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한 여자'로 바라보기
결혼을 앞두고 나는 엄마를 찾기로 했다.
25년. 여덟 살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밀크캐러멜 한 통을 남기고 사라진 그날 이후로.
왜 하필 그때였을까? 아마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봐요, 엄마가 버린 아이가 이렇게 멀쩡하게 자랐어요. 결혼도 할 만큼 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어요.'
전화번호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25년 만에 듣는 엄마 목소리였다. 순간 여덟 살의 내가 깨어났다. 목이 메었다.
"엄마... 저 훈이예요."
침묵. 그리고 경계 섞인 목소리.
"왜... 왜 전화했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시켜서 전화한 줄 알았다고 한다.
혹은 내가 아버지처럼 되어서 뭔가 요구하거나 협박하려는 줄 알았다고.
25년 동안 엄마가 품고 살았을 두려움이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대전의 한 호텔 앞. 우리는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처음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올수록 알 수 있었다. 엄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25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살았구나. 연락해 줘서 고맙다."
엄마의 눈물 젖은 목소리.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용서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우리는 가족처럼 지냈다.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만났고, 엄마가 재혼한 남편분도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나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평범한 가족 행세를 했다.
그런데 내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모든 게 달라졌다.
딸아이를 보며 나는 여덟 살의 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작고 연약한 아이를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를 찾을 텐데. 밤에 무서우면 엄마를 부를 텐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실제로 여덟 살의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매일매일.
'나는 죽으면 죽었지 이 아이를 버릴 수 없는데, 어떻게 자식을 버리지?'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만남을 피했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부모가 되어보니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내 딸을 보며 상상해 봤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상상이었다.
만약 내 딸이 커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매일 때리고 다른 여자를 집에 데려온다면?
만약 내 딸이 그런 지옥에서 살고 있다면?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당장 달려가서 그놈을 반쯤 죽여놓고 딸을 데려올 것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 딸이 그런 고통 속에서 하루라도 더 있게 둘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다.
서른한 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젊은 나이다. 한 여자가 사랑을 믿고 시집왔는데,
남편은 매일 폭력을 휘두르고 다른 여자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만약 그게 내 딸이라면? 나는 단 한 달도, 아니 일주일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8년을 버텼다. 내가 스스로 밥을 먹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그래도 나와 내 동생이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엄마는 집을 떠났던 것이다.
<엄마이기 전에 사랑받고 행복을 누려야 할 한 여자>
이 생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나는 그동안 엄마를 '엄마'라는 역할로만 봤다.
엄마는 아이를 버리면 안 되는 존재. 엄마는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존재.
하지만 엄마도 한 인간이었다. 두려움과 고통, 절망을 느끼는 한 여자였다.
매 맞고 모욕당하며 하루하루 죽어가던 서른한 살 젊은 여자.
엄마를 '나를 버린 엄마'에서 '생존을 위해 도망친 한 여자'로 보니, 모든 게 달라졌다.
미움이 연민으로, 원망이 이해로 바뀌었다.
아들러는 이를 '사회적 관심'이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귀로 듣고,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 공감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보고 싶어."
전화기 너머로 목이 매인 숨소리가 들렸다.
용서는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해와 분노, 연민과 원망 사이를 오가는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환경은 사실 절대 안 바뀌어요. 그런데 생각은 우리 맘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내가 늘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떠난 사람이다. 또한 새로운 가족이 있고, 재혼 후 낳은 또 다른 아들이 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바뀔 수 있다.
나를 버린 엄마가 아니라, 나를 위해 8년을 버틴 엄마.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생존을 선택한 한 사람의 여자.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일상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누리는 사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바로 그런 사람.
이제 나는 엄마를 만날 때 더 이상 여덟 살 버려진 아이가 아니다.
한 여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어른으로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엄마가 그래도 조금은 행복하게 살아서 다행이야. 다시 만났는데 엄마가 계속 힘든 삶이라면 얼마나 더 슬프고 괴로웠을까? 그랬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나 있었을까?”
용서의 재해석. 그것은 상대를 다른 눈으로 보는 용기였다. 그리고 그 용기는 결국 나를 자유롭게 했다. 미움의 감옥에서, 원망의 사슬에서.
아버지는 다르다. 나는 아버지를 완전히 내 삶에서 지웠다. 아버지가 어느 날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을 때, 그가 사과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알았다. 그것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난 엄마를 만나기 전에 자식들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물었다.
"니들에게 사과할 게 뭐가 있나? 난 니들을 사랑한 것 밖에 없어."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줬다. 선택적 기억상실증처럼, 그는 자신의 폭력과 학대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더 이상 그와 싸우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와의 연을 끊었다. 그것도 하나의 용서일 수 있다. 더 이상 그에게 얽매이지 않겠다는.
용서는 때로는 이해하고 품는 것이지만, 때로는 놓아주고 떠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달라고. 다시 미움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엄마를 생각한다.
서른한 살, 절망 속에서 생존을 선택했던 한 여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