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촬영이 끝났고, 기획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좋은 이야기의 원칙에 따라 아웃라인도 세웠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아 컷을 붙여 나가려 한다. 하지만 어떤 컷을 어떻게 선택해서 붙여나가야 할지 그 자체가 막막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 가기 전 우선 '컷의 선택과 구성'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그동안 편집하며 느낀 기본은 다음 세 가지다.
무엇을? | 행동과 반응을, 보고 싶은 대로 붙인다.
어떻게? | 컷의 크기와 시간을 이용한다.
왜? |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무엇을? 행동과 반응을, 보고 싶은 대로 붙인다.
1. 행동과 반응의 선택(Act-React).
봅슬레이 제안한다 → 맞는다 → 다시 제안한다(출처 MBC)
A가 행동한다. B가 반응한다. A가 행동한다. | A컷 붙인다 → B컷 붙인다 → A컷 붙인다
누군가 행동하고 누군가 반응하는 컷을 붙이는 것. 이게 편집의 처음이자 끝이다. 1명이 행동하든, 100명이 행동하든, 카메라 1대가 됐든, 100대가 됐든 이 구조에서 스케일만 커진 것이다. 행동하는 자와 반응하는 자가 있고, 반응하는 자는 다시 행동하는 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은 반응 사건으로 연결되고 동시에 다음 사건을 일으키는 촉발 사건이 돼 이야기가 이어진다. 편집은 무엇이든 행동-반응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선 내가 전하려는 의도를, 행동으로 드러내는 출연자를 찾자. 당연히 반응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침묵도 반응이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2. 보고 싶은 컷의 선택
코치가 제안한다 → 멤버 셋 놀란다 → 멤버 둘 기가 찬다(출처 MBC)
A가 행동한다. B가 반응한다. C도 반응한다. | A컷 붙인다 → B컷 붙인다 → C컷 붙인다
1) 시청자는 처음 보는 거야. 그러니 누가 어디서 이야기하는지 보고 싶을 것 같아. 장소도 사람들도 다 드러난 풀샷을 붙인 다음에 코치가 말하는 원샷을 붙여야지.
2) 코치의 말에 놀란 멤버들이 보고 싶어. 우선 대답하는 멤버 셋이 찍힌 쓰리샷을 붙여야지.
3) 대답 없는 나머지 멤버 둘의 반응도 보고 싶어. 멤버 둘이 찍힌 투샷을 붙여야지.
FS(풀샷) → 코치 1S(1샷) → 멤버3S KS(3샷 니샷) → 멤버2S WS(2샷 웨이스트샷)
이렇게 대화 씬 편집이 완성됐다. 일단 그저 보고 싶은 대로 컷을 선택해 붙이기만 했는데도 말이다. 이는 대화 씬 말고도, 그리고 출연자나 카메라 수와도 상관없이 통용된다. 예를 들어 '꽃보다 할배'에서 누군가 '이번엔 독일로 가자'고 말한다. 그러면 시청자는 다음 여행지인 독일이 궁금할 것이다. 바로 다음 컷은 아름다운 독일 풍경을 찍은 헬리캠 샷이 붙는다.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나만 보고 싶은 것이 아닌, 이 영상을 처음 접하는 시청자가 보고 싶은 건 뭘까 생각하는 것이다. 편집을 하다 보면 촬영본을 너무 많이 봐서 부작용이 생긴다. 내가 뭘 보고 싶은지도 모르게 되고, 그래서 '시청자도 이건 다 알 거야'라는 생각에 붙여야 될 컷을 붙이지 않기도 한다. '독일로 가자'라는 할배들의 말도 안 붙이고, '여행 프로인데 독일 풍경이 나오면 당연히 독일에서 여행하는 줄 알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나는 이 영상을 처음 보는 시청자'라는 마음으로, 의도를 전달하는 출연자의 행동과 반응을 찾고, 그것을 보고 싶은 순서대로 붙여 나가 보자.
어떻게? 컷의 크기와 스피드를 이용한다.
1. 컷의 크기를 이용한다.
컷의 크기에 대한 용어들이 있다. 바스트샷이니 웨이스트샷이니 클로즈업샷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스펠링이 어쩌고, 피사체와의 거리가 어쩌고를 외우기도 하는데, 그냥 이것만 생각하자. "집중하세요! 살펴보세요!"
컷의 크기와 효과
다음 글도 보자.
영화 테크닉으로 말하자면, 센 불은 클로즈업이다. 약한 불은 그와 반대로 물러나서 찍는 것이다. 영화에서 클로즈업 하는 것은 요리로 말하자면 센 불로 짧게 볶은 것이다. 프라이팬 전체에 불이 도는 센 불은 말하자면 눈과 입만 잡는 클로즈업,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잡는 테크닉이다. 너무 길게 하면 타버린다는 점도 닮았다. 약한 불로 뭉글뭉글 조리는 것은 카메라를 뒤로 빼고 찍는 담담한 그림이다. 당장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보다 보면 조금씩 의미가 전달된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기타노 다케시 저
좁은 컷(클로즈업)으로 갈수록, 불을 세게 올려 빨리 볶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기 집중하세요!'라고 더 크게 소리쳐서, 단번에 연출자의 의도를 전할 수 있다. 시청자가 다른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시청자에게 의도와 감정을 주입시킨다. 하지만 길면 타버리는 것처럼, 시청자를 지치게도 한다. 마치 단 음식을 먹을 때 처음엔 매우 달지만 나중엔 그저 그런 것처럼, 길고 거듭되는 좁은 컷들은 의도 전달을 무뎌지게 한다.
