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다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by 강훈

"대표님, 이게 뭡니까?"


손에 든 전단지가 떨렸다. 아니, 내 몸 전체가 떨렸다.

공황장애의 그 익숙한 느낌.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왔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운영하는 떡볶이 가게!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아이들의 미래를 밝힙니다.'


사회복지기관 대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죠? 이렇게 홍보하면 손님도 많이 오고 후원도 늘어날 거예요."


나는 숨을 고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이건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들은 일을 배우는 직원들이고요."

"무슨 말씀을? 우리가 투자도 했는데 당연히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상의도 없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요?"


대표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 권위에 도전하는 겁니까?"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전 이 기관의 직원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날 이후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대표는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투자금이었던 보증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나는 떡볶이를 만들며 생각했다. 이게 내가 원했던 건가?

아이들을 도우려다 오히려 그들을 전시하는 꼴이 되는 건가?

한 달 후, 나는 가게 문을 닫았다.


"사장님, 저희가 뭔가 잘못했나요?"

일하던 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야. 너희 잘못이 아니야.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너희 기관에서 더 좋은 준비를 해줄 거야."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으니까.

철거하는 날, 동네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저씨, 정말 문 닫아요? 여기 떡볶이 제일 맛있는데..."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만 중얼거렸다.

보증금에 해당되는 돈을 기관 대표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인테리어와 집기에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보험 설계사 강훈입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낯설었다.

어제까지 아이들과 떡볶이를 만들던 손으로 이제는 보험 설계서를 들고 있었다.

강연 요청이 왔을 때는 더 힘들었다.


"목사님, 이번에도 감동적인 이야기 부탁드려요."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좀 아파서..."


거짓말이었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살겠습니다.'


내가 했던 말들이 비수처럼 꽂혔다.

그 말을 믿고 후원해 준 사람들, 응원해 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배신한 거짓말쟁이였다.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문제였대."

"결국 돈 때문이었나 봐."

"아이들을 이용했다던데."


변명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결과적으로 나는 실패했고, 아이들은 다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번아웃이 왔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일어났다. 가족이 있으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아빠, 힘내. 아빠가 최고야."

딸아이의 응원이 오히려 더 아팠다. 최고라니.

나는 가족조차 제대로 못 먹이는 실패한 가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있어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오빠가 있어서 든든해. 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반대로 내가 대단한 일을 해도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나는 떡볶이 가게의 실패를 곱씹어봤다.

그들이 아이들을 '불쌍한 존재'로 전시하려 했다면,

나는 아이들을 '내 선행의 증거'로 사용하려 한 건 아닐까?

그들이 기관의 후원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했다면,

나는 내 브랜드 가치를 위해 그들을 이용한 건 아닐까?

아팠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꼭 나여야만 했을까?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을 도울 사람은 많다.

어쩌면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


특별하고 멋있는 일을 해야만 의미 있는 인생일까?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삶일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내 삶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존재하니까.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나는 천천히 회복했다. 거창한 꿈은 접었다.

대신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기로 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딸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평범한 일상.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가끔 떡볶이 가게가 있던 자리를 지나간다. 이제는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아픔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실패했지만 시도했고, 넘어졌지만 일어섰으니까.

무엇보다 이제 안다.

내 존재의 의미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다. 세상도,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도.

하지만 괜찮다. 그것이 삶이니까.

오늘도 나는 평범한 하루를 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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