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편집 기본기 STEP 7
이야기 속의 사건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름 붙인 '일어날 법한'(probable) 또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necessary) 인과관계로 이루어진다. 필연적인 사건은 앞에서 일어난 행동 때문에 '반드시' 일어나는 것을 뜻하며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개연적인 극적 사건도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이것은 일어날 법한 사건을 뜻한다.
- 스토리텔링의 비밀|마이클 티어노 저
영화의 오프닝에서 승용차는 날 수 있지만 버스는 날 수 없다고 정해졌다면, 나중에라도 버스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관객은 시나리오작가를 불신하게 되고 더 이상 스토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게 된다. 이런 경우 관객은 시나리오작가가 '사기를 쳤다(cheating)'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더 지니어스2'에서 금지된 룰은 '폭력'과 '절도'다. 은지원은 이두희의 신분증을 '절도'하고, 이두희를 탈락시킨다.
'나는 가수다'의 룰은 최하위 점수를 받은 가수가 탈락하는 것이다. 김건모의 탈락으로, 갑자기 없던 재도전의 룰이 생겼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의 사건들은 반드시 필연성과 개연성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고 지루하고 억울하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라거나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거지?'라는 느낌. 그래서 시청자는 귀한 시간을 투자해서 보는 콘텐츠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진 않은 것 아닐까. 사기당했다고 느껴지는 투자에 감정이입 따위는 없다.
김태호 PD의 무한도전과 나영석 PD의 여행 시리즈로 예능에서 출연진 캐릭터 잡기가 필수요소처럼 됐다. 물론 감정이입을 위한 중요 요소 중 하나지만, 예능이라면 당연히 캐릭터를 잡아야 한다면서 구성을 하기도 전에 캐릭터를 잡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출연자 미팅도 전에, 출연자가 실제 촬영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른 채, 기획 단계에서부터 캐릭터를 잡아놓으려 한다. 그래서 출연자의 외모 같은 것들로 닉네임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닉네임을 짓는 건 캐릭터를 잡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프로들도 혼동하고 있다. 다음 글을 보자.
초보적인 시나리오작가가 흔히 범하는 오류는 캐릭터의 특징(characteristic)과 캐릭터의 성격묘사(characterization)을 혼동하는 것이다. 즉 한 캐릭터에게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는 그것으로 캐릭터의 묘사가 완성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키가 크다거나 작다거나, 뚱뚱하다거나 말랐다거나, 대머리라거나 헝클어진 머리라거나 하는 것들은 그저 한 캐릭터의 특징에 불과하다. 이런 것만으로 캐릭터의 내면세계가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동차의 색깔만으로 그 안에 있는 엔진의 파워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캐릭터는 출연자를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출연자의 반복된 행동을 강조해서 시청자의 집중을 제작진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를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진짜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쉬워진다.
하지만 캐릭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성했던 아웃라인대로, 출연자가 원하는 것이 드러나는 행동과 그 동기를 필연성, 개연성 있게 붙여 나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원하는 게 같아도 사람이 다르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택해 행동한다. 이 행동 특징을 파악해 닉네임을 붙이는 게 요즘 방송에서 말하는 캐릭터 잡기구나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무한도전 유재석 '유반장'
자기 멋대로인 멤버들을 통솔해서 매끄럽게 진행하길 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유재석의 결정을 따라서, 결정권을 행사할 때가 많다. 이런 유재석의 행동을 '반장'으로 표현했다.
무한도전 박명수 '거성, 악마의 아들'
다른 멤버들은 비웃지만 스스로를 대스타라고 생각하고, 호통치며 대스타처럼 행동한다. 이런 행동을 '대스타' 바로 '거성'으로 표현했다. 또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서슴없이 양심 없는 행동과 막말을 하기도 한다. 이를 '악마의 아들'로 표현했다.
무한도전 노홍철 '돌+아이, 사기꾼'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다. 또한 배신과 거짓말을 일삼는 행동을 한다. 이를 '돌+아이, 사기꾼'으로 표현했다.
