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상처도 너야”

나를 끌어안는 깨달음

by 강훈

드라마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한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열한 살 아이가 잠든 척하며 이불속에서 듣고 있는 소리들.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일.

카메라는 아이의 떨리는 눈꺼풀을 비췄고, 나는 그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내 기억의 재현이었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잠들기가 두려웠다. 잠이 들면 그 기억이 꿈으로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생생한 걸까.


새벽 세 시, 또다시 잠에서 깬 나는 거실로 나왔다. 차를 끓이며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이 기억을 어떻게 다뤄왔던가. 아니, 다룬 적이 있기는 한가.

사실 나는 한 번도 이 기억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저 없던 일로 치부하거나,

'별것 아닌 일'로 축소하거나, '이미 지나간 일'로 묻어두기만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그 묻어둔 관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전히 썩지 않은 채 생생하게 살아있는 열한 살의 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무서워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처럼,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찻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 수치심을 내 것으로 짊어지고 있을까? 그날 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열한 살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저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그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고, 마치 그가 거기 없는 것처럼 행동한 어른들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이 자기 아이가 잠을 자는 그 옆에서 다른 여자를 데려와서 성관계를 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충격적이고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삼십 년이 넘도록 그들의 부끄러움을 대신 짊어지고 있었을까.

이 깨달음은 작은 균열처럼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점점 커져서 그동안 내가 쌓아 올린 방어벽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며칠 후, 나는 오랜만에 책장을 뒤지다가 브레네 브라운의 책을 다시 발견했다. 예전에 읽다가 중간에 덮어둔 책이었다. 왜 덮어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취약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연구 도중 '신경쇠약'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치료사는 그것을 '정신적 각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너짐이 아니라 깨어남이라니.

브라운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감정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킬 수 없습니다. 고통, 수치심, 두려움을 마비시키려 할 때, 우리는 기쁨, 감사, 행복도 함께 마비시킵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삶이 왜 그토록 무미건조했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그 열한 살 밤의 기억을 마비시키려고 모든 감정을 차단해 왔다. 그 결과 나는 아프지도 않았지만 기쁘지도 않은, 죽지도 살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전심전력(Wholehearted)'으로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고. 그들은 "나는 충분해"라고 믿었다고. '상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상처를 포함해서' 충분하다고.

그렇다. 상처를 포함해서.


책을 덮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내 안에서 누군가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처도 너야."


처음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처가 나라니? 상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내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네가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그 기억, 그 아픔, 그 수치심. 그것도 모두 너야. 너의 일부야."


나는 저항했다. 아니라고. 그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자 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맞아.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네 삶의 일부야. 네가 걸어온 길의 일부야.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어."


만약 내 손에 칼에 베인 상처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 상처가 있다고 해서 손을 잘라버릴까?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손이 내 손이 아니라고 할까?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손을 쓸모없다고 버릴까? 절대 그렇지 않다.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면서, 그 손을 여전히 내 소중한 손으로 여길 것이다. 상처가 있어도 그 손은 여전히 나의 일부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 아닐까? 상처가 있다고 해서 내가 아닌 게 아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상처도 나의 일부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왜 다를까? 왜 육체의 흉터는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흉터는 부정하려 할까?


칼 융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일부를 '그림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운명이 된다고 했다.

내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열한 살 밤에 무력하게 떨고 있던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부정했다. 약하고,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여기며 내 안 깊은 곳에 가둬두었다.

하지만 융의 말대로였다. 내가 가둬둔 그 아이가 내 삶을 지배했다. 누군가와 친밀해질 때마다 느끼는 불안, 큰 소리가 날 때마다 움츠러드는 몸, 행복한 순간에도 곧 끝날 거라는 두려움. 모두 그 아이가 보내는 신호였다.


"상처도 너야."


이제 이 말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상처를 인정하는 것. 그것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그 열한 살 아이를 떠올렸다. 그동안 외면했던, 부정했던, 없는 척했던 그 아이. 이제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야." 속으로 불렀다.

대답이 없다. 당연하다. 삼십 년 넘게 무시당한 녀석이 바로 대답할 리 없다.

"나도 아직도 그날 밤이 생각나."

침묵.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직도 역겨워."

이상하게도 이 말을 하니까 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위로가 아니라 솔직함이 필요했던 거다.

"근데 있잖아. 그때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열한 살이었잖아."

눈물이 났다.

"인간도 아니지, 완전 쓰레기 새끼들이지. 진짜. 애 옆에서 그런 걸 하는 게 사람이야?"

욕이 나왔다.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에게 하는 욕이었다.

"우리가 더러운 게 아니야. 걔들이 더러운 거지."

그제야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힘들었지. 나도 알아. 지금도 힘들어."

이게 진짜였다. 멋진 위로의 말이 아니라, 여전히 힘들다는 고백. 그게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진실이었다.


아들러는 인간에게 '창조적 자아'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미래의 창조자라고. 이제 나는 이해한다. 상처를 부정하고 있는 한, 나는 과거의 포로였다. 하지만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상처도 너야."

이 깨달음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더 이상 완벽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아무 일 없었던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더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더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온전함이란 완벽함이 아니라는 것을. 온전함이란 나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도, 강함뿐만 아니라 약함도, 기쁨뿐만 아니라 상처도.

그 모든 것이 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온전한 나를 처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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