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장면을 만들어보자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10

by 정영택

이제 진짜 편집의 과정으로 들어가 보자. 다시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을 예로 들겠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아웃라인 결(結) 부분
부상 입은 멤버를 대신해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가 완주한다(끝판왕 장애물의 극복)

우리는 '멤버들의 실제 경주' 씬을 편집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씬에서 전달하고 싶은 의도와 감정을 분석하라.


편집을 시작하기 전 기획의도를 상기하자. 기획의도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이 뭉쳐 봅슬레이를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것'. 이제 생각하자. 나는 기획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이 씬에서 뭘 전달하고 싶은가?


이 씬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
1. 경주 전, 멤버들의 긴장감, 비장함
2. 경주 전, 서로를 응원하는 멤버들의 훈훈함
3. 경주 전, 부상으로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형돈, 전진의 미안함
4. 실제 경주, 과정의 긴박감, 뛰는 멤버들의 상태와 감정
5. 실제 경주, 부상으로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형돈, 전진의 걱정
6. 완주 후 멤버들의 환희, 안도, 감격


편집할 씬에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 감정에 대해 정리한다. 이건 내가 지금 붙이고 있는 컷들이, 전달하려는 내용과 감정을 담고 있는지 확인하는 지도이고 체크리스트다. 포스트잇에 써서 모니터에 붙여놔도 좋다.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놓치고 있는 것이 없도록 해줄 것이다. 이제 장면을 구성해보자.




장면 구성 1 | 경주 전 (1분 12초)
경주 전, 멤버들의 긴장감, 비장함. 서로를 응원하는 멤버들의 훈훈함을 전달한다.


전편에서 행동과 반응을, 보고 싶은 대로 붙인다고 했다. 이를 위해 우선 내가 전하려는 의도를 행동으로 드러내는 출연자를 찾자고 했다. 경기 전, 모든 멤버들의 긴장감과 비장함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지 찾아보자.


경주 전, 모든 멤버들의 긴장감과 비장함을 드러내는 행동(출처 MBC)

무도는 경주 전, 모든 멤버가 파이팅하는 행동이 담긴 풀샷을 첫 컷으로 선택해 긴장감과 비장함을 전달했다. 웃음기 사라진 멤버들과 유재석의 굳은 얼굴이 드러나는 원샷을 붙여 우리는 이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이팅 행동 후의 반응으로, 경주를 뛰지 않는 다른 멤버(정형돈, 전진)가 미리 피니시 라인으로 내려가 대기하게 됐고, 그래서 스타트 라인에는 경주를 뛰는 선수인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만 남게 됐다.


행동과 반응을 붙여 사건을 전진시켰다(출처 MBC)


여기서 바로 경주 스타트로 넘어가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긴장감과 비장함이 부족하다. 경주를 뛰는 멤버들의 표정이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대로 붙이자.


보고 싶은 컷을 붙였다(출처 MBC)

각 멤버의 표정이 드러나는 원샷을 통해 긴장감과 비장함을 다시 강조했고, 사과하며 포옹하는 장면을 붙였다. 이 컷으로 우리는 적어도 세 명은 경기 전, 갈등이 해결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경기 전 멤버들의 긴장감과 비장함은 보여줬다. 근데 뭔가 빠졌다. 편집 전 모니터에 붙여놓은 체크리스트를 보자. 아! 부상으로 경주를 뛰지 못하는 정형돈, 전진의 미안함을 전달하지 않았다. 미안함을 전달하는 행동을 찾자.


미안함을 전달하는 행동을 찾았다(출처 MBC)


정형돈과 전진이 피니시 라인으로 내려가기 전, 촉촉한 눈으로 형들을 부르며 파이팅 하는 행동을 찾았다. 위 사진의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만 써도 미안함은 전달되지만 약간 부족하다. 그래서 정형돈과 전진이 멤버 모두의 이름을 부르는 행동과 형들의 반응을 각각 붙여 미안함을 강조했다. 이 컷들은 분량을 잡아먹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컷인데도 왜 이렇게 붙였을까? 기획의도가 빨리 '봅슬레이 경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컷들로 우리는 알게 된다. 지금까지 드러났던 갈등들이 이미 모두 풀렸구나. 완주를 위해 다들 한마음이 됐구나. 이들이 이렇게 기원하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경주 전 보여줄 건 보여줬고 해결할 건 해결해서, 감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놨다. 이제 실제 경주를 붙일 차례다.




장면 구성 2 | 실제 경주 (5분 1초)
실제 경주의 과정과 긴박감, 뛰는 멤버들의 상태와 감정, 안 뛰는 멤버들의 걱정


미리 말하지만 봅슬레이 완주 기록은 57.40초이다. 무도는 의도와 감정을 담기 위해, 57.40초를 5분 1초로 늘려놨다. 어떻게 붙일지 보자.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 직전까지 (1분 34초)

가장 긴장되는 순간, 스타트 라인(출처 MBC)


우리는 모두 학교 다닐 때 달리기 시합을 해봐서 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바로, 스타트 라인에서의 출발 직전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의 긴장감을 모두 경험해봐서 안다. 이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무도는 1분 34초의 시간을 썼다. 앞서 붙인 경주 전 장면은 1분 12초다. 사건을 진전시키는 행동은 없지만, 그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20초가량을 더 썼다. 형들을 걱정하는 전진과 정형돈의 컷을 지나, 우리가 보고 싶은 스타트 라인 앞에서의 멤버들을 붙였다. 그들의 표정이 보고 싶고 말은 없지만 그 표정으로, 긴장감을 단번에 강렬히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클로즈업 컷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더불어 정형돈과 전진의 클로즈업 컷도 이어 붙여서, 멤버들 모두가 몸도 마음도 함께 한다는 의도를 전달했다.


