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을 따르던 너의 새벽 총총걸음은 하루 중 제일 경쾌했단다. 하지만 그날 너의 걸음에는 평소와는 다른 멈칫거림이 있었다. 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멍을 따라 물질하러 나갈 채비 중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고로 걸음을 옮기던 너. 원래라면 어멍이 너의 눈앞에 있어야 했다. 화장실에서 해우 중일 것으로 생각하고, 너는 해녀복을 입고 채비를 마쳐 마당으로 나왔다. 어멍이 나오면, 왜 이렇게 늦냐며 애교 섞인 응석을 부릴 참으로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멍은 올 기미가 없었다.
안방으로 향하는 너의 발걸음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매번 똑같은 하루를 보내던 어멍에게 예외 있는 날은 없었다. 안방 문을 열었지만, 어멍은 없었다. 방 안에는 스산한 공기만 가득했다. 너는 텅 빈 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전화기 옆에 가지런히 놓인 쪽지 하나가 거슬렸는지, 곧장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영심아 열 밤만 자고 올 거라, 게난 울지 말고 이서이”(열 밤만 자고 올거야. 그러니 울지 말고 있거라.)
어멍은 너를 나에게 남겨두었다. 소곤대는 울음소리가 눈물을 깨웠다. 그리고 이내 종이 위로 자신을 툭툭 떨어내기 시작했다. 너의 끄억댐이 고요한 집 안을 울음으로 채웠다. 그 소리가 잠자던 오빠를 깨웠다. 네 눈물로 번진 종이 위의 자국들에 놀랄 새도 없이 그는 허겁지겁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어멍이 대합실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지 일말의 기대를 해보며, 뭉클거리는 심장 소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뛰었다. 역시나 항구에 배는 없었다. 저 멀리 통통거리는 고기잡이배만이 눈에 밟혔다. 애써 잡아 두었던 뭉클함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오빠는 너에게 향했다. 너의 붉은 눈에 차오르는 눈물이 다가오는 오빠의 모습을 가렸지만, 터덜거리는 오빠의 잔상에서 너는 알았다. 어멍은 없음을.
“걱정 마라, 울지 말랜 햄네 어멍이. 열 밤만 자믄 온덴햄신게”
(걱정하지 마. 울지 말라고 하잖아 엄마가. 열 밤만 자면 온다고 하잖아.)
어멍이 새벽 고 씨 삼춘네 배를 타고 나갔다는 사실을, 삼춘이 육지로 돌아오는 점심때서야 알게 되었다. 출항 직전에 한 손에 짐을 인 어멍이 급하게 육지에 볼일이 있다며 배에 태워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어멍을 태운 배가 먼발치로 나아가며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할 때, 그녀의 모습이 어땠는지 아느냐? 배 한구석에 폭삭 주저앉아 있던 너의 어멍. 그저 멍하니 뜬 그녀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배가 한림항에 닿자, 그녀는 서서히 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련도, 떨림도, 그리움도. 그렇게 나를 벗어난 그녀는 여태껏 돌아오지 않았다.
열 손가락이 다 접히는 날 밤이 지나도 어멍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 열 번째 날의 배편에는 어두운 표정의 오빠만이 보였더랬다. 왠일인지 너는 오빠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너는 배가 내게 다 닿기도 전에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너는 창고로 걸음을 향했고 곧바로 그 안에 있던 어멍의 것들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쳤다. 마당 한쪽에 버려진 거뭇하게 녹이 슨 낫을 집어 들었다. 손에 힘을 꽉 주어 내팽개친 것들을 찢겨 발랐다. 부표는 갈기갈기 부서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수경은 날카로운 돌멩이로 내려쳐 산산조각 났다. 해녀복, 무딘 낫으로는 잘라내기 수고스러운 일이었고 너는 그것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손이 퉁퉁 붓고 피가 나는데도 너는 멈추지 않았다. 바당과 함께 수 세월을 부대낀 어멍의 모든 것들은 잔디밭에 뒤섞였다.
모든 것을 끝낸 듯한 너는 이제 울 법도 했지만, 눈물을 뒤로 하고 어멍의 모든 것들을 들춰 안고 어리론가 향했다. 고무신이 벗겨진 줄도 모르던 너의 발걸음에서, 너를 생채기 내던 날카로운 갯바위보다도 더욱 날 선 떨림이 울렸다. 때마침 마주친 오빠도 알아채지 못한 채, 너는 곧장 갯바위로 달려들었다. 들춰 안은 것들을 모조리 파도에 쓸려 보냈다. 뒤따라오던 오빠는 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다시 부르튼 너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제야, 너는 그제야 너의 손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하염없이, 네가 이 섬에서 나고 자라 온 그 어느 때보다도 한스럽게 눈물을 쏟아냈다. 갯바위 앞 파도의 거칠고 모진 굉음도 너의 울음소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파도는 그런 너에게 화풀이라도 하려는지, 어멍의 모든 것들을 매섭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저 먼바당 수평선 끝까지 밀쳐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