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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Oct 11. 2020

홈캠핑의 묘미

한글날이 껴서 모처럼 연휴가 생겼다. 이런 연휴는 좋다. 어떤 의무감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쉴 수 있으므로. 그러나 바로 전 주가 추석 연휴였던 데다 이 집 저 집 방문하느라 고달팠던 몸이 영, '어딘가를 가고 싶다!'하고 절절하게 요청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어디 갈까 오십 번 물어봐도 반응이 영 뜻뜨미지근. 그래, 이 김에 기미나 빼자. 올 초 눈 밑에 생긴 기미가 점점 짙어져가고 있던 요즘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한 층 더 초연해지고 쉬크해진 의사가 말했다.

"그 기미는 레이저로 지워질 성질이 아니에요."

더 짙어지지 않게 관리나 잘하란다. 눈에 거슬렸던 비립종과 점들이나 좀 빼기로 하고 마취크림을 바른 후 침대에 누웠다. 마지막 틈을 타서 연휴 계획을 세워보지만 좀처럼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레이저로 얼굴과 목에 잔뜩 있던 잡티들을 제거하고(매번 까먹지만 깜짝 놀랄 만큼 아프다) 거울을 보니 연휴 계획은 무슨. 이건 도무지 밖으로 나돌아 다닐 꼴이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다녀온 아이도 얼굴에 구멍이 송송 난 엄마가 이상한지 계속 쳐다본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레이저로 지진 곳에 딱지가 지고 벌겋게 부어오른 게 더 가관이다. 간지럽고 아프기까지 한데, 날이 너무 좋아서 '어머 이건 꼭 밖에 나가야 할 날씨'다. 남편은 사람 없는 곳으로 캠핑 가자고 하지만 요즘 날씨에 밖에서 자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집에서 캠핑하자, 거실에 텐트 쳐 줘."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실행력으로 거실에 텐트를 치니 이야, 그 어느 때보다 캠핑 분위기가 제대로다. 집 조명에 텐트 컬러가 아주 인테리어 소품처럼 딱 어울렸다.

"장 봐와서 고기 구워 먹어야지!"

연휴의 시작이라 여기저기 차가 꽉 막혀 있는 게 이것마저 뭔가 놀러 가는 분위기다. 코스트코 가서 안창살과 새우, 더덕, 표고버섯, 고구마 등 구워 먹을 것을 잔뜩 사고 마지막 입가심할 쫄면과 도넛까지 사니 기대감이 배로 증폭되었다.


집에 와서 보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는 숯불을 피우기가 어려우니 나는 당연히 전기 그릴로 구워 먹을 심산이었는데, 남편은 숯불을 반드시 피워야 한다는 거다.

"절대 번개탄은 안돼. 불났다고 119에 신고 들어가."

누구든지 그러하겠지만 이 사람도 한 번 꽂힌 것에는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므로, 나름대로 최대한 연기가 적게 나도록 해달라 주문을 했다. 그러나 숯을 피워 본 사람들은 알 거다. 번개탄 없이 숯에 불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설령 숯에 불이 붙었다 하더라도 연기 없이 고기를 굽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특히 새우나 고기에서 물, 기름 등이 떨어지면 불꽃이 일고 연기가 난다.

번개탄 없이 토치로 열심히 숯에 불을 붙인 캠린이 남편이 안창살을 구우며 말했다.

"이번에 제대로 알았어. 숯을 피우려면 무조건 일정 화력 이상이 되어야 해."

내가 말했다.

"응, 다음부터 집에서는 무조건 전기 그릴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좋은 숯을 써서 화력은 좋고 연기는 적었다는 사실이다.


홈캠핑을 하니 가장 좋은 건, 어딘가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올 때도 바리바리 싸들고 올 걱정이 없다. 그 외에도 좋은 점은 계속 있다. 창을 열어 바람을 조절하니 언제나 적당한 바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방충망이 완벽하니 모기나 기타 벌레들이 없다는 점, 텐트 안 공기가 따뜻해서 그 어느 때보다 아늑하다는 점, 아이 장난감이 다 구비되어 있으니 혼자서도 적당히 잘 논다는 점,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조달이 가능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집 안에 있으므로 언제든 널브러져 잘 수 있다는 점. 눈 앞에 숲과 깨끗한 물, 맑은 공기가 없다는 점만 빼놓고 캠핑의 단점은 모두 보완한 것이 바로 홈캠핑이었다. 우리 같은 캠린이에겐 아주 딱이다.


"홈캠핑 재밌고 좋네, 편하고." 내가 말했다.

"그치만 역시 캠핑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하는 게 낙인데." 남편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그러려면 전원주택으로 가야지."

"땅 보러 갈까?" 틈만 나면 시골 가서 집 짓고 살고 싶어 하는 남편이다.

내가 얼른 아이에게 말을 걸며 화제를 돌린다.

"얀아, 밖에서 캠핑하는 게 좋아, 집에서 하는 게 좋아?"

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친다.

"집!"

승리한 기분으로 남편을 보며 내가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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