출발 직후부터 착석까지 (43초)

착석에 성공할 수 있을까?(출처 MBC)


다시 출발 직전 다음으로 강렬했던 순간을 생각해보자. 출발 신호가 울린 후 첫 발을 내딛을 때의 불안감이 떠오를 것이다. 무도는 첫 발을 내딛는, 봅슬레이에 착석하기까지의 7.03초를 43초로 늘렸다. 멤버들은 전의 이야기들에서 훈련할 때 착석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청자는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확장해야 "착석에 성공할까? 실패할까?" 애가 타서 몰입된다. 하지만 촬영된 시간은 7.03초뿐. 방법은 7.03초 동안 다양한 각도로 촬영된 컷들과 정형돈, 전진의 걱정스러운 리액션 컷을 반복해 이어 붙이는 것이다. 컷을 붙이는 빈도수를 높여서 리얼타임보다 길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시청자는 안도감을 느끼고, 다음 질문을 하게 된다. "완주할 수 있을까?"


본 코스부터 완주까지 (2분 44초)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출처 MBC)


출발 직후부터 착석까지 리얼타임을 6배 늘렸지만, 착석 후 본 코스부터 완주까지는 2배 정도밖에 늘리지 못했다. 이는 실제 경주 과정의 긴박감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긴박감을 전달하려면 봅슬레이 본연의 스피드를 살려야 한다. 리얼타임을 너무 심하게 늘려버리면 몰입이 깨진다. "아니, 경주장이 마라톤 코스야? 왜 이렇게 안 끝나?" 또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있는데, 다음을 보자.


실제 경기 컷 분할


위 사진은 실제 경기를 구성하기 위해 붙인 컷들을 볼 수 있는 타임라인이다. 간격이 넓으면 컷의 지속시간이 긴 것이고, 간격이 좁으면 컷의 지속시간이 짧은 것이다. 사진을 유심히 보자. 본 코스 부분이 유난히 촘촘하다. 이는 본 코스 부분이 짧은 지속시간(Duration)을 가진 컷들로 붙어져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 위의 사진에서 컷들의 크기를 보면, 경주를 보여주는 풀샷과 멤버들의 원샷을 번갈아 사용했다. 컷의 지속시간은 2분 음표, 4분 음표, 8분 음표처럼 길이를, 컷의 크기는 강(클로즈업), 약(풀샷)을 조절한다. 우리가 음표의 길이와 강약을 조절해 음악의 리듬을 만드는 것처럼, 컷의 지속시간과 사이즈를 조절해 편집 리듬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무도는 빠른 리듬을 만들어 시청자에게 빠른 속도를 느끼게 했다(위 사진을 보면 완주 부분 컷의 간격이 넓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완주 컷부터 지속시간을 늘려, 봅슬레이가 그러하듯 빠른 리듬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속도감에 젖었던 시청자의 긴장도 풀려간다).


또한 컷의 내용은 경주 전개를 보여주는 풀샷, 뛰는 멤버들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원샷, 안 뛰는 멤버들이 걱정하는 원샷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의도했던 대로 실제 경주 과정, 멤버 상태, 걱정하는 마음을 모두 전달했다.




장면 구성 3 |완주 후 (3분 56초)
멤버들의 환희, 안도, 감격


이제 '봅슬레이를 완주할 수 있을 것이냐'란 최대 갈등이 해결됐다. 그리고 갈등의 해결을 통해 주제가 선명해진다.


주체 못 하고 드러내는 기획의도(출처 MBC)


출연자의 눈물과 포옹같은 행동과 말과 자막이, '봅슬레이를 통해 감동을 주겠다'는 기획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엔 박명수가 안 울었다고 하고 유재석들이 놀리는 유쾌한 컷들도 붙여 '웃음'도 줬다. 우선 여기서 살펴 볼 편집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본 코스 ~ 완주' 편집 컷

'완주 후' 편집 컷


컷의 사이즈를 파란색과 핑크색으로 나눴다. 파란색은 풀샷, 그룹샷이고 핑크색은 클로즈업~바스트샷, 원샷이다. 비교해보자. 위 사진은 파란색이 많고, 아래 사진은 핑크색이 많다. 윗 사진인 본 코스 ~ 완주 편집 컷은 경주 과정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넓은 샷을 많이 붙였다는 의미다. 반대로 아랫 사진인 완주 후 편집 컷은 클로즈업~바스트샷, 원샷을 많이 붙였다는 의미다. 멤버들의 눈물과 포옹 같은 행동을 통해, 감동이라는 감정을 강렬히 전달하려고 컷의 크기가 좁은 샷들을 주로 붙였다. 감동은 '봅슬레이 편'의 기획의도이고 시청자에게 확실히 전달돼 레전드가 됐다.




이렇게 최대 갈등을 해결한 후엔 기획의도가 선명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건 연출의 흐름이 제대로 흘러갔다면, 자연스럽고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출연자에게 동기를 심어주는 장치를 마련하고, 성취하기 힘든 목표를 향해 힘든 과정들을 겪게 하며, 마침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준비하고 실행했다면, 그 흐름은 제대로 흘러가서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시청자에게 기획의도를 자연스럽고도 분명하게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에 실패한다면 매우 힘든 일이 발생한다. 편집에서 흐름을 잡고자, 온갖 컷들을 긁어 모아 없는 장면을 만드는 등의 억지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장면으로는 구색만 맞출 뿐,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같은 감동은 줄 수 없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 몸에 좋다.

이제 우리는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됐으니, 다음 편은 만든 장면을 써먹는 구성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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