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힘이 되는 역설
"저는 열 명의 새엄마가 있었어요."
로스앤젤레스의 한 교회 예배당.
조명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지만, 나는 청중들의 표정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누군가 숨을 삭이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시작됐다.
처음 미국 강연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망설였다.
내 이야기가 과연 미국의 이민 사회에서 통할까?
하지만 막상 가보니 깨달았다. 상처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이민자들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한국의 이혼율이 50%에 이른다는 통계가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민 사회에서는 그것이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언어의 장벽, 문화적 차이, 경제적 압박이 겹치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속도는 더 빨랐고,
상처는 더 깊었다.
강연이 끝나고 한 남성이 다가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저는... 새엄마가 아홉 명이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의 눈에서 내 어린 시절이 보였고, 내 눈에서 그의 아픔이 보였다.
"제가 제일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위로받았어요.
한 명 더 많아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이렇게 잘 살아낸 모습에서요.
저도 더 힘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상처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심리학자 어빈 얄롬(Irvin Yalom)은 집단치료에서 '보편성(universality)'의 치유력을 강조한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깨달음,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강연장 곳곳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떤 이는 조용히, 어떤 이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 따뜻한 손길에서 할머니의 못다 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민 사회에서 상처는 마치 '기본 옵션'처럼 보였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무뎌진 것처럼.
하지만 무뎌진 것이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이 곪아가고 있었다.
자기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마비(emotional numbing)'라고 부른다.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기제로,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모든 감정을 차단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진정한 치유는 아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전히 내 이야기를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있었다면?
아마 평생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더 큰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나보다 더 큰 상처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우리는 모두 부서진 곳에서 더 강해진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우리는 부서진 곳에서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더 연결된다.
뼈가 부러졌다가 붙은 자리는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단함이 아니었다.
그 부러졌던 자리가 날씨가 바뀔 때마다 쑤시듯,
내 마음의 부러진 자리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날 때마다 공명했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민감함이었고, 그 민감함이 바로 내 강점이었다.
"저는 새엄마가 아홉 명이었어요"라고 말한 그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내 안의 여덟 살이 함께 울었다. 그것이 공감의 진짜 모습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는 것.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인생은 뒤돌아보며 이해되지만, 앞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라고 했다.
내 과거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이해됐다.
왜 그런 일들을 겪어야 했는지, 왜 그토록 아파야 했는지.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누군가의 앞에 서서 "나도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순간.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는 이 순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의미치료(logotherapy)'를 창시했다.
그는 고통 자체는 피할 수 없지만,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고 했다.
의미를 찾을 때, 견딜 수 없던 고통도 견딜 수 있게 된다고.
내 상처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결이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의 깊은 연결.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눈빛.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마음.
"난 창피하지 않아요."
내가 강연 말미에 한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도 창피할 필요 없어요. 무엇을 겪었든, 어떤 상처가 있든."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지금 이 순간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상처를 숨기고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나는 이제 내 약점이 무엇인지 안다. 버려진 상처, 맞은 기억, 가난의 흔적.
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내게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마도... 바꾸지 않을 것 같다.
그 모든 아픔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까.
그 모든 상처가 없었다면, 오늘 만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었을 테니까.
상처는 나의 가장 훌륭한 가치다. 가장 아픈 선물이었지만, 가장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결국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더불어 보너스처럼 미국 강연 횟수가 늘어갔다.
오늘도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한다.
자신의 상처가 너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약점이 언젠가는 가장 큰 강점이 될 거라고.
당신의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증거가 될 거라고.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기를.
숨기지 말기를.
당신의 균열로 들어온 빛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어둠을 비출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