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날려야 하나요?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12

by 정영택

영상을 편집 후, 그 퇴고(수정) 과정은 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야기를 좀 더 긴밀하게 하기 위해, 또는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어떤 장면을 날려야 할지 우리는 늘 머리를 싸맨다. 주관적으로 '재미없는 부분을 날려보자' 생각해서 무턱대고 날렸다가는 날렸다 붙였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


이 장면을 빼면 사건이 진행되는가?


여러 사건은 긴밀하게 짜여 그중 어느 하나라도 옮기거나 바꾸면 전체가 일그러지거나 망가져야 한다. 어떤 사건이 들어 있든 들어 있지 않든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전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 시학 8장 | 아리스토텔레스 저

물론 우리는 밤새 편집한 장면에 애정이 있어 날리는 게 힘들다.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어떤 장면을 날려야만 할 때, 우리는 애정을 빼고 건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1시간짜리 콘텐츠를 만든다고 치자. 우리는 출연자가 어떤 동기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연결해서 기획의도를 드러내도록 편집해놨다. 이 중에는 출연자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행동도 있고, 재미있는 상황(시바이)도 있고, 배경 설명을 하는 장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총 2시간의 편집본이 나왔다. 이제 1시간을 걷어내야 한다. 마가 뜨는 컷마다 몇 초씩 줄여도 1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어떤 사건이나 장면을 통째로 날려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날렸을 때도, 출연자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지장이 없는 장면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기획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 출연자가 절정과 결말을 향해 달려가야지만, 기획의도가 분명히 전달된다. 고로 각 장면들의 진짜 할 일은, 결말을 향해 사건을 전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진을 위해서, 각 사건들은 개연적이거나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은 사기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몰입하게 된다.


사건을 전진시키지 않는 장면을 찾아내자. 그 장면은 개연성과 필연성이 없는 장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굳이 그 장면이 없더라도 무리 없이 다음 사건으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건이 들어 있든 들어 있지 않든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전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 장면은 전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날릴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이다.



오로지 캐릭터와 설명만을 위한 장면인가?


SNS 원정대 일단 띄워(출처 SBS)


캐릭터는 출연자에 대한 감정이입을 돕고, 설명은 시청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해 상황 파악을 돕는다. '시나리오 가이드'에서도 이를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단, 요리의 주재료로서가 아니라, 양념으로서.

요즘에는 특히 캐릭터 잡기의 중요성이 커져서,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캐릭터 구다리(장면)를 따로 만들어 본 사건 전에 붙여 넣기도 하는데, 이 역시 시간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이렇게 미리 시청자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있을까? 캐릭터는 '출연자가 원하는 것이 드러나는 행동과 그 동기를 필연성, 개연성 있게 붙여 나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데 말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직진 순재'의 모습을 하이라이트로 모아 굳이 여행 전에 붙이지 않더라도, 여행하는 도중 '이순재'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가 '직진 순재'라는 걸 안다. 그것도 캐릭터 구다리보다 더 임팩트 있게 각인된다.


또한 배경이나 상황 설명을 위해 프롤로그를 통해서나, 설명 구다리를 따로 만들기도 한다. 설명 자체는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장면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친절한 설명 장면이 없더라도 시청자는 늘 상황을 파악한다. 런닝맨을 보자. 시청자는 복잡한 게임 방식과 미션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멤버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게임 방식과 미션을 파악한다. 하물며 여러 에피소드 중 전편을 보지 않고 내용을 알아내기도 한다. 무한도전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는 3편으로 이뤄졌는데, 1편을 보지 않고 2편을 보더라도 어떤 내용인지 대충 알 수 있다. 멤버들은 오로지 돈가방을 갖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만 행동하고 있고, 박명수-노홍철의 3차·4차 데블 매치라는 자막을 보고, 그전에 1차·2차 데블 매치가 있었겠구나 미루어 짐작한다. 시청자는 자신이 본 장면의 과거와 상관관계나 상황들을 미루어 짐작하며 몰입하는 것이다. 친절히 다 설명해버리면 시청자는 지루해진다.

캐릭터나 정보 설명 등 어떤 목적만을 위한 장면을 따로 만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목표를 향한 출연자의 행동에 녹이는 것'이다. 필연성과 개연성 있게 이어 붙어있는 사건 안에서, 목표를 향한 출연자의 행동 특징을 보여주며 캐릭터를 잡는다. 필연성과 개연성 있게 이어 붙어있는 사건 안에서, 시청자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출연자 간의 대화 등을 통해 정보를 흘린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명확해지는 정보에 대한 설명은 날린다. 이것이 시간을 줄이면서도 시청자를 몰입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준비 장면과 여파 장면은 꼭 필요한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시청자를 준비하도록 만드는 준비 장면과 사건이 일어난 후 그 사건을 시청자가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파 장면은 사건이 전진하는데 꼭 필요한 장면은 아니다. 따라서 제일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날릴 수 있는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것들을 다 날린다면, 어떻게 될까?

"A가 일어나서 B가 일어났구나. 그래. 그래서 C 다음에 D 다음에 E..."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시청자는 그저 필연성과 개연성으로 이어진 사건들을 따라가기 급급하게 될 수 있다. 누구나 뭘 하려면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장면이 준비 장면과 여파 장면이다. 기획의도를 드러내는 중요 사건에 붙어있는 경우 가급적 날리지 말고, 그 외 다른 사건들에 붙어있는 경우 이 장면들이 반드시 필요한지 판단하자. 모든 사건들이 준비와 여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이 비극보다 훨씬 더 관객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희극도 통일된 극적 행동이 있어야 하고 극 중 목표를 가진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 (중략) 극적 행동은 '하나로 통일된 행동' 곧 하나의 연속적인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단지 비극적 구조가 요구하는 것보다는 좀 더 느슨할 뿐이다.
- 스토리텔링의 비밀 | 마이클 티어노 저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은 비극보다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예능은 시청자를 즐겁게 해야 한다. 즐거움의 전달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건 사이의 긴밀함이 좀 더 느슨해도 좋다고 했다. 현자는 예능을 하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사건과 사건 사이가 좀 느슨해도 된단다.' 허락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의 인과관계가 부족한 어떤 에피소드나 상황(시바이)을 웃음을 위해 그 사이에 넣기도 하고, 시청자는 웃고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희극도 통일된 극적 행동이 있어야 하고 목표를 가진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것'을 필연성, 개연성 있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영화나 드라마보다 좀 더 느슨해도 좋을 뿐. 지킬 건 지키고, 좀 더 느슨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편집을 즐겨보자. 이제 기본은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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