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달디달고 달디 단 밤
"연이는 제가 잠시 심부름을 보내서 지금 자리를 비웠는데... 아니면 밤도 깊었는데 식사도 하시고 여기서 묵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연이는 곧 돌아올 것입니다."
주모의 말에 장승같이 훤칠한 사내는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허... 참...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주모가 "아 그럼 다음... 에"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우현은 주모의 말을 재빨리 끊고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그럼 그렇게 하겠네."라고 대답했다
.
주막 안으로 들어가면서 강우현은 괜히 어색함을 덜어내기 위해 혼자 허공에 대고,
"흠흠... 뭐가 맛있나 여기는?"
'혹시 미친놈은 아니겠지'라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우현을 쳐다보다 장승같이 훨칠한 키에 잘빠진 백자 마냥 반듯한 얼굴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내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강우현은 주막 안에 들어오자마자 초조한 눈빛으로 주막 대문 밖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다 큰 처자가 이리 밤늦게 돌아다니다니... 혹여 낮에 만난 시정잡베놈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아... 이리 불안할 줄 알았으면 그 놈들 사지 멀쩡히 보내는 것이 아닌데...'
'안 되겠다. 내가 이 앞이라도 나가 봐야..' 하며 앉은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애타게 기다리던
연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강우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 오셨네요!" 연이의 반가운 목소리에 강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활짝 미소 짓다가 이내 주모가 상을 들고 들어오자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현) "마침 근처를 지나가다가 날도 어두워지고 하길래 또 마침 묵을 곳도 필요하고 해서 그래서..."
연이) "아 그러셨구나.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낮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 식사하고 계셔요. 이건 제가 대접하는 겁니다. 아, 그리고 혹시 약주하시겠습니까?"
우현) "뭐... 정 그렇다면... 한 잔만..."
연이) "먼저 식사하고 계셔요. 제가 빚은 술이 있는데 지금 맛이 아주 잘 들어서 가져올 테니 기다려주셔요."
강우현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설렘이 묻어나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온갖 이유와 논리를 다 대도, 도무지 머릿속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거부하기 싫은, 그 어떤 이유를 댈 필요 없는 무언가가 본인을 여기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수지타산이 맞아야 움직이고 다음 수를 내다보며 움직이던 강우현은 처음으로 다음 수를 알 수 없는 그저 나비가 향기로운 꽃을 쫓듯이 그저 그 단순한 이유로 그 여인을 쫓는 나비의 신세가 되었다.
"어떻습니까?" 사탕 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에 찬 동그랗고 맑은 두 눈이
강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와... 아니 어여쁘... 아니 맛이 괜찮소!!!"
물에 비친 달이 너무 아름다워 물에 빠졌다는 어느 유명한 시인처럼 여인의 눈을 바라본 순간, 물색없이 어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강우현은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그 여인에게 점점 잠겨버렸다.
"저기... 나는 강우현이오."
"아... 그러고 보니 감사한 분께 통성명도 안 하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사 연이입니다.
그럼 식사마저 하시고 푹 쉬세요."
연이가 일어서려는 찰나, 우현의 마음속이 뜨거워지며 생각을 하기도 전에 행동이 앞서나갔다.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았다.
"여기 있으시오."
연이는 원래도 큰 눈이 더 커지며 우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내가 원래 혼자 밥을 못 먹소. 누가 옆에 있어야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고... 컥... 컥..."
우현은 재능 없는 거짓말을 하려니 머릿속이 더 뒤엉키고 말이 제멋대로 나오는 것 같았지만, 기세 하나는 타고난 우현은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것 보시오. 그대가 갑자기 일어나니, 목에 사레가 들리잖소."
연이는 황당한 표정으로 우현을 보며 다시 우현을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앉아있는 연이를 보고 슬쩍 미소 지으며 우현은 다시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우현) "혹시 술 한 잔 괜찮소?"
연이) "어... 그럼 한 잔만..."
연이는 수줍게 웃으며 잔을 받았다. 연이는 사실 술을 꽤 잘 마시는 편이다. 오는 술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본인의 사명처럼 꼭 지켰다.
연이) "그럼 저도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몇 잔이 오고 갔을까.
연이)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우현) "사내대장부가 이깟 술에......"
'쿵!'
우현의 넓은 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놀란 연이는 우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연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술에 잔뜩 취한 우현은
"나는 괜찮소. 낭자, 내가 지켜주겠소. 내 품에 있으시오." 잠꼬대를 하더니 곁에 있던 연이를 부지불식간에 확 끌어당겨 안았다.
순간 우현의 품속으로 당겨져 폭 감싸진 연이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어느 절의 타종 소리보다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