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발걸음

by 대현

너는 어멍을 참 좋아했다. 꽤 무뚝뚝한 양반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멍은 하루를 거르지 않고 바당으로 나갔다. 어둠이 깔린 새벽보다도 덤덤하게,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고 물질*할 도구들을 주섬거리다 보면 너는 어느샌가 나타나 쪼르르 어멍에게 향했다. 그럴 때마다 어멍은 반찬 꺼내 먹으라는 말 한마디 하고서는 집 밖을 나섰다. 물질을 끝내고 들어오면 자식들 잘 있나 볼 법도 한데, 무념한 걸음에 묻어 난 고됨이 그녀의 걸음을 집 뒤 편으로 재촉했다. 수돗물로 그날의 피로를 정리하던 어멍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너. 가까이 오면 바당물 묻는다는 어멍의 말에도 너는 계속 어멍 옆을 지켰다. 그녀가 해녀복을 벗고, 호미와 부표를 정리하고, 수경을 닦을 때까지, 실실 미소 지으며 어멍을 바라봤다. 바당물에 퉁퉁 부은 손발과 얼굴을 물로 벅벅 씻어낼 때마다, 너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어멍의 등을 보드랍게 닦아주었다. 그리도 무뚝뚝한 어멍이였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그녀를 잘 따랐을까.

새벽마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 해녀복을 입고, 한 손엔 그물과 부표를 이고서 어디론가 향하는 어멍은, 오후만 되면 젖은 몸으로 한 손 가득 그물에 진귀한 것들을 이고 왔다. 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할 일이었다. 어멍은 대체 저 넓고 깊은 바당에서 어떻게 저것들을 짊어지고 오는 걸까? 어멍이 물질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호기심에 너는 몰래 어멍 뒤를 따라간 적이 있었지. 날카롭고 미끄러운 갯바위에 다다른 어멍의 뒤를 살금살금 뒤따라가던 중에, 너는 갑자기 세차게 부는 돌풍에 중심을 잃더니 이내 파도에 쓸려갈 뻔했다. 겨우 어멍이 너의 발목을 부여잡아 더 큰 화는 면했지만, 갯바위에 너의 허벅지가 쓸려 생채기가 크게 났지. 바다에 휩쓸려 갈 뻔했어도, 생채기로 흰 속살이 드러나고 피가 넘쳐흘러도, 실실 웃기만 했다. 아마도 너는 좁은 집 넘어 넓게 펼쳐진 바당 속이 신기하고 궁금했을 것이다. 그날 너의 눈은 분명 그런 눈이었다. 이 세상엔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고 싶다. 머리 위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세상을 상상하면 생채기 따윈 별일이 아니었겠지.

어멍은 그날, 다시는 나를 따라 나오지 말아라, 집 밖으로는 허락 없이 나가지 말아라, 엄포를 놨다. 설렘 가득한 미소만 지어대던 너의 눈에 붉은 얼룩이 졌다. 그제야 허벅지에서 쓰라림이 올라왔다. 어멍의 엄포는 그 어떤 회초리보다도 매섭고 두려웠음이 분명했다. 콩알만 한 눈물이 너의 뺨을 훑더니 콧물과 뒤섞여 끈적해졌다. 너는 고사리손으로 얼굴을 비벼대며 하염없이 울어 댔다. 하도 울어대는 통에 얼굴이 퉁퉁 붓다 못해 검붉게 농익었다. 입에선 헛구역질이 삐져나왔다. 결국엔 경기까지 일으키려 하자, 어멍은 너를 이기지 못했다.


“영심이 네 나이가 열 손가락을 모두 접을 그때까지, 어멍 말 듣고 갯바위 바당으로만 나오지 말어라. 그러면 너한티 물질 가르쳐 주켜. 그러니 울지 말어라.”

“진짜? 열 손가락만 다 접으면?”

“그래 열 손가락. 대신 엄마 말 잘 들어야 하매이.”

“그럼, 세 개만 더 접으면 되겠네!! 알았어!!”

꽤 큰 수확이었다. 훌쩍이던 호흡을 골라내고 콧물과 함께 크게 한숨 들이키더니, 이내 너는 눈물을 잠가 냈다.

너는 그렇게 손가락이 세 번 더 접힐 때까지, 호기심을 꾹 참고 어멍과의 약속을 잘 지켜냈다. 어멍이 말한 대로 거센 갯바위 쪽 바당으로는 결코 향하지 않았다. 바당에서 놀고 싶을 때는 자갈이 자글대는 얕은 바다로 나가 어푸대며 물질하는 흉내만을 낼 뿐이었다. 어멍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그날로 영영 다시는 그 온몸 저릿한 세상으로의 발걸음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기에, 열 손가락의 접힘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너에게는 고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질 : 해녀가 바다로 들어가 채집하는 행위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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