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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Feb 15. 2024

슬램덩크에서 훔친 것들

글과 영상을 위한 클래식

 북산이 산왕을 꺾은 후, 거의 30년 만에 <슬램덩크> '산왕전'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영상화됐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마흔이 넘은 아저씨가 될 때까지, '산왕전'을 상상해 왔고, 이 녀석들은 그 상상처럼, 상상 이상으로 역동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역시 31권에서 머무르지 않았어. 성장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가슴 뛰고 눈물짓게 하는 이런 이야기를, 나는 만들지 못했다.


 근 30년간 <슬램덩크>는 내 의식,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영상 제작을 하는 내게 교본이 됐고, 영감을 줬고, 원천이 됐다. 너무 오래된 만화라 요즘 친구들은 옛날 만화라고 꺼리기도 한다는데, 요즘 친구들이 열광하는 유튜브, OTT, TV 영상들. 사실 모두 <슬램덩크> 보고 자란 세대들이 만들었다. 하나의 콘텐츠가 이렇게 많은 세대에게 영향을 주다니 믿기지도 않지만, 또 뭔가를 창작하는 현장에서 그 영향을 목격하니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클래식이야.'


 영상을 만들며 느꼈던 것은 영상 제작은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제작 자체를, 작가와 회의하며 '대본'이라는 초고를 완성하는 것부터 시작했고, 촬영 후에도 대본 구성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펜을 잡고 탈고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건, 사람들을 몰입시킬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영상과 글에 모두 통한다는 것이었다. <슬램덩크>라는 클래식에서 훔친 방법들 역시 영상과 글, 모두에 통했다.


 예를 들어, 소설이든 영상이든 사람들이 보게 만들려면, 등장인물이든 출연자든 감정이입을 시키고, 뭔가를 원하도록 동기를 주고, 그 원하는 걸 얻는 과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또 영상에서 대사보다 출연자의 행동을 보여줘야 하듯, 소설에서도 등장인물에게, 말보다는 사건을 겪으며 행동하게 해야 한다. 속도감을 빠르게 하고 싶을 때, 영상에서 컷 길이를 짧게 하고, 출연자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표현하며, 사건을 빠르게 전개하는 것처럼, 소설에서도 문장을 짧게 쓰고,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표현하며, 사건을 빠르게 전개한다. 영상 제작을 위해 훔친 방법이지만, '출연자'를 '등장인물'로, '시청자'를 '독자'로, '컷'을 '문장'이란 단어로 치환해서 읽으면, 글쓰기를 위한 방법과 통할 것이다.


 <슬램덩크>가 오랜 시간이 지나 한 편의 영화로 나왔듯, 거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 조각조각 훔쳐서 머릿속에 떠돌던 방법들을 글로 정리해 봤다. 소소하게 훔친 방법들은 더 남았지만, 중요한 큰 줄기는 이제 거의 정리가 된 것 같다. 개운하다. 이 역시 하나의 방법들일 뿐이지만, 사수가 없으신 분들이더라도, 전에 썼던 브런치북 <예능 편집 기본기>와 함께 보시면, 방송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든다. <슬램덩크>, 워낙 완벽한 작품이니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서 <직업으로서의 PD>

http://aladin.kr/p/mRs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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