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을 피하는 법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4

by 정영택

컴퓨터를 잡고 편집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촬영 내용을 파악해 사건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리스트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참이다. 물론 아직 펜을 잡고 편집한다.


아웃라인, 이야기의 뼈대를 세운다


편집 전 아웃라인(개요)을 작성하는 것은 신경 쓸 일을 줄여준다. 다음 글을 보자.

아웃라인이 든든하면 더 이상 지금 쓰고 있는 신이 스토리에 걸맞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스토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이 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쓰여지고 있는지를 몰라서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은 최소한 초고를 쓰기 전의 아웃라인을 만드는 단계에서 해결되었어야 할 걱정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편집을 시작하기 전 만들어진 아웃라인은, PD를 든든하게 한다. 이 아웃라인은 기획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아웃라인은 정확한 형식이 없다. 문장이나 그림, 표 또는 단어로만 이루어질 수도 있다. 편집하는 내가 알아보면 되지 않나. 그리고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 글도 보자.


처음부터 완벽한 아웃라인을 잡는 것은 아니다. 일단 스토리의 큰 뼈대만으로 된 아웃라인을 만든 다음에 실제로 신을 써나가기에 앞서 조금씩 조금씩 디테일을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 스토리에 대한 시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을 예로 들어(무도는 내 선생님이다), 스토리의 뼈대를 만들고 디테일을 갖다 붙이는 과정을 살펴보겠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기획의도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이 뭉쳐 봅슬레이를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주자!"


스토리의 큰 뼈대, 전체 아웃라인

기 | 멤버들은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도전에 대한 동기부여).
승 | 멤버들은 봅슬레이 훈련을 한다(장애물들과 극복).
전 | 훈련 중 전진, 정형돈이 부상을 입는다(끝판왕 장애물).
결 | 부상 입은 멤버를 대신해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가 완주한다(끝판왕 장애물의 극복).


처음에는 가장 굵직한 뼈대를 세운다. 이제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시청자에게 끌어내고 싶은 감정을 생각해보자. 내가 기(起) 부분의 편집을 맡았다고 치자. 또 기(起) 부분의 뼈대를 세워본다.


디테일, 기(起) 부분 아웃라인

기 | 멤버들은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

· 전하고 싶은 내용 : 도전에 대한 멤버들의 동기 부여

· 시청자에게 끌어내고 싶은 감정 : 멤버들이 봅슬레이 도전을 한다고? 못 믿겠는데? 뭐! 국가대표 선발전?! 그것까진 무리 아닌가? 어! 멤버들 점점 봅슬레이에 관심을 갖네? 진짜 해보려고 하나 본데? 어떻게 될까?


# 장면 1 (기)| 홍철이 멤버들에게 봅슬레이 도전을 제안하고 멤버들은 우리가 할 수 있겠냐며 반발한다(키포인트 : 우리가 무슨 봅슬레이냐? 말이 되냐?).

홍철이 제안하는 도전 과제 (출처 MBC)

작위적이긴 하지만 시청자는 오프닝의 거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돌+아이의 캐릭터를 살려 '엉뚱한 도전 과제'를 제안하고, 멤버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집에서 가볍게 제안하는 장면은, 점점 판이 커지는 뒷 장면들과 대비된다. 나중에 PD들이 각각 나눠 편집했던 기승전결 부분을 합본하면, 장난식으로 했던 이 시작이 어려움을 극복한 결(結) 부분과 대비돼 감동을 끌어낼 것이다.


# 장면 2 (승)| 아직 도전에 반신반의하는 멤버들. 일단 열악하고 우스꽝스러운 훈련을 해보면서, 봅슬레이에 대한 재미를 찾고 도전하기로 한다(키포인트 : 봅슬레이... 재밌는데? 해보자!).

한국에서의 사전 훈련 1 (출처 MBC)

시청자는 오프닝의 거의 모든 것은 용서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용서하지 않는다. 동기가 없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저 힘든 걸 왜 하는 거지?" 멤버들의 감정은 아직은 '도전할 수 없다'이다. 여기서 바로 일본에 가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도전을 원하지도 않는데 대체 저 힘든 걸 왜 하는 거지?"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뒤에 어떤 사건들을 붙여도 집중하기 힘들다.