꽃보다 할배 이순재 '직진 순재'
즐거운 여행을 위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곳을 가길 원한다.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쳐 유독 빨리 걷는 행동을 보인다. 이를 '직진 순재'라고 표현했다.
꽃보다 청춘 유희열 '유희견'
즐거운 여행을 위해 어디를 가든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는 등 완벽적응의 행동을 보인다. 이를 '개' 같다. '유희견(犬)'이라고 표현했다.
꽃보다 청춘 윤상 '윤소녀'
즐거운 여행을 원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습관성 컴플레인'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가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소녀' 같다. '윤소녀'라고 표현했다.
캐릭터를 잡으려면 우선 출연자가 원하는 게 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출연자의 행동 특징을 캐치해야 한다. 캐치의 키포인트는 '일반적인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넘치거나 모자른 점'을 찾는 것이다. 찾았다면 그 행동을 '일관성'이 있게 붙여야 한다.
예를 들어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는 즐거운 여행을 원하고, 그에게 즐거운 여행은 더 많은 곳을 가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남들보다 유독 빨리 걷는 행동을 보인다. 이 행동 특징을 '직진 순재'로 캐릭터화 시키고 싶다면, 빨리 걷는 장면들은 물론이고 여행에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만을 찾아 붙이자. 촬영본에 소극적이고 의욕 없는 모습이 있다면 빼야 한다. 시청자들이 '이순재 할배는 도대체 뭐야? 직진이야 후진이야?' 혼란에 빠지니까. 다만 그 모습이, 기획의도를 드러내도록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제외한다(의욕이 없는 모습의 이유가 감기라던가). 다음 글도 보자.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흔히 쓰이는 몇 가지 외면적 특성들이 있다. 가령 그의 어휘, 말하는 태도, 옷차림새, 제스처, 육체적 조건, 버릇 등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려는가에서 나온다. 캐릭터의 나머지 부차적인 측면들은 모두 이 핵심적·지배적 요소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배우가 그 역할을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성격묘사의 핵심은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관객은 목표의 추구를 위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캐릭터는 초반 출연자에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돕지만, 최종 목표는 출연자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꽃보다 할배'에서 '직진 순재'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순재가 나이가 가장 많음에도 내면은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청춘' 임을 이해하게 된다. 반대로 '먹보와 털보'에서 '털보'라는 노홍철의 캐릭터는 그의 외면일 뿐이라, 이 캐릭터로는 여행에 대한 노홍철의 내면을 이해하기 힘들다.
출연자의 행동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알려면, 평소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찰해야 한다.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내 친구가, 내 선후배가 열의를 가지면, 혹은 지루하면 어떤 행동을 하지? 데이터가 쌓이면 촬영장에서 혹은 촬영본에서, 출연자 행동의 의미가 보인다. 같은 의미를 가진 컷들을 인터뷰, 대사, 내레이션, 자막으로 설명하기 전에 일관성 있게 붙여보자. 그렇게 하면 캐릭터 잡는 편집을 잘하는 거다.
영화나 드라마는 한 사람의 분명한 주인공이 있는 경우가 많다. 출연자에 대한 감정이입과 이야기 몰입을 쉽고 강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능에서도 '유재석의 놀면 뭐하니(초창기)', '김병만의 정글의법칙' 등 주인공을 내세운 콘텐츠들이 많지만, 요즘은 여러 출연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출연자 각각의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애쓰는데, 시청자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출연자를 찾아 감정이입하게 된다. 대략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그러니 즐겨줘.' 라는 거다.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이후의 예능들이 그렇다.
하지만 주인공이 있는 것과 여러 멤버가 있는 것,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러니 '요즘 트렌드니까 출연자를 많이 섭외해야지.' 라기보다는, 우리 '기획의도'를 살리려면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를 생각해보자. 만약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한두 명의 출연자가 애쓰는 것이 효과적인데, 많은 출연자를 섭외해 연출했다면 '도떼기시장'처럼 산만해질 가능성이 높다. 어렵게 출연자를 섭외해 편집에서 완전히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편집 과정에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다음 편은 몰입되는 편집을 위한 중요한 요소, '갈등'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