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강연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울었고, 위로받았고,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텅 빈 느낌이었다. 마치 큰 공연을 끝낸 배우가 무대 뒤에서 느끼는 공허함 같은.
그런 것이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다가오니 두려웠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면서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상처받은 사람'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지만,
나 자신은 아직 '치유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 강연 녹음을 들어봤다.
객관적으로,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듯이. 그리고 놀랐다.
그 사람은 – 내가 – 단순히 불쌍한 과거를 늘어놓는 게 아니었다.
아픔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나누고 있었다. 상처를 통해 발견한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아, 나는 이미 치유자구나.'
이 깨달음은 두려웠다. 상처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치유자로 산다는 것은? 그것은 책임감을 의미했다.
더 이상 내 상처에만 매몰되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글을 썼다.
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처음엔 어려웠다.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을 '부모의 선택과 자녀의 자존감'이라는 주제로 확장하는 것.
'아버지의 폭력'을 '트라우마와 회복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개인적 아픔을 보편적 통찰로 전환하는 과정은 또 다른 차원의 치유였다.
그러던 중 아내가 제안했다.
"오빠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원래 곡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노래로 소통하면 사람들이 더 마음을 잘 열지 않을까?"
나는 웃었다. 노래라니. 하지만 그날 밤, 피아노 앞에 앉아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음표가 되어 흘러나왔다.
처음 쓴 노래는 '난 날 버리지 않습니다'였다. 추후에 이 곡은 음원으로 발표도 되었다.
내가 쓰러져서 엎드려 있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핵심 이유였다.
녹음을 하며 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원했다. 마치 오래된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토크 콘서트라는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야기만으로는 너무 무겁고, 노래만으로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둘을 결합하니 완벽했다.
이야기로 맥락을 전하고,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고, 대화로 연결을 만드는 것.
첫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떨었다. 강연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부분을 예술로 승화시켜 보여준다는 것. 그것은 궁극의 취약함이었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첫 곡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것이 내 길이라는 것을.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노래했다.
공연이 끝나고 한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목사님, 저도 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치유자가 된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자신의 여정을 나누고,
다른 사람도 그들만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선배 목사님이었던 전용대 목사님께서 해주신 조언이 떠올랐다.
"치유자로 산다는 것은 평생 배우는 것이야.
네가 다 알아서가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동반자가 되는 거지."
그 말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모든 답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 여정을 정직하게 나누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치유자도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
매일 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듣고, 그들의 눈물을 보는 것은 나를 지치게 했다.
2차 트라우마라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루틴을 추가했다. 매주 하루는 완전히 쉬는 날.
그날은 자연 속을 걷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요리를 했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였다. 내가 소진되면 누구도 도울 수 없으니까.
실패도 있었다. 한 번은 내 조언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 적이 있다.
나는 깊이 사과했고, 그 경험을 통해 배웠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해답이 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미국 강연 이후 요청이 늘어났다. 한국, 일본, 독일, 체코, 필리핀, 베트남...
내 이야기가 언어와 문화를 넘어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놀랍지 않다. 상처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니까.
최근 한 강연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럼 목사님은 이제 완전히 치유되셨나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아니요. 저는 매일 치유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것이 진실이었다. 나는 완치된 사람이 아니라 치유 중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를 진정한 치유자로 만들었다.
내가 여전히 길 위에 있기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난다.
내 일상은 이제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을 위한 다리이고, 희망을 위한 통로다.
상처받은 치유자. 이 역설적인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 상처가 나를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내 아픔이 나를 고립시킨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연결시켰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작은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쓰는 글, 매일 만드는 노래, 매일 만나는 사람들.
그 작은 루틴들이 쌓여 이제는 내 삶의 의미가 되었다.
치유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특별한 능력을 갖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자신의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여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 자신의 상처와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상처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