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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Feb 15. 2024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

몰입을 위한 정보 선점

나는 아는데, 얘네만 몰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면 '어~ 그랬구나~'하고 넘길 뿐, 보통 우리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일에 관련된 정보를 나만 알 된다면?


 "아! 그거 내가 좀 아는데, 걔네 그러면 안 되지~."


 그 순간부터 급관심이 생기고, 그 일은 살아 숨 쉬는 '사건'이 된다. <슬램덩크>는 1권, 멤버들의 첫 만남부터 이 방법을 사용했다.



한편!


강백호와 서태웅의 첫 만남. (출처 : 슬램덩크 1권)

1) 강백호와 서태웅이 만났다.


2) '한편' 채소연은 그들을 보고, 강백호를 오해한다. 채소연이 그들을 봤다는 사실, 강백호를 오해한다는 사실은 우리만 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한다. '강백호, 이제 큰일 났네!ㅋㅋ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3~4) 서태웅과 함께 있던 강백호에게, 채소연이 찾아와 '저질' 어택을 날린다. 그래서 우리는 또 생각한다. '강백호 못 빠져나갔네ㅋㅋ 채소연은 어떻게 오해를 풀까ㅋㅋ 둘이 제대로 꼬였네ㅋㅋ'


 위 그림엔 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일어난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만남, '한편' 채소연의 목격과 오해. 이 '한편'이란 말이 '평행(교차) 편집'이다. '평행(교차) 편집'은 한쪽 출연자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동시 혹은 다른 시간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편집 기법이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일이 벌어져, 한쪽 출연자는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한다. 강백호는 채소연 쪽의 일을 모르고, 채소연은 강백호 쪽의 일을 모른다. 양쪽의 일을 모두 알게 되는 건 시청자뿐이다. 그래서 어떤 효과가 나느냐? 시청자는 상황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상황 정보를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 수동적인 시청에서, 적극적으로 지루함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강백호와 채치수의 첫 만남도 같은 패턴이다.


강백호와 채치수의 첫 만남. (출처 : 슬램덩크 1권)

1) 강백호와 채치수가 농구대결을 벌인다.     


2~3) '한편' 채소연은 그 소식을 듣는다. 여기서 우리는 채치수가 채소연의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강백호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그들의 대결은 격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강백호, 진짜 꼬였네ㅋㅋ'


4~5) '한편' 채소연은 농구장을 찾아오고, 이젠 강백호를 제외한 모두, 채치수가 채소연의 오빠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말릴 겨를도 없이, 모두에게 채치수의 엉덩이가 공개된다. 이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물음을 던진다. '채소연의 오빠, 농구부의 주장 채치수를 욕보인 강백호는 정녕 사랑과 농구, 모두를 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급정보!


결승리그. (출처 : 슬램덩크 12권)

 '평행(교차) 편집'은 시간을 지연시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중요한 부분에서, 다른 쪽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해남이 북산을 압박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슬램덩크>는 능남 쪽 경기를 보여준다. 해남전에서의 결과를 지연시킴과 동시에 능남이 이겼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다. 북산은 모르는 그 일급정보로 독자는 판단하게 된다. '북산이 해남에게 지면, 능남과 붙겠구나. 북산과 능남의 재대결이 성사될까?'


 이런 일급정보는 시청자를 두렵게 만들고 긴장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추격 장면을 만든다고 치자. 쫓기는 자, 쫓는 자의 컷을 교대로 붙이면, 쫓기는 자가 잡힐 시간을 지연시켜 시청자를 애태울 수 있다. 금방 잡히는 건 싱거우니까. 또 이들의 위치 정보를 시청자에게만 줌으로써, 시청자를 긴장시킬 수 있다. 이 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고 판단하게 됨으로써 시청자는 '감정이입'한 출연자가 잡힐까 봐 애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행편집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각 사건에 대한 정보를 시청자에게 던짐으로써, 이들이 서로에게 언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생각하고, 판단하며, 기대하고, 두렵게 만든다.



행동의 의미


 <슬램덩크>는 '평행(교차) 편집'을 사용해 출연자 행동의 의미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는 서로 다른 두 장소의 사건을 연결한다는 의미보다, 두 사건의 장면 중 컷을 골라 섞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고난과 역경의 황태산. (출처 : 슬램덩크 18권)


1) 1번 지면에서, 북산과 시합 중인 능남의 황태산을 보여준다.


2) 1번 지면 중간부터 3번 지면 첫 컷까지, 골대도 없는 공터에서 연습하는 황태산과 시합 중인 황태산의 비슷한 플레이를 섞어 보여준다. 이는 황태산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노력해 왔기에, 시합에서 실력을 꽃피울 수 있었다는 의미를 대조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이후 황태산의 플래시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준다.


 이러한 용도의 '평행(교차) 편집'은 행동의 의미나 출연자의 생각을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그리고 이 컷 저 컷 섞기 때문에 현란하게 드러내준다. 황태산의 시합 도중,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한 장면을, 컷을 섞지 않고 플래시백으로 쭉 보여줄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이 역동적인 느낌을 주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현란함이 부작용이 된다.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눈에 띄는 인위적인 편집이 돼서, 현란함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선 비주얼적인 현란함으로 눈을 바쁘게 하기보다, 시청자에게 정보를 던져 추측하게 만들어 머리를 바쁘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정리하면, 어떤 정보를 출연자보다 시청자에게 먼저 주고 싶을 때, '한편'이라는 말로도 통하는 '평행(교차) 편집'을 사용해 보자. 같은 또는 다른 시간대,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정보를 흘릴 수 있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얻은 사람들은 급관심이 생겨,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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