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다섯 개 맛집, 별점 하나 깎일 뻔한 날
고양 스타필드, 주말의 북적임 속에서도 발길이 향하는 곳이 있다.
우리 가족의 성지 같은 음식점.
당연하게 늘 먹던 메뉴를 떠올리며 주문하려던 찰나, 차가운 목소리가 막아섰다.
“저희 30분 간 주문 안 받아요.”
쏙 하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칼날처럼 짧은 대답.
매몰차게 닫히는 주방 문.
꼬르륵거리는 아들의 배꼽시계는 이미 요란하게 울린 지 오래였다. 나름 단골이라고 자부했는데, 야박한 거절에 내적 비명이 절로 나왔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푸대접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냥 다른 데 갈까?’ 싶었지만,
“여기 아니면 싫어!” 아들의 외침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결국 우리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칭얼대는 아이, 무뚝뚝한 식당 직원, 바로 코앞에서 끊겨버린 주문에 대한 아쉬움. 눅눅한 짜증이 끈적하게 밀려왔다. 아들은 마치 100년은 굶은 사람처럼 의자에 찰싹 달라붙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듯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마치 멈춰버린 듯한 20분이었다.
22분쯤 지났을까. 아까 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아까와 전혀 달랐다.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저희가 오전부터 너무 바빠서 식사를 못했어요. 애기도 같이 기다리는 것 같은데 빨리 만들어 드릴게요.”
그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잠시 후, 음식과 함께 작은 서비스까지 내어주셨다.
사장님도 주방장도 엄연히 식사할 권리가 있다.
그래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않겠는가. (‘절대’ 서비스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식사 시간은 소중히 여기면서, 병원에서, 식당에서,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식사 시간은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직장에서 점심도 거르며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이것 좀 빨리 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말 한 마디가 이렇게 마음을 바꿔 놓을 줄이야.
우리는 서로 단골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