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좀 더 깊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에 싫증이 났고, 주변 환경에 휘둘리는 내 모습이 너무 지겨워졌다. 비슷항 상황에 부딪혔을 때 예전의 반응을 되풀이하는 자신의 발전 없는 모습에 놀라웠다.
좀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침 좋아하는 밀라논나 장명숙 님이 ‘삶의 격’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셨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샀다. 처음엔 오프라인 서점에 보이지 않다가, 유명인의 소개라는 영향력이 컸는지 얼마 후 교보문고에 이 책이 깔리기 시작했다.
원래 이 책의 저자는 페터 비에리이다. 멜라니 로랑 주연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 원작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 소설을 냈을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냈는데, ‘삶의 격’은 페터 비에리 본명으로 냈다. 이 책은 사실 삶의 격에 대한 이야기 라기보다 인간 삶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이다. 원래 책 제목도 ‘존엄성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정도로 해석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삶의 격’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많이 팔아보려는 출판사의 농간이 짙어 보여 별로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목에 조금씩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존엄성에 대한 고찰을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된다. 내가 했던 행동에는 존엄성의 결핍이 내재했음을 알게 되며, 작가가 말하는 깊이 있는 존엄성을 행동방식 속에 녹여 낸다면 자신도 모르게 삶의 격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굉장히 많은 예시를 들면서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데, 예시는 주로 문학작품에서 빌려온다. 영화, 소설, 연극 등등에서 나오는 많은 인간 군상들을 예시로 들면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의 삶의 존엄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이다 보니, 상황을 극한으로 가정해서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난쟁이 던지기 시합이 있는데, 작가 자신은 난쟁이 던지기 시합이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시합이라 판단하여 분개를 하는데, 분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난쟁이를 찾아가서 ‘왜 스스로 존엄성을 던지느냐’고 다그치듯이 토론을 한다. 하지만, 난쟁이의 말 한마디에 다시 한번 존엄성에 대한 방향을 달리 생각하게 된다. 그 말은 ‘나 같은 사람이 밥 벌어 먹고 살 일이 쉽겠냐, 내가 선택한 일에 왜 타자가 왈가왈부 하느냐.’이다.
거기에서 작가는 인간 존엄성이 단순히 남에게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존엄성임을 말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냐 아니냐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존엄성 있는 삶의 첫 번째 필수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내가 많은 돈을 받고 살아도 삶이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건 존엄성이 있는 삶이 아니지만, 그렇게 살기로 스스로 선택했다면 존엄성 있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존엄성 있는 삶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자신의 삶에 존엄성을 세우기 위해서 중요한 세가지 질문이 있다.
1.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2.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3.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데, 이 질문은 책의 서문에 제일 먼저 나온다. 나는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이 책의 역할을 절반 이상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봄으로써 자신이 처한 삶에서의 존엄성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존엄성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알고 싶어서 책을 끝까지 읽게 되지만, 다 읽고 나서도 드는 생각은 ‘그래서 존엄성 있는 삶의 방식은 뭐지?’ 하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바다. 마찬가지로 서문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사실 새로운 건 없었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이걸 말로 설명해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정도로만 독자가 생각해 주어도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4U1qDWkNG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