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관객이 '누군가'와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이번 글은 '만약 시청자가 누군가와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란 문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어떻게 시청자가 출연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인물', 출연자는 뭔가를 원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게 있다. 출연자도 원하는 게 있어야우리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출연자는 뭔가를 원해야 한다. 봅슬레이를 완주하고 싶든, 벌칙을 면하고 싶든, 가왕이 되고 싶든, 정신력을 인정받고 싶든, 상금을 얻고 싶든, 혼자 있고 싶든 뭔가를 원해야 한다. 중요한 건 '원한다'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뭔가 행동한다. 출연자도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역시 우리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완주를 위해 봅슬레이 훈련을 하든(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벌칙을 면하기 위해 이름표를 뜯든(런닝맨), 가왕이 되기 위해 복면을 쓰고 노래 실력을 뽐내든(복면가왕), 정신력을 인정받기 위해 UDT 훈련에 참가하든(가짜사나이), 상금을 얻고 싶어 스파링을 하든(좀비트립), 혼자 있고 싶어 방문을 걸어 잠그든(영화 김씨표류기) 뭔가를 해야 한다. 원하는 상태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그렇다면 그 사람의 욕망은 풀리지 않는다. 대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행동하는 출연자를 보고 대리만족을 얻는다. 한 마디로 출연자를 같은 사람으로 느껴 감정이입이 되게 하려면, 출연자가 뭔가를 원해서 행동하는 장면을 찾아 편집하자. '원해서 행동하는 장면'은 뭘까? '나 혼자 산다 화사 편'(247회)을 예로 들어보자.
나 혼자 산다(출처 MBC)
화사는 옥상에서 이불을 털고 집에 들어왔다. 너무 더워서 시원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찾은 행동하는 장면은, 옷에 선풍기를 넣고 쐬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엄청 더웠나 보다. 화사가 털털하구나." 한방에 화사의 상태, 성격까지 알 수 있다. 집에 들어온 뒤에 "엄청 더웠어요. 근데 제가 에어컨을 잘 안 켜거든요." 혹은 선풍기를 쐰 뒤에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제가 좀 털털하단 소리를 들어요."라는 인터뷰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느끼다시피 이 인터뷰가 필요할까? 소설은 주인공의 느낌이나 생각, 성격을 글로 적어내면 되지만, 영상은 그걸 화면으로 보여줘야 한다. 화면을 보고 시청자가 추측하고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하고 싶은 걸 인터뷰나 대사, 내레이션, 자막으로 처리하는 건, 소설에서 그냥 글로 적어 버리는 것과 같다. 쉽지만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내기 어렵다. 인터뷰, 대사, 내레이션, 자막으로 처리하기 전에, 출연자의 욕망이나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을 찾아보자. 오래 걸리지만 가능하면 그런 장면들로 컷을 붙이는 훈련을 하자.
'동기', 출연자가 원하고 행동하는 이유가 뭐지?
범죄도 동기가 중요하다. 동기가 없으면 범행이 이해가 안 간다. 출연자에게도 동기가 중요하다. 동기가 없거나 부족하면, 시청자는 출연자의 욕망과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 "왜 저렇게까지 원하는 거지?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이해가 안 가는데 출연자에게 감정이입할 수는 없다. 출연자의 욕망이 클수록, 행동이 힘들고 험난할수록 그 불씨인 동기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동기라는 불씨가 크면 좋지만 작은 불씨도 상관없다. 작은 동기로 출연자의 욕망이 작은 채 시작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불씨(욕망)를 키우면 된다. 다시 한번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을 생각해보자. 처음에 멤버들은 봅슬레이 도전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봅슬레이에 대한 재미'라는 작은 불씨를 지폈고, 그 불씨를 시작으로 훈련과 부상 등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봅슬레이 완주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반드시 출연자의 동기를 넣자. 동기도 인터뷰 한 마디로 끝내는 것이 아닌, 동기가 드러나는 행동을 찾아 붙이자. 유념하자. 김태호 PD는 작은 불씨를 지피기 위해 '봅슬레이 편'에서 한 편을 통째로 멤버들의 동기부여에 쏟아부었다.
파이널 어드벤처(출처 MBC)
나는 MBC '파이널 어드벤처'의 연출을 맡았었다. '파이널 어드벤처'는 태국·사이판에서 익스트림 스포츠 레이스를 통해 우승자를 정하는 프로그램인데, 회당 제작비 2억이 넘는 스케일이 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여'가 없었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누가 봐도 힘든 경주를 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동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도 너무나 힘든 경주를 하기 때문에 강력한 불씨를 초반에 심어놨어야 했는데 말이다. 시청자들은 초반부터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출연자들은 고생을 했지만 자기들만의 레이스가 돼버렸다. 잘못됐다는 감만 있고, 이유를 명확히 몰랐던 그때라 아쉽다. 이유를 알았다면 고쳤을 텐데. 이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은 나중에 다시 한번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