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와 히치콕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11

by 정영택

그동안의 과정에서 우리는 기획의도가 담긴 여러 장면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제 이 장면들을 연결하는 방법, 몰입을 위한 구성의 몇 가지 방법들을 알아보자.



영화 속에서 테이블 밑에 있는 폭탄이 갑자기 터진다면 좋은 영화가 아니다.
- 알프레드 히치콕



폭탄이 터진다. '몰래카메라' 버전과 '서프라이즈' 버전


'몰래카메라' 버전


'서프라이즈' 버전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버전 (아이러니)

사건은 일어날 것이냐? 떻게 될 것이냐?

1) 미리 제작진이 테이블 밑에 폭탄을 설치했어요.
2) 이제 모두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
3) 드디어 폭탄이 터졌습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버전 (서프라이즈)

사건은 왜, 어떻게 일어난 것이냐?

1) 모두가 단란한 저녁식사를 하던 그때!
2) 폭탄이 터졌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3) 누군가 시한폭탄을 설치한 것!


폭탄이 터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히치콕의 말을 예로 들어봤다. 하나는 폭탄 설치 장면을 앞에, 다른 하나는 뒤로 배치한 것인데, 장면(컷)의 배치만으로 다른 종류의 몰입을 끌어낸다. '시나리오 가이드'에서는 이런 구성을 '아이러니''서프라이즈'로 설명했다.


'아이러니'는 출연자 중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시청자는 알고 있는 상황에 기초해 있고, '서프라이즈'는 출연자와 시청자가 모두 모르고 있는 상황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기초는 무엇을 만들어 낼까?


등장인물들이 폭탄이 장치된 테이블 주위에 빙 둘러앉아 있다고 하자. 관객과 등장인물들 모두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번의 서프라이즈, 즉 폭탄이 터지는 것뿐이다. 그러나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르고 있다면, 관객은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
서프라이즈가 매우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으며 그래서 거의 모든 영화에 사용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략) 그러나 서프라이즈를 사용한다면 관객은 그 장면(실제로 폭발하기 전까지)에서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서스펜스를 사용한다면 관객은 과연 등장인물들이 폭탄을 발견할 것인지 죽게 될 것인지를 숨죽인 채 지켜보게 돼 지루할 수도 있었을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 | D.하워드·E.마블리 공저


'아이러니'는 서스펜스, '서프라이즈'는 충격


'아이러니'와 '서프라이즈'는 몰입을 위해 빈번하게 사용되는 구성이다. 강력한 나머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처럼, 콘텐츠 전체 포맷에 구성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콘텐츠 적재적소에 빈번히 사용되는데, 무한도전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를 예로 보자.


'서프라이즈'(출처 MBC)


진짜 돈가방인 줄 알고 열어보는 멤버들, 하지만 쓰레기로 가득 찼는데! 멤버 모두 충격을 받고, 우리도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다. 뒤이어 플래시백으로 박명수가 돈가방을 바꿔치기 한 장면이 나온다.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기법인 플래시백은, 사건의 인과를 설명하는 도구로 서프라이즈 구성에서 많이 사용된다.



'아이러니'(출처 MBC)


우선 박명수를 포위하는 멤버들을 보여준다. 박명수가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청자와 멤버가 알고, 박명수만 모르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며, 박명수가 잡힐까 말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생긴다. 시청자가 몰입되는 것이다.


위험한 초대(출처 KBS)


'아이러니'는 예능 게임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2002년 방송됐던 KBS ‘일요일은 즐거워-MC 대격돌 위험한 초대'에서는 '아이러니'를 사용한 게임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게임 방식은 각각의 출연자가 정한 어떤 행동이나 단어를 게스트가 말하면 벌칙을 받는 것이다. 이때 그 행동과 단어는 시청자가 볼 수 있게 출연자들 얼굴 밑에 자막으로 표시했다. 게스트를 제외한 시청자와 멤버들만 미리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 그래서 우리는 '게스트가 단어를 말할까?', '누가 벌칙에 당첨될까?' 몰입해 즐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야기가 다음 사건으로 전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진 않지만, 시청자의 몰입을 위해 쓰이는 구성이 있다. '시나리오 가이드'에서는 이런 구성을 '준비''여파'로 설명했다.

준비(preparation) 신이란 관객에게, 때로는 등장인물에게,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틱한 장면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장면이다. 여파(aftermath) 신이란 관객과 등장인물에게 방금 지나간 드라마틱한 장면을 '소화(digest)' 할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 | D.하워드·E.마블리 공저


'준비'는 방송판에서 '니주를 깐다'고도 말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 전에, 분위기를 잡으려는 장면이나 사전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을 붙이는 걸 말한다.