무한도전은 동기 없이 도전하는 '무모한 도전'에서 출발해서 웃음을 줬지만, 봅슬레이 편은 감동도 줘야 한다. 제작진이 시킨다고 그저 하는 멤버들에게 시청자가 감동까지 받을까? 감동을 받으려면 이야기에 몰입이 돼야 하고, 몰입이 되려면 멤버들에게 공통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한 몸, 한 마음으로 이겨낼, 멤버들을 끌고 갈 불씨이자 연료,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도는 우스꽝스럽고 열악한 훈련 장면을 골랐다. 우스꽝스러운 훈련에도 무서워하는 평균 이하의 남자들을 보여줘서 웃음을 끌어냈다(기획의도를 드러냈다). 동시에 훈련 장면을 통해 당시 국내에 봅슬레이 연습 경기장이 없다는 열악한 현실도 보여줬다. 물론 가장 큰 성과는 멤버 모두에게 "봅슬레이가 재밌구나! 한번 해보자!"라는 불씨를 지핀 것이다. 앞으로 시청자를 집중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 장면 3 (전)| 멤버들이 일본에서의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다는 말을 듣는다. 멤버들은 충격을 받지만, 국가대표가 하는 열악한 훈련을 하면서 도전해보자 한다(키포인트 : 뭐! 국가대표 선발? 까짓 거 해보자!).

한국에서의 사전 훈련 2 (출처 MBC)

무도는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소식을 듣는 장면, 실제 선수들의 훈련을 해보는 장면을 골랐다. 국가대표 코치의 입을 통해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소식을 전하면서, 시청자가 이를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고 판을 키웠다. 하지만 이미 전 장면에서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에, 멤버들은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한다. 하겠다는 멤버들의 의지와 선수들의 실제 훈련-역시 열악한 현실-에도 즐겁게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멤버들이 많이 부족하지만 의지는 있구나. 혹시 알아? 좋은 성적을 낼지?


# 장면 4 (결)| 일본에서 처음으로 실제 썰매 경험을 보여준다(키포인트 : 봅슬레이... 장난이 아니구나).

일본에서의 훈련 (출처 MBC)

일이 일어난 순서로는 봅슬레이 2회 오프닝인 인천공항 출국 장면이 붙어야 한다. 하지만 무도는 멤버들이 처음 실제 썰매를 탄 장면을 골랐다. 한국에서 멤버들이 즐겁게 훈련하는 장면 다음에 일본에서의 훈련 장면을 붙여서 대비시켰다. 이 대비는 실제 훈련 장면을 강조해 어마무시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또한 멤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실전은 장난이 아니구나. 멤버들이 완주는 할 수 있을까? 다음 주가 궁금하다."


실제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에서는 이 기(起) 부분이 한 편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기(起) 부분에서 '도전에 대한 멤버들의 동기부여'를 키포인트로 삼았다. 그리고 시청자 몰입을 위해 기(起) 부분을 또 기승전결로 구성해서 연출했다. 실제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1회'(138회)를 보면 냉동창고나 드럼통 속에의 훈련 등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더 붙어있다. 그래도 뼈대가 있기 때문에 디테일을 갖다 붙여도 길을 잃지 않았다.




아웃라인 없이 바로 편집을 할 때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 채, 찍은 순서대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살리고 아닌 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꽂힌 장면만 집중해서 편집하게 된다. 그 결과, 밤새워 편집한 장면들은 엄청나게 날아갔고, 버렸던 부분은 들어갔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야기의 길을 잃어버려서다. 그러면 영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나리오 가이드에 있는 문장을 조금 바꿔 적겠다.

"아웃라인이 확고해야 PD가 길을 잃지 않는다. 각각의 신들을 좀 더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작은 범위의 다양한 궤도수정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아웃라인이다."


이 아웃라인이라는 뼈대를 어떻게 몰입되도록 세울까? 다음 편부터는 몰입되는 이야기를 위한 방법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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