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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l 29. 2024

21세기 공개 재판과 마녀 사냥

21세기에도 마녀사냥과 공개 재판 그리고 화형식은 존재한다. 너무나 냉소적이고 비인간적인 명제일 수 있겠지만 참인 명제임을 사회생활 한 두 번 경험해 본 이들은 모두 수긍하리라 믿는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기 자신 또한 그 재판의 당사자, 참관자 또는 방관자였을 자기 자신에게 그 일련의 과정을 토해내기엔 그다지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녀 사냥의 방관자이자, 교묘하게 설치된 화형식 정 가운데에 묶여있는 당사자였던 사람으로서 한동안 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꺼내지 못했지만, 이 일이 생각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 일상임을 모르는 이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감히 발칙하게 써보고자 한다.



 

알력다툼을 넘어선 기싸움


내가 다녔던 스타트업에는 서로 앙숙이었던 두 팀장이 있었다. 마케팅 팀장과 디자인 팀장직을 맡고 있던 둘은 개인적인 성향도 다르고, 팀 의견도 매번 대치되었다. 서로를 향한 기싸움이 지속되다 보니 서로에 대한 반감 또한 점점 커져서 결국엔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둘 사이의 사소한 오해가 계기가 되어 큰 불로 번지려 하던 때, 여느 때처럼 기싸움으로 끝나겠지 생각했지만, 그날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회의 때 감정 소비로 끝났어야 할 이 둘의 갈등은 팀장들만이 모여 있던 약 10명 내외의 카톡방으로 연장전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이날만큼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굳이 자신들의 갈등 상황을 카톡방에 구구절절 써내려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의견에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세력의 우세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정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식선의 얘기일 수 있다.




오늘도 카톡은 팝콘각이다!!


정말 웃긴 건 이 과정이 모두 적나라하게 카톡으로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 와중에, 기싸움을 벌이던 이 둘의 의도와는 달리 카톡 단체방에 있던 다른 리더들은 방관하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팀 리더들은 실시간으로 이 둘의 싸움을 관람하면서 키득거리기에 바쁠 뿐이었다. 대표, 이사, 팀장, 파트장 할 것 없이 서로 모두가 싸움이 고조되기 전부터 "팝콘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 둘의 싸움을 야만적으로 즐기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 방관자 중 한 명이 나였다.

 카톡방에서의 둘의 싸움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결국 싸움의 승자는 없이 끝날 거라 생각한 이때. 이대로 끝나면 될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 야생의 법칙은 승자가 없는 꼴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싸움이 시시하게 끝나려던 것을 보지 못한 한 녀석이 한쪽의 편을 들고, 또 다른 방관자가 다른 편을 들더니 이내 세력이 나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저한 계급주의가 팽배한 이 전쟁터에서 세력의 지지보다 더욱 강력한 힘은 대표를 포함한 몇몇 윗것들의 의견이었다. 나를 포함한 그 몇몇 윗것들의 의견으로 자연스럽게 지지세력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세가 약해진 쪽의 의견은 묵살되고, 잘못된 의견으로 판가름 나고 있었다. 우세한 자는 거만해졌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자는 서서히 나약하고 초라해졌다. 결구 이 전쟁은 패한 사람의 인성과 업무 능력이 비참할 정도로 폄하되는 재판과 화형식으로 변모가 되어야 끝이 났다.




논리적인 이해 충돌의 건전한 토론은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갈등의 당사자들 간의 감정적 소용돌이와 남의 집 불구경하듯 구경하는 몇몇 방관자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카톡 단체방 속 재판은 꽤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재판의 당사자들은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는 마녀사냥과 화형식을 당하고 나서야 그 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팝콘과 콜라를 양손 두둑이 챙기고 게걸스럽게 처먹으면서 방관하던 나는 퇴사 말미에 비슷한 상황에 쳐해 져 화형식의 당사자가 되었다(이 애긴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이제는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 더 성숙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방관자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되자."

"감정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어." 이런 전형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를 듣고 싶거들랑 나보다 훨씬 성숙하고 성공에 가까운 사람들이 쓴 아포리즘을 읽기 바란다. 말이 쉽지 속세에 현존하는 우리들로서 이런 도덕적인 원칙 하나도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적어도 팝콘을 게걸스럽게 먹어가며 방관하는 사람이 혹시나 나 자신은 아닐지 곱씹어 보는 계기 정도는 되었기를 바란다. 만에 하나 이와 같은 상황이 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이미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힌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다면, 조용하고 은밀하게 잡코리아와 사람인을 켜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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