1박 2일(출처 KBS)


런닝맨(출처 SBS)


1박 2일에서 이만기와 강호동의 천하장사 재대결을 시작하기 전, 예전 자료화면을 붙였다. 자료화면 없이 바로 재대결을 했다면 어땠을까? 런닝맨에서는 이광수가 전율미궁(귀신의집)에 들어가기 전, 멤버와 제작진이 전율미궁에 대한 정보를 주며 바람을 잡는다. 이 장면 없이 바로 전율미궁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다음 장면에 대해 기대나 의문을 갖도록 시청자를 준비시키지 않는다면, "야! 진짜 재밌는데!"가 아닌 이런 반응일 것이다. "어? 아! 어... 그렇구나... 재밌네"


'준비' 장면은 다음 장면과의 대비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이걸 것 같다.


운수 좋은 날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충격이 크다. 운수 좋은 날처럼 '오늘은 어쩐지 운수가 좋다'가 최악의 장면을 맞닥뜨렸을 때 시청자도 충격이 크다. 나쁜 사건이 터지는 장면 앞에 기분 좋은 장면을 배치시킨다. 좋은 사건이 터지는 장면 앞에 우울한 장면을 배치시킨다. 장면의 감정을 대비시켜 시청자를 흔드는 것이다.


대비에 의한 준비신은 관객의 정서적 진폭을 크게 함으로써 곧 닥쳐올 드라마틱한 장면의 임팩트를 극대화시킨다.
- 시나리오 가이드 | D.하워드·E.마블리 공저

'여파'는 간단하게 다음 예를 들어보겠다.


골때리는 그녀들(출처 SBS)


어떤 중요 사건이 리플레이되면서, 방금 지나간 사건을 소화할 수 있도록, 장면을 사건 뒤에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었다. 이 골을 한번 더 보여주고, 선수들의 반응을 붙여 이 골이 갖는 의미에 대해 드러냈다. '중요한 순간에 터진 골'이라는 의미를 시청자에게 소화시켜 주려는 의도다.

예능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의 리액션, 토크를 붙여 방금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강조한다. 시청자가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장면을 짚어주며, 해당 장면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기획의도가 드러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파'를 이용해서 의도를 소화시키자.




'아이러니'나 '서프라이즈', '준비', '여파'는 연출과 편집을 위해 새로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자. 우리는 기본적으로 '서프라이즈'를 좋아한다.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처럼 기분 좋은 놀람을 선사하고, 반응을 즐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장꾸 기질이 있는 거다. 또 '아이러니'는 얼마나 좋아하나. 학교에서 몰래 사귀고 있는 커플이 있는데, 나만 그걸 알아버렸다! 그럼 그 커플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눈엔 다르게 보인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자신만이 더 얻기 위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비밀을 말해줘'라며 애원한다.

'준비'와 '여파'도 우리가 말할 때 늘 하는 습관이다. 중요한 말을 할 때 바로 본론을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많든 적든 뜸을 들이는 거다. 이게 바로 '준비'다. 본론을 말한 다음 충격받은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우쭐대며 그 사건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한다. 이게 '여파'다. 모든 편집 구성은 우리 생활 안에 있다.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몰입되는 구성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거다. 사람이 즐길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떨 때 흥미를 갖는지, 재미있게 얘기하려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먼저 나를 되돌아보고, 사람들도 관찰하자. 그리고 편집에 적용시켜보자. 솔직히 구성은 정해진 것이나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게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들어보자.


총을 든 살인 청부업자가 길 저편에서 걸어온다. 경찰 몇 명이 그 살인 청부업자를 저격하기 위해 쓰레기장 뒤나 빌딩 옥상 같은 곳에 숨어 있다. 이제 관객들은 당연히 격렬한 총격전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거기서 '인수분해'를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수학에서 배우는 인수분해 말이다.
살인 청부업자와 총을 x, 경찰을 a, b, c, d, e로 한다. 보통 총격전을 수식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된다.
ax + bx + cx + dx + ex
이것을 x로 묶으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다음과 같다.
x(a+b+c+d+e)
영화식 표현으로 고치면 이런 느낌이 된다.
첫 신에서 총을 든 살인 청부업자가 길 저편에서 걸어온다. 거리에는 경찰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다음 신은 그 길을 떠나가는 살인 청부업자의 뒷모습이다. 거리 여기저기에는 a부터 e까지의 경찰이 쓰러져서 죽어 있다. 총을 쏘는 신은 전혀 없지만, 그런 방식으로도 총격전과 살인 청부업자의 실력을 표현할 수 있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저


구성은 이렇게 유연한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처럼 몰입시키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당신이 그 구성의 창시자다. 정말 편집은 재밌다.


다음 편은 편집본에서 날려야 한다면, 무엇을 날려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keyword
이전 11화레전드 장면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