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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by 동틀무렵

몇 해 전 어느 신문사에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면서, 名士들이 좋아하는 우리말 하나를 골라 글을 쓰고 그것을 모아 부록으로 낸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 요청이 내게 올리는 만무 하겠지만, 만약 그런 제안이 온다면 어떤 단어로 할까 하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결’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숨결, 물결, 바람결 할 때의 ‘결’이다. 분명히 있되 실재를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그 어떤 오묘한 느낌이나 감각을 표현하는데 ‘결’을 대체할 말은 마땅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얼른 사보았더니, 어느 인사가 그 단어를 먼저 낚아채어 버렸다.


갑자기 이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난 설에 ‘북적북적’이라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설날인데도 집안은 적막하기만 하다. 아내와 아들, 달랑 셋이서 차례 올리고 단출하게 지내는 설이다. 언젠가부터 딸내미는 명절은 곧 휴가라는 생각인지 때마다 여행 다니기에 바쁘다. 명절에 조상님 차례도 지내지 않고 어딜 가느냐는 내 잔소리에 아내는 시집가기 전에 실컷 놀아야지, 하며 오히려 딸내미를 부추긴다. 거기에는 지난 세월의 억울함과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심사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이럴 때는 아무런 의무가 없는 듯한 것이 딸내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그나마 아들은 명절에는 조상님을 모시고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행인가 싶다.


작년 추석에는 아들은 일 때문에 지방에 가 있었고, 딸내미는 해외여행을 떠나버려 아내와 달랑 둘이서 추석을 보냈다. 당연히 아내와 함께 가던 성묘도 무더운 날씨와 강아지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혼자 가서 죄송한 마음으로 부모님 앞에 엎드렸다. 돌아와 밝은 달밤에 앉아 있자니 아직도 더운 날씨이었건만 스산한 바람이 마음에 절로 스미었다. 불현듯 ‘가족 보릿고개’라는 생각이 들어 어설프게 시조를 흉내 내 읊으며 아내와 쓸쓸하게 웃었다.


“부모님 계시고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던 지난 세월의 한가위. 부모님 아니 계시고 자식들도 없이 강아지 똥 치우며 아내와 둘이서 지내는 한가위. 자식은 짝을 찾을 생각도 없으니 식구 늘어날 날은 아득하기만 하네. 쪼그라든 식구에 문득‘가족 보릿고개’라는 생각이 든다. 보름달은 가득히 둥근데 이 마음은 허허롭네”



TV에, 충청도 어느 지방에 6형제와 그 후손 3대가 모여 매년 모임을 하는 집안이 있었다. 무려 90여 명이나 모이는데, 플래카드도 걸어 놓고 마치 어느 회사의 워크숍을 보는 듯했다. 이른 시기에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20대 초반의 맏형과 형수가 다섯 동생을 자식같이 키웠다고 한다. 그러니 동생들은 형수님을 어머니 모시듯 따르고 형님의 영은 아버지와 같았으며, 그 화목함은 9대가 한집에 살았다는 당나라 장공예(張公藝)* 집안이 그러했을까를 상상하게 했다. 그 모습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도 그러했지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리움에 울컥해졌다.


회사 시절, 워크숍이나 리더 결의대회 같은 행사를 할 때면, 어떤 조직을 만들겠냐는 각오 같은 것을 써야 할 때가 자주 있었다. 그때 나는 최고의 성과조직이라든지 1등 조직 달성 같은, 하나 마나 한 거룩한 말의 성찬보다는 ‘시골 난장같이 시끌벅적한 조직을 만들겠다’라고 자주 썼다. 조직이 시끄럽다는 것은 구성원 간에 소통이 잘되는 것이고, 소통이 잘된다는 것은 협력이 잘된다는 것이다. 각지의 조직을 방문해 보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팀원 간에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끌벅적한 조직이 있었고,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팀도 있었다. 경험상으로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조직은 성과가 좋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화합도 결과도 미흡했다.


나는 평소에는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거나 사유하는 것을 즐기지만, 가족이나 친척들과는 북적북적하는 것을 자주 그리워한다. 가까이 계시는 누님이 집에 오면 마음이 마냥 기꺼워진다. 그러나 식구는 매년 그대로이고 명절에는 더 쪼그라지는 형편이다. 자식들이 성가하고 나도 손주 볼 나이도 지났건만, 아직도 자식들의 마음은 거기에서 멀리 있는가 보다.


사람은 서로 부대끼고 살아야 사는 맛이 난다. 어느 집에 사람이 북적인다면 그 주인은 분명 인품이 깊을 것이다. 가게가 북적거린다는 말에서는 생동감과 희망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명절에 집안이 북적북적하면 기분 좋게 들뜨고 살아 있음이 더 느껴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결’이란 단어는 이미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겼으니 만약 내게 좋아하는 우리말을 꼽으라면 ‘북적북적’을 그것으로 꼽을 것이다.



* 장공예((張公藝) : 구당서 188권 「열전」 138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운주 수장 사람 장공예는 9대가 동거하였다. 북제 때 동안왕(東安王) 고종(高宗)이 장공예의 집을 방문하여 9세(九世)가 같이 살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그러자 공예는 참을 인(忍) 100여 자를 쓴 것을 보여주며 답했다고 한다. 고종이 이에 감격하여 비단을 하사하였다.” [네이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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