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태도는 내가 선택한다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갑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SNS도 잠수 타듯이 멈추었다.
마치 도둑처럼, 도망자처럼 한국을 떠났다.
떡볶이 가게의 실패는 내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방향감각,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신용불량자가 된 현실은 덤이었다.
미국행 비행기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
나는 서버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강연자였고, 사업가였고,
누군가의 멘토였던 내가 이제는 접시를 나르는 사람이 되었다.
"야! 빨리빨리! 뭐 하고 그렇게 멍하니 서있어?"
매니저의 고함소리. 무거운 접시들. 끝없이 오가는 발걸음.
첫날 집에 돌아왔을 때 발은 퉁퉁 부어있었고,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새로운 시작인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의 5배는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어가 서툴러 손님들의 조롱을 받기 일쑤였고,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도 들었다.
그래도 견뎠다. 가족이 먹고살아야 하니까.
몇 달 후, 운 좋게 스시 셰프 자리를 구했다.
떡볶이 가게에서 쌓은 요리 실력이 도움이 됐다.
빠르게 배웠고, 곧 인정받기 시작했다.
'오길 잘했어.'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은 여전히 고됐지만, 적어도 먹고살 만했다.
하지만 가끔 거울을 볼 때면 낯선 내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사람', '영향력 있는 강연자'였던 내가,
이제는 그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민자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다가 깨달았다.
'나는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구나.'
아팠다. 진실은 늘 아프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이들을 도운다면서도 결국 '좋은 일 하는 강훈'이라는 이미지에 취해 있었다.
영향력은 상대를 위할 때 선한 것인데, 나는 나를 위해 영향력을 추구했다.
그것은 영향력이 아니라 야망이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나를 벌거벗겼다. 학벌도, 경력도, 과거의 성취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직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사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내 아이들에게 성실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도 엄청난 영향력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이민자 커뮤니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한국에서 의사였던 사람이 여기서는 우버 기사를 한다.
대기업 부장이었던 사람이 세탁소를 운영한다.
모두가 자존심을 접고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정이 깨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생활고와 스트레스,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균열들.
이혼과 재혼이 반복되고,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버려진다. 마약과 폭력도 흔했다.
'아, 이곳도 상처투성이구나.'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멕시코 출신 동료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나도 애 셋 두고 왔어. 10년째 못 봤지. 지금 와이프가 세 번째야."
그의 눈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봤다. 언어는 달라도 상처는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서툰 영어로, 때로는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열 명의 새어머니, 폭력적인 아버지, 버려진 기억들.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해?"
"네 모습에서 내가 보였으니까."
그날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상처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위로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깨달았다.
내가 한국에서 겪은 실패와 좌절, 그 모든 것이 여기서는 오히려 연결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사기당한 경험이 있어서 사기당한 사람의 마음을 안다.
배신당한 경험이 있어서 배신의 아픔을 안다.
버려진 경험이 있어서 버려진 자의 외로움을 안다.
어떤 일은 겪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이미 겪었다면?
그것을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능력이다.
모든 경험은,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누군가와 연결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최근 한 한인교회에서 간증을 부탁받았다. 오랜만의 강연이었다.
"저는 한국에서 떡볶이 가게를 망하고 도망치듯 온 사람입니다."
첫마디에 사람들이 놀랐다. 보통 성공 스토리를 기대하는데, 나는 실패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공감과 위로가 담긴 눈빛들.
강연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저도 사업 실패하고 왔어요."
"저도 한국에서 도망치듯 왔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살아계시네요. 힘이 됩니다."
그때 깨달았다. 상처받은 치유자의 자격증은 따로 없다는 것을.
그저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이민 사회에는 나보다 더 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전쟁을 피해 온 난민들, 가족을 다 잃은 사람들, 말도 안 되는 폭력을 겪은 사람들.
하지만 상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새어머니가 10명이든 1명이든, 그 아픔은 똑같이 진짜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요즘은 번역 안경까지 나왔다고 한다. 쓰면 상대방의 말이 자동으로 번역된다고.
웃음이 나왔다. 기술이 언어 장벽을 없앤다면, 내 상처가 문화 장벽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상처라는 보편적 언어로 세계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스시를 만든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가끔 손님 중에 지친 얼굴을 한 사람을 보면 더 신경 써서 만든다.
그리고 손님에게 한마디 조심스레 던진다.
"You look a little tired today. I did my best to make this, so enjoy it and stay strong."
'오늘 좀 힘들어 보이네요. 제가 최선을 다해 만들었으니 맛있게 드시고 힘내세요.'
마음을 담아 내민 스시를 받아 든 손님이 미소 짓는다. 그 순간이 좋다.
대단한 영향력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하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영향력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하루를, 한 끼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
미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팍팍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이제 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는 여전히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정체성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여기서는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태도는 내가 선택한다. 실패를 수치로 여길 수도 있고,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다.
상처를 숨길 수도 있고, 연결의 도구로 쓸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한다. 매일, 매 순간. 그것이 내가 선택하는 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