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나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독립을 한다거나 결혼을 할 정도로 돈이 충분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사진을 찍으러 다닐 교통비나 술값, 병원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자면 보험비, 교통비, 생활비, 건강보험료 등 내야 할 것들은 많지만 그것들을 내더라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다.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집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생일이 아니라면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실 도움을 받을 정도로 돈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는 도움을 받기는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돈이 없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모아둔 돈이 없다. 정말, 정말 다행인 점은 대출이나 빚이 없어서 고정적으로 나갈 이자가 없다는 것은 이미 돌아가신 아빠에게 정말 큰 감사함을 항상 느끼고 있다. 다단계를 당했고 제3 금융권에서 600만 원이라는 돈을 대출하니 한 달 이자로만 9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을 혼자 내려니 너무나도 무서웠고 매달 그 날짜가 다가오면 숨이 막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불안하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내가 혼자 얼마나 이자를 처리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6개월 정도를 그렇게 버티다가 아빠가 건강할 때 밖에서 술 한잔 하자고 했다. 아들이 술을 먼저 밖에서 먹자고 하는 게 아빠 입장에서는 뿌듯했을까?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나눈 술집이 어딘지 정확히 기억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도 그 음식점은 존재했고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긴 하다. 그 음식점을 가서 아빠와 앉았던 자리를 앉으면 아빠와의 기억이 조금은 생생할까 싶은 마음도 들고.
그렇게 아빠에게 막연하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아빠의 모습은 '아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을 하러 온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마냥 기뻐하는 아빠의 표정을 앞에 두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신 소주잔을 털어내는 내 모습을 보고 아빠는 기어코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보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덜컥 눈물이 나고 말았다.
처음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하면서 아빠의 표정이 굳어짐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정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였을까. 그래서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마음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겹쳐서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아빠에게 모든 일을 털어냈다. 다단계를 당했고 제3 금융권에서 대출을 600만 원 받았는데 그 대출 이자가 혼자서 이겨내기가 힘들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빠의 성격으로는 무조건 해결해 주셨을 일이다. 그걸 알고 아빠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로 이야기를 한 것이기도 하다. 사고는 내가 쳤으니 아빠가 600만 원 갚아줘~라는 가벼운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도 내가 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었지만 아빠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
"알았어 아빠가 해결할게"
아빠는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저 한마디로 나의 무수한 말과 이 일의 일을 한 번에 끊어냈다. 그 이후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택시를 타고 집에 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매달 100만 원씩 나에게 주었고 나는 그 돈으로 차근차근 갚아나갔다. 그렇게 내 앞으로 생긴 대출을 다 갚은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였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빠는 세금 문제로 이런저런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결국 찾지 못해서 나까지 왔었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나는 그것 때문에 원하는 회사와 회사가 나를 원하는 상황이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기도 했었고 그랬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대가가 아니라 그건 다른 부모들이 아니라 나의 아빠였기 때문에 해결해 줬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4년 후인 지금 나는 몰랐지만 주변에서 나의 사진을 보고 사진에 대한 감각이 있고 사진의 색감을 잘 잡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나에게 남겨준 건 다른 게 아니라 사진에 관한 재능을 물려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장 옆에서 아빠가 특별한 재능을 물려주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님이 나에게 가장 크고 좋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 아니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카메라를 들이고 나니 아주 작은 세상들이 하나 둘 보이는 느낌이다. 이제라도 희망이 생기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할지 이렇게 망나니처럼 살아왔는데 이제야 희망이 보인다고 절망하고 후회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술을 어느 정도 끊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중반에 삶의 희망이 조금씩 보이는 게 화가 난다. 왜 이제야 난 이런 사람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