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8

by 정영택

다시 스토리텔링의 기본을 말하는 다음 글을 보자.

만약 관객이 '누군가'와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이번 글은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면' 이란 문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어떻게 출연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린 이걸 이제부터 '갈등'이라고 불러보자.


갈등?


'갈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싸우는 걸 생각한다. 누군가와 치고받고, 말싸움하고, 시시때때로 나타나 방해하고. 물론 갈등이다. 명확히 상대방이 있는, 누가 봐도 갈등 상황. 하지만 상대방이 없는 갈등도 있다. 다음을 보자.


런닝맨, 정글의 법칙(출처 SBS), 놀면 뭐하니(출처 MBC)


'런닝맨' 이광수 | 혼자 우승하고 싶은데. 배신할까? 말까? '선택의 갈등'
'정글의 법칙' 김병만 | 여기서 생존해야 하는데 너무 위험하다. '자연과의 갈등'
'놀면 뭐하니' 유재석 | 하프 너무 어렵다. 할 수 있을까? '상황과의 갈등'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우리 인생에서도 '사람과의 갈등' 보다 더 많은 것이 이런 갈등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갈등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데 나타난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출연자의 성취를 어렵게 만든다면 외적이든 내적이든 뭐든지 될 수 있고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을 보자.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출처 MBC)

미션은 마지막까지 진짜 돈가방을 가진 멤버가 300만 원을 갖는 것. 멤버들에게 모두 '자신이 300만 원을 갖겠다.' 란 동기가 부여된다. 그리고 박명수와 노홍철(신구악마) 동맹이 진짜 돈가방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들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이 돈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에게 장애물, 갈등 요소가 된다.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출처 MBC)


이 갈등 요소는 노홍철이 혼자 돈가방을 가지고 튀는 행동을 촉발한다. 그래서 다음 컷에 박명수가 노홍철을 추격하는 장면이 붙는다. 그래서 결국 박명수가 노홍철을 잡아내는 레전드 명장면이 탄생한다. 생각해보자. 박명수와 노홍철이 갈등 없이, 돈을 둘이 반반 나누고 끝냈다면 명장면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300만 원을 갖겠다.' 란 동기는 멤버들의 행동을 촉발하는 불씨이고, 그런 멤버들 간의 갈등은 매 장면 레전드를 쏟아내며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엔진이다. 그리고 이 갈등 행동은 '그래서 ~했다.'(노홍철이 돈가방을 갖고 튀어서 박명수가 추격했다) 바로 원인과 결과, 필연성과 개연성 있게 이어 붙여야 한다. 갈등도 일단은 말이 돼야 하니까.


이야기를 위한 최강의 엔진


삼시세끼, 바퀴 달린 집(출처 TVN)


"이 세상엔 갈등이 너무 많아서 지쳤어. 난 '삼시세끼'나 '바퀴 달린 집' 같은 갈등 없는 힐링 콘텐츠만 볼 거야."라고 하지만 잘못짚었다. 그런 힐링 콘텐츠들도 갈등이 있다. 자연 속에서의 힐링이 목적인 두 콘텐츠에서도, 낚시가 안 되는 '바다'와 보일러가 고장 나버린 '바퀴 달린 집'이 장애물이다. '꽃보다 청춘'이나 '윤식당'에서도 길을 잃어버리거나, 단체손님이 오는 장애물이 있다. 목적의 성취를 방해하는 갈등이, 추격전이나 추리물처럼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느냐 힐링 예능처럼 간간히 드러나느냐, 정도의 차이지 갈등이 없는 예능은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갈등'은 시청자를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최강의 엔진이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을 하게 된 출연자가 뭔가를 실패하거나 못하면 애가 탄다. '참바다 유해진이 생선 좀 낚아야 밥도 해먹을 텐데 낚을 수 있을까?', '영하 12도인데 보일러가 고장 났네. 추운데 어떻게 캠핑할까?', '늙으신 분들이 길까지 잃어버렸네. 잘 찾아가실 수 있을까? 어떻게 찾을까?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 성공을 기원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리며 몰입한다.


'갈등'은 왜 최강의 엔진이 됐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이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모두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못된 상사가 나타날 수도 있고 돈이 없는 상황이거나 자존감이 떨어져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돈이냐 정의냐'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후회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생에 장애물과 유혹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출연자가 어려워하고 고통받을수록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너라도 잘됐으면 좋겠다며 응원하게 된다.

또 우린 역시 그런 어려운 경험이 많아서 깐깐해진다. 갈등이 너무 강하면 "아니, 이걸 어떻게 성취해? 신도 못 하겠다. 저걸 왜 하려는 거야?"라며 출연자에게 감정이입을 안 한다. 반대로 갈등이 너무 약해서 출연자가 일을 너무 쉽게 성취해버린다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에게 이게 뭐야. 그래서 어쩌라고."

간단히 말해서 갈등의 크기에 대한 답은 다음 글과 같다.


목표의 달성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갈등이 세면 시청률이 오르거나 이슈가 된다. 그래서 일부러 현장에서 '갈등' 상황을 연출하거나, 편집으로 '갈등' 상황을 조작하는 PD도 있다. 나 또한 리얼리티 예능 연출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상황'과의 갈등 상황이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편집을 할 때 시청자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 선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방송은 다수의 시청자가 본다. 예능을 하니 즐거움을 줘야 한다. 즐거움을 주려면 불편함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결론은 '인간이 봤을 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갈등'까지 보여주자. 그렇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무엇에 불편함을 느낄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는 출연자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배운 도덕을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하는 갈등이었다. 훔치거나 새치기를 하거나 룰을 어기는 행동은 상황이 유쾌하지 않다면, 그 자체로 불편하고 출연자를 비호감으로 만든다.

둘째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상황에서의 갈등이었다. 김기덕 영화를 보며 느끼는 '불편함과 거북함'과 같다. 간단히 예를 들어 '불편한 진실'의 상황은, 훔치거나 새치기를 하거나 룰을 어기는 행동으로 이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일들로 좌절하는 일이 많으니까. 보도, 시사, 교양같이 공적 저널리즘이 중요한 장르에서는 필요하지만, 예능은 시청자들이 즐거우려고 보는 건데 가능한 걷어내거나 희석시켜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불편함'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예능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에 제작진은 그걸 모두 반영하려고 한다. 그래서 콘텐츠에 '갈등'은 없어지고, 그래서 몰입이 안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든 걸 반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상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달리 느끼는 불편함을 모두 찾기보다는, 인간의 공통된 '불편함'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해보는 것이 어떨까.


지금까지 '영상 스토리텔링의 기본'에 대해 정리해봤다. 이를 유념하면서 다음 편부터는 장면의 실제 구성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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