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Mar 25. 2023

봄은 들이닥친다

제사를 모실 때 모사 그릇에는 본디 띠풀을 올리는 것이지만, 도회지에서는 구할 수가 없으니 솔가지를 올린다. 2월 중순, 아버지 제사를 모시려고 모사(茅沙) 그릇에 놓을 솔가지를 꺾었다. 설 차례 때는 그냥 똑 부러지던 솔가지가 이번에는 질기게 버티며 잘 꺾이지 않는다. 아직 날씨는 차가운데 벌써 가지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그렇구나. 뭇 생명은 하마 봄이 오는 것을 알아채고는 아무도 모르게 한껏 생명을 펼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정작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 일이라곤 목을 길게 빼고 봄을 기다리는 것밖에.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바로 앞 정원에 살구꽃이 피어있다. 몇 년을 살아 온 집인데 그 나무의 꽃이 피어있음을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바라보매 그 분위기가 참으로 따뜻하고 화사하다. 나무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니 하늘을 연분홍 이불로 덮은 듯하다. 가을날에 누렇게 익어 흐벅지게 달렸던 그놈의 열매를 보면서 군침을 다신 적은 많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그 꽃이 눈으로 들어왔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 옛날 모처럼의 나들이에 정성스레 입으시던 어머니의 옥양목 치마저고리의 빛깔과 완연히 같다.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날 듯이 입으시고 참빗으로 곱에 머리를 빗으시던 어머니가 파란 하늘 위로 떠 오른다. 댓돌 위에는 꽃무늬 하얀 고무신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파트 주변을 걷고 있던 노인이 다가오더니 꽃나무 아래 벤치에 살며시 앉는다. 체구가 아담하고 얼굴이 맑은 할머니다. 연분홍 꽃과 할머니의 맑은 얼굴도 닮은 데가 있다. 할머니도 가만히 앉아 꽃을 바라본다, 간간이 들릴듯한 옅은 한숨이 살랑바람에 실려 온다. 할머니의 봄은 새로운 꿈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니면 먼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는 것일까. 할머니의 봄에는 옅은 한숨이 숨어 있다.

     

조금 떨어진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목소리에는 봄의 기운이 실려 한 옥타브 올라가 있다. 아이들의 봄에는 힘과 꿈이 들어 있다. 건물 사이를 쩡쩡 울리는 아이들의 기운찬 목소리와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 속에서 봄이 방방 뛰고 있다.

     

꽃나무 아래 잔디밭 한쪽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졸린 눈을 가물가물하며 앉아 있다. 참으로 나른한 풍경이다. 시인도 봄은 고양이라고 했으니 그것을 증명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고양이의 봄은 무거운 눈꺼풀이다.


가슴에서 일어난 춘심은 무거운 몸을 북한산 자락으로 밀어 올린다. 정릉천에는 검둥오리가 날개 죽지에 올망졸망한 새끼를 보듬고 모래톱에서 햇살을 느끼고 있다. 한 마리, 두 마리.. 일곱 마리다. 모든 새는 봄이 되어야만 새 생명을 보듬어 세상에 내어놓는다. 지나가던 중년의 여성들이 신기하여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떼지 못한다. 곧 태어날 그네들의 손자, 손녀를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새들의 봄은 새 생명이다.

     

나의 봄에도 꿈이 있고 한숨도 있다. 나른한 고양이도 있다. 그러나 설렘은 옅어지고 있다.

      

봄은 요란한 나팔을 불며 오지 않았다. 엇! 하는 어느 사이에 들이닥쳤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방비로 봄을 맞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돌직구 직원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