm가 훌쩍 넘는 강한 비를 뿌려대고 있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빗물을 뚫고 이미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사라진 도로를 건너간다. 그들의 옆에는 1억 원이 훌쩍 넘는 외제차들이 빗물에 잠겨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멈춰 서 있다. TV뉴스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도로 역시 한 순간의 집중호우로 인해 완전히 잠겨버렸다. 저지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오갈 곳 없는 이재민이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폭우 속에 갇혀 미처 반지하 방을 빠져나오지 못한 3명이 사망했고, 서울 서초구에서도 지하상가 통로의 맨홀 아래로 빨려들어간 4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다. 이외에도 경기도와 강원도 등 중부 지방 곳곳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급류 휩쓸림 등으로 인해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에선 멈출 줄 모르고 빗물이 쏟아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TV와 라디오에서 좋지 못한 소식들만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 가운데 오늘 아침 출근길엔 정말 가슴 한 켠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을 들었다. 폭우 속에 가로수를 정리하던 서울 동작구청 소속 직원이 감전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마 남일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여타 다른 인명피해 소식들보다도 더욱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악전고투를 벌였을 그 구청 직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았더라도 적당히 자기 몸부터 챙겼어야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결국 터질 게 터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에겐 어제오늘과 같은 집중호우나 태풍, 폭설 등의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 상황의 파악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정해진 순번에 따라 응소 문자를 받은 후, 1시간 이내에 지정된 장소로 응소해야할 의무가 있다. 차가 있든 없든 출퇴근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응소 문자를 받은 공무원들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비바람을 뚫고 1시간 내에 관할 동사무소로 달려 나가야한다. 비가 쏟아지는 깊은 밤 중에 어떤 방법으로 응소 지역까지 이동할 지는 오롯이 응소 의무가 있는 공무원 개인의 몫일 뿐이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누군가가 응소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는 또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메워야 한다. 정말 믿기지 않지만 이런 주먹구구식의 비상 응소 방식은 지난 몇 십년간 이어져 왔고, 2022년 여름 현재까지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꾸역꾸역 운영되고 있다.


 응소가 완료된 후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하다. T-셔츠 바람으로 부리나케 달려와 겨우겨우 시간 내에 응소한 직원들에겐 숨 돌릴 틈도 없이 관할 동 전체의 신고 전화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 집이 침수될 것 같으니 모래주머니를 가져다달라, 여기 전봇대 앞에 쓰레기가 하수구를 막을 것 같으니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치워달라, 우리 집은 이미 침수되었으니 양수기를 가져와 빨리 물 좀 빼달라... 쏟아지는 비에 따라 침수에 대한 주민들의 공포가 커져갈수록 응소한 우리 공무원들이 처리해야할 일은 점점 많아진다.


 동장부터 막내 직원까지 할 것 없이 우비와 장화를 꺼내 신고, 민원이 들어온 주소지를 향해 관용차를 끌고 나간다. 심각한 경우엔 막힌 하수구를 뚫기도 하고, 양수기를 이용해 이미 침수가 되어버린 반지하방의 물을 빼내는 등 위험천만한 작업을 해야하기도 하지만, 우리 공무원들에게 주어진 것은 잘 맞지도 않는 절연 장갑과 고무 장화, 그리고 우비뿐이다. 공무원에 합격하면 급류에 휩쓸려 가지 않고, 물 속으로 전류가 흘러도 감전되지 않는 능력이 갑자기 생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굳이 생색을 내고 싶진 않지만, 행정직 공무원들 평소에도 일 정말 많이 한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칼출칼퇴하고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상상 속 공무원'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현장에 나가보면 이것저것 어렵고 힘든 일들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일을 처리하고 책임진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고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는 파렴치한 공무원들도 차고 넘칠 것이다. 다만 그들을 자를 수 없는 공직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적어도 '정상적'이고 '양심적'인 공무원들은 정말 많은 일을 한다. 내가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직원들의 안전도 명확히 보장되지 않고, 밤샘 근무에 따른 정당한 금전적 보상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 상태의 지자체 공무원들에 대한 비상 응소 제도는 정말이지 제발 하루라도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밤을 꼴딱 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당장 다음 달에 들어오는 그 고생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고작 시간당 만 원 안팎의 시간외근무수당이 전부다. 민간이었으면 적어도 40만 원은 받고 처리해야할 어렵고 힘든 일을 고작 4만 원도 받지 못한 채로 꾸역꾸역 처리해낸다.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나서 겨우겨우 오후에 사무실로 출근하면 컴퓨터 화면엔 처리해야할 업무와 민원이 파리떼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다.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내비치면 그게 원래 공무원이 할 일이라며, 너 말고도 그 일 하고 싶은 사람 줄 서있으니 아니꼬우면 당장 사표 내라고, 요즘 공무원들은 제 밥벌이만 생각하지 나라를 위한 마음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조롱섞인 대답만 돌아온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범주의 스트레스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까?


 언론 매체에 출연해 여러 각도로 이번 폭우의 원인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인해 앞으로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 집중호우의 발생 빈도가 더더욱 잦아질 것이라고들 한다. 재난이 예상되면 그에 따른 대비는 당연히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각종 재난 상황에 국가에 의한 국민들의 안전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그 재난 상황에 맨몸으로 대비해야하는 우리 공무원들의 안전 보호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호우로 인해 너무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동작구청 직원과 같은 사례가 더이상은 발생하지 않도록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문제점들을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제발 최소한의 경각심만은 마음 속에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이전 09화 철밥통 공무원이지만 불안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