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이야기. 충분하다

완성되지 않은 완성

by 강훈

스시 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물었다.


"Hey Andy, how old are you?"

"I’m nintyfive."

"Oh, you're still young!"


미국에 와서 자주 듣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나이가...'라는 말을 들을 나이지만, 여기서는 'still young'이다.

처음엔 그저 문화 차이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정말로 나는 아직 젊은것인지도 모른다고.

인생이 백 년이라면, 아직 절반도 안 산 것 아닌가.


최근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일흔이 넘은 일본계 미국인이었는데, 막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거지."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소년 같은 열정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60세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 있을 때는 명확한 그림이 있었다.

'문화 사역하면 강훈 목사를 찾아가라'라고 할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멘토 브리지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수많은 아이들이 자립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 꿈은 떡볶이 가게와 함께 무너졌고, 나는 태평양을 건너 스시를 만들고 있다.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자유롭다.

'꼭 그래야만 해'라는 강박이 사라졌다.

'이것이 내 사명이야'라는 무거움이 없어졌다.

대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어제는 멕시코에서 온 청년이 찾아왔다.

가족을 데려오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특별히 큰 스시를 만들어주며 말했다.

참고로 그쪽 사람들은 푸짐한 것을 정말 좋아한다.


"Poco a poco. 조금씩, 조금씩."


그가 미소 지었다. 그 순간이 좋았다.

거창한 상담이 아니어도, 따뜻한 음식과 짧은 격려로도 누군가의 하루는 달라질 수 있다.


요즘 가끔 생각한다.

만약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큰일'을 할 기회가 온다면?

예전 같았으면 당장 짐을 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단 가족과 상의하고, 정말 그것이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고,

무엇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명예를 위해서? 인정을 위해서? 아니면 정말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이제는 안다.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작은 일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큰일과 작은 일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최근에 아내가 말했다.


"오빠, 요즘 얼굴이 편해 보여."


맞다. 편안하다. 더 이상 무언가 되려고 애쓰지 않으니 편안하다.

그냥 오늘의 나로 사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포기는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품은 것인지도 모른다.

집착하지 않으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매달리지 않으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증명하려 하지 않으니 더 진실하게 연결된다.


60세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시를 만드는 일이든, 다시 아이들을 돕는 일이든,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이든.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다.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하지만 상처에 매이지 않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하되, 그 의미에 갇히지 않고.


한번은 같이 일했던 젊은 동생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형처럼 행복할 수 있어? 알고보니 형 집 엄청 부자인거 아냐?"


예전 같았으면 열정적으로 조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웃으며 말한다.


"행복이 뭔지 먼저 생각해 봐. 정말 행복을 위해서 너가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성공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건지."


며칠 후 동생들이 찾아와서 얘기한다.


"형, 생각해 봤는데,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리고. 성공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라는 말이 정확했던 것 같아. 가족이랑 그저 행복한 것도 대단한 것이더라고."

"맞아. 그거면 충분해."


이것이 내가 60세, 70세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다.

거창한 조언이 아닌 짧은 대화로,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의 만남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문화 사역의 대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떡볶이 사장님'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사람 강훈'으로 기억되면 충분하다.

삶의 마지막 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상처받았지만 상처에 갇히지 않았고,

실패했지만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며,

작은 일을 했지만 큰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을 감사하며 살았다."


오늘도 스시를 만든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기꺼이 할 것이다.

자유롭게,

감사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로저스가 말한 특징들이 이제야 내 삶에서 실현되고 있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 - 새로운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실존적 삶 - 매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자신의 유기체적 경험을 신뢰하는 것 -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무엇보다 그가 강조한 '자유로운 선택'과 '창조성'.

더 이상 '이래야만 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매 순간 새롭게 선택하고 창조하는 삶.


60살이 되면서 이루려는 꿈?

이제는 꿈을 정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깨어있기로 한다.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내가 발견한 진정한 자유다.

밀크캐러멜의 쓴맛으로 시작해서, 스시의 신선함으로 이어진 내 인생.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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