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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Feb 15. 2024

대화에 빠져들게 만들 방법

대화 장면의 연출

 <슬램덩크>는 경기 장면이 끝내주긴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 장면도 잘 다룬다. 어떻게 다뤘는지 살펴보자.


강백호와 유창수의 대화. (출처 : 슬램덩크 1권)

1) 1번~2번 지면 몰래 훔쳐보는 3인 컷이 나오기 전까지, 유창수가 강백호에게 '유도부 입부'를 꼬드긴다. 이때의 대화는 강백호, 유창수의 바스트 단독 숏 - 오버 더 숄더 투 숏 패턴으로 이어진다.


2) 2번 지면 몰래 훔쳐보는 3인 컷 후 첫 컷에서, 강백호는 '유도부 입부'를 거부한다. 이때 앵글을 부감 투 숏으로 바꿨다. 이어지던 숏의 패턴을 바꾼 것이다.


3) 3번 지면, 강백호는 유도부 거부 사유를 밝힌다. 이때 앵글을 웨이스트 샷으로 바꿔, 다시 숏의 패턴을 바꿨다.


서태웅과 안 선생님의 대화. (출처 : 슬램덩크 21권)

1) 1번~3번 지면 첫 컷까지, 서태웅과 안 선생님의 대화가 오버 더 숄더 투 숏 - 단독 숏 패턴으로 이어진다.


2) 3번 지면 첫 컷 이후, 인서트 샷과 서태웅 클로즈업으로 시간을 지연시킨다. 이로써 시청자는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긴장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할까?'


3) 4번 지면에서, 미국에 가겠다는 서태웅의 대답을 숏의 패턴을 바꿔, 부감 투 숏으로 담았다.



숏의 패턴


 이 대화 장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중요한 대답을 할 때, 모두 숏의 패턴을 바꾸었다. 숏의 앵글이나 사이즈를 변화시켜, 전 숏과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충돌이 나면, 브레이크가 걸리고 시청자를 출연자의 말에 집중시킬 수 있다. 숏의 충돌 요소를 활용해 집중시킨 후, 출연자가 강한 주장이나 충격적인 말을 한다면, 시청자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패턴이 바뀌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충돌을 잘 시키기 위해 앵글이나 사이즈를 어떻게 바꿔야 되느냐'가 아니다. 패턴의 변화만으로도, 시청자는 뭔가 변했다는 것을 감지하고 찾아내려 한다.


 그래서 대화 장면을 연출하거나 편집하는 원리는, 출연자 중 한 명 이상에게 변화가 생기거나, 중요한 말을 하거나, 대화 주제가 바뀔 때, 이어지던 숏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그냥 컷이 튄다고, 아무렇게나 단독 숏 갔다가 투 숏 갔다가 풀 샷 갔다가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원리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한 개의 숏으로 가도 무방하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괜히 지루한 것 같아서 이 숏 저 숏 옮겨 다니면, 시청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대화 내용은 변화가 없는데 숏의 변화가 많은, 이 부조화를 머릿속에서 처리하려다 보니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 원리는 단독 인터뷰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인터뷰를 촬영할 때, 몇 대의 카메라를 놓고 다른 사이즈와 앵글로 촬영하곤 한다. 이는 출연자의 표정과 제스처 같은 행동을 모두 잡아내려는 목적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숏의 패턴을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답변을 하는 출연자의 의지나 감정 변화가 생길 때, 중요한 대답을 할 때, 질문 내용이 변할 때 숏의 패턴을 바꾼다. 답변이 지루해서나 컷이 튀어서 다른 사이즈, 다른 앵글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컷이 튄다고 숏을  바꾼다? 같은 사이즈, 같은 앵글의 숏에서 컷이 튄다는 건, 약간의 덜그럭거림. 다시 말해 약간의 '충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 다른 사이즈, 다른 앵글의 숏으로 바꾸게 되면, 약간의 '충돌'이 큰 '충돌'로 바뀐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다. 출연자가 말하는 내용은 변화가 없는데 이렇게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면, 시청자의 뇌에 불편함을 주게 되고, 결국 말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천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


 '천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낫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화 장면에서도 통한다. <슬램덩크>에서 인서트를 활용한 대화 장면을 살펴보자.


단호한 결의. (출처 : 슬램덩크 25권)

1) 1번~3번 지면까지, 안 선생님과 멤버들이 산왕에 대해 대화한다. 숏의 패턴은 안 선생님 단독 숏 - 그룹 숏이다. 1~2번 지면에서 산왕 멤버에 대해 말할 때는, 말하고 있는 안 선생님 단독 숏이 아닌 신현철과 정우성의 인서트를 넣어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안 선생님이 다시 말을 잇기 전, 해남을 30점 차로 이겨버린 점수판을 인서트로 넣어 그들의 위력을 전달했다.


2) 3번 지면 점수판 인서트 후, 말을 잃은 멤버의 컷을 넣어 그들의 충격을 표현하면서, 안 선생님이 다시 말을 잇기까지 시간을 지연시켰다. 시청자도 북산 멤버처럼 말을 잃고, 안 선생님의 말을 기다리게 된다. 이때, 안 선생님 단독 풀 샷으로 숏의 패턴이 변한다. 패턴이 변함으로써 기다리던 안 선생님의 말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3) 4번 지면에서, 안 선생님 클로즈업으로 숏의 패턴 또 바꿨다. 숏 사이즈와 명암의 차이를 활용해 충돌을 일으켜, 안 선생님의 '단호한 결의'라는 말이 더 큰 충격을 준다.


산왕전 전날 밤. (출처 : 슬램덩크 25권)

1) 1번~3번 지면까지, 채치수, 정대만, 권준호가 산왕전에 대해 대화한다. 숏의 패턴은 단독 숏 - 그룹 숏이다. 채치수가 산왕에 대해 말할 때, 채치수 단독 숏이 아닌 농구잡지 인서트를 넣어 대화에 생동감을 더했다.

   

2) 4번 지면에서 숏의 패턴이 바뀌기 전, 그들의 현재가 아닌 과거 모습의 단독 숏을 각각 인서트로 넣었다. 이는 다음 컷인 그들의 현재 모습 와이드 숏과 연결되어, 1학년 때의 꿈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소년 vs 청년, 밝음 vs 어두움, 클로즈업 vs 와이드 숏의 충돌 요소를 활용해, 숏의 패턴을 변화시켰다.


 인서트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화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까지 한다. 독립적으로 또는 다른 영상과 오디오와 결합해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왜냐? 천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낫기 때문이다. 숏의 패턴 변화와 인서트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빠져드는 대화 장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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