반대로 넓은 컷(풀샷)으로 갈수록, 불을 약하게 줄여 조리는 것과 같다. 약한 불로는 오래 조리되듯, 시청자는 넓은 컷에 찍혀있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며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단점은 좁은 컷의 반대, 바로 연출자의 의도를 단번에 강렬히 전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떤 컷을 쓰느냐. 정답은 없다. 이건 그저 수단일 뿐이다. 의도를 전할 때 더 효과적인 컷을 쓰면 되는 거고, 덧붙여 연출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아이돌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기획의도보다는 '최애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시청자'를 위하는 PD라면, 멤버들을 모두 볼 수 있는 풀샷을 많이 선택할 것이다. 또한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풀샷으로 찍어야지, 클로즈업샷으로 찍어야지란 개념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4K, 8K로 찍어서 편집할 때 화면 스케일 조정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사진 촬영 시 해상도가 좋아져서 원하는 부분을 크롭 하는 거랑 같다. 시청자를 생각하고, 의도전달에 더 효과적인 사이즈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최선의 컷을 붙여 나가자.
2. 시간을 이용한다.
편집 툴을 보면 타임라인(Timeline)이라는 창이 있다. 사진과 다르게 영상은 시간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을 이용해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리얼타임을 줄이거나 늘리고, 컷 자체의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고, 컷 자체의 스피드를 슬로우나 패스트로 조절해서 말이다(축약과 확장).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다음은 34초 분량의 마지막 3바퀴 중계 영상이다.
원본 : 쇼트트랙 마지막 3바퀴 34초 중계 영상(출처 SBS)
이 영상을 통해 객관적 과정보다는 경기의 긴박함과 속도감, 그리고 마지막 바퀴의 긴장감을 전달하고 싶다면? 그래서 간단히 편집해봤다. 영상의 길이는 위 영상과 같은 34초이다.
편집본 : 쇼트트랙 마지막 3바퀴 34초 편집 영상(출처 SBS)
촬영본은 일어난 과정 그대로, 리얼타임으로 담긴 것이다. 이걸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건너뛸 수 있다. 위 영상에서는 1~2바퀴 22초를 11초로 축약했다. 경기의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 최민정 선수와 상대 선수의 경쟁 부분을 살리고 다른 시간은 줄였다. 이렇게 축약할 때는 필연성과 개연성을 생각해야 한다. 시간을 줄이겠다고 한 바퀴를 통째로 날려서, 첫 바퀴에서 마지막 바퀴로 가버린다면 시청자는 혼란에 빠져 몰입이 깨진다.
또 컷 자체의 시간(Duration)을 짧게 이어 붙여 경기의 속도감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렇게 하면 편집 리듬이 생긴다. 음악에서 2분 음표, 4분 음표, 8분 음표를 섞어 붙여 리듬감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편집이든 음악이든 시간을 다뤄서 그렇고, 그래서 편집과 음악은 공통점이 많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간직하고 있자. 그 음악의 리듬과 비트대로 컷을 쪼개 붙였을 때,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 구현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그래서 역으로 원하는 감정의 음악을 깔고 그 리듬에 맞춰 컷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또한 반대로 의도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행동을 실제보다 길게 붙이는 것이다. 위 영상에서 마지막 바퀴는 12초지만 22초로 확장했다.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시청자는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결승라인까지의 시간이 길수록 누가 이길까 몰입하며 애가 탄다. 내가 감정 이입해서 응원하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래서 같은 컷을 반복해 이어 붙여, 결승라인을 밟기까지의 행동을 리얼타임보다 길게 묘사했다.
그리고 컷 자체의 속도(Speed)도 길게 늘였다. 길게 늘인 슬로우(Slow) 컷은 시간의 클로즈업이며 센 불이다. 해당 행동에 대한 시청자의 체험을 길게 늘여, 빨리 지나가버리는 행동을 관찰하고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로 인해 연출자의 의도를 단번에 강렬히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빠르게 줄인 패스트(Fast) 컷은 오랜 시간 걸쳐 이뤄진 행동의 경과를, 풀샷이 한 컷에 여러 정보를 담는 것처럼 한눈에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역시 정답은 없다. 시청자에게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컷의 크기를 정하고, 행동과 컷을 축약하거나 확장할 뿐이다. 그저 수단이기 때문에 의도만 잘 전달된다면 이런 수단들은 전혀 필요가 없다. 생각해보자. 짜장면 레시피를 전달하는 백종원의 무편집본 영상 VS 온갖 수단으로 편집된 내 짜장면 레시피 영상. 뭐가 몰입이 잘 돼서 재미있을까? 백종원 대표나 오은영 박사 같은 분들은 '본인의 경험과 지식이 담긴 말'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몰입시킨다. 그래서 몰입만 잘 된다면 사실 편집 따윈 필요 없다. 결국 편집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위에 적은 모든 것들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의도 전달을 위해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것. 말하자면 시청자가 몰입된다면 모든 것들은 무시할 수 있다. 3등분의 법칙을 어겼네 어쨌네, 카메라 180도 법칙이 깨졌네 어쨌네, 이미지너리 라인이 무너졌네 어쨌네, 더블 액션이 안 맞네 어쨌네, 컷이 튀네 어쨌네, 아이라인이 안 맞네 어쨌네, 색이 튀네 어쨌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시청자의 몰입을 위해서, 시공간적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다시 말해 몰입이 본질이고, 수단은 형식이다. 그런데 형식이 본질을 흐린다고 현장에서도 이런 예들이 많다. 다음 인터뷰 영상을 보자.
컷이 튀면 좀 어때요...(출처 KBS 수취인불명 EP07)
위 인터뷰 내용은 시한부인 아내가 투병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정말 남편 이야기를 몰입해서 듣고 싶다. 그런데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컷이 집중을 방해한다. 컷이 왔다 갔다 해서 시청자 시선도 왔다 갔다 하느라, 남편 말에 집중하는 걸 방해받는다. 컷이 좀 튀어도 때우지 말고 한 컷으로만 진중하게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 된 죽에 코 빠뜨린다고, 감정선 잡으려고 힘들게 붙인 말 편집본에 컷을 왔다 갔다 붙여놨다.
요즘 다큐나 예능 인터뷰는 2대 이상을 놓고 찍는다. 그리고 편집할 때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불필요한 말은 날리고, 필요한 말을 이어 붙인다. 그러면 당연히 컷이 튄다. 그런데 카메라 2대 놓고 찍는 이유가, 이 튀는 컷을 튀지 않게 때우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중에 튀지 않게 붙이려면 한 대는 사이즈 크게 찍고, 또 한 대는 다른 각도로 작게 찍어야지. 기계적으로 촬영한다. 그게 아니다. 한 대를 사이즈 크게 찍는 이유는 출연자의 감정이 드러난 몸짓, 제스처, 행동을 캐치하기 위해서다. 다른 한 대를 사이즈 작게 찍는 이유는 출연자의 감정이 드러난 표정을 캐치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 이야기 감정선을 지키며 출연자의 감정이 최대한 드러난 컷을 붙이려는 것이다. 가만 두면 시청자가 몰입할 이야기를 '튀는 컷 때우기'라는 형식이 방해하지는 말자. 일단 사람들이 몰입하게 되면 컷이 튀든, 색이 튀든 신경 안 쓴다. 다음 예를 보자.
이건 내 경험인데 정말 옛날인 2006년, 6미리 캠코더를 들고 MBC 드라마 '주몽' 촬영장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주인공인 송일국은 인터뷰를 잘 안 하기로 유명했었는데, 내향적인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인터뷰를 따게 됐다(불쌍했을지도). 매우 기뻐서 서울에 올라와 편집실에서 영상을 확인했는데 곧 좌절했다.
렌즈에 캠코더 끈이 걸려 같이 촬영됐다(출처 MBC)
인터뷰 영상을 보니 위와 같은 식으로, 렌즈에 캠코더 끈이 걸린 채 촬영된 것이었다. 크게 좌절하며 편집본에서 뺐다. 편집본을 보고 당시 메인 PD님이 말했다.
"인터뷰 땄다더니 어딨어?"
"실수를 저질러서 못 넣을 것 같습니다."
"봐봐. 괜찮아. 넣어"
"그래도 방송인데 이걸 어떻게 넣겠어요."
"괜찮아. 넣어"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 주위 선후배에게 보여주고 물었다.
"이상한 거 없어?"
"없어." "모르겠는데." "송일국 어떻게 땄어?"
정확히 12명에게 물어봤다. 내 눈엔 저렇게 크게 보이는데 아무도 캠코더 끈 같은 건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말해주고 나서야 "어? 끈 걸렸네. 왜 저랬어ㅋㅋ"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렇다. 그래서 그런 실험심리학 용어까지 있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눈이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현상이나 상태
몰입되면 시청자의 눈은 화면을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스토리에 가 있어서 화면의 연속성은 지각하지 못하거나 지각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경험상 그런 거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영상쟁이' 뿐이다. 우리는 형식보다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똥만 싸도 박수를 친다고, 사람들이 영상을 보기도 전에 몰입하려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 자신이 너무나 유명한 PD도 아니고, 너무나 유명한 출연자를 섭외할 수도 없다면 본질에 집중하는 길 밖에 없다. 바로 몰입되는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형식을 깡그리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본질에 집중하고 다음에 형식까지 잘 써먹는다면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되는 거다. 다음 편은 예시를 통해 실제 편집 단계를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