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이 되는 질문
전신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프다'였다. 두 번째는 '비싸겠다'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가장 뼈아팠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지?'
손가락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술에 취해 칼로 그은 상처가 인대까지 끊어버린 것이다.
수술실까지 가게 만든 내 어리석음이 한심했지만,
그보다 더 한심한 건 여전히 남 탓을 하고 있는 나였다.
병실은 조용했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폭력적이지 않았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 그들이 달랐다면 내가 지금 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지 않았을까? 정말로?
간호사가 들어와 진통제를 놓아주었다. 약값도 만만치 않을 거였다. 수술비, 입원비, 약값...
이 모든 걸 치르는 건 부모가 아니라 나였다. 그들은 내가 손가락을 다쳤는지도 모를 거였다.
그때 병문안을 온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야, 너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뭘?"
"부모 탓하면서 너 자신을 망가뜨리는 거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너네 부모들 인생은 부모들 거야. 왜 그걸 네가 짊어지고 다녀? 너는 너 인생을 살아."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진통제 때문이 아니었다. 친구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는 너 인생을 살아.'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릴까.
새벽녘,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복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를 버린 어머니에게, 나를 때린 아버지에게, 나를 가난하게 만든 세상에게. 그런데 그 복수의 칼끝은 정작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망가질수록 그들이 아파할 거라고 믿었지만,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살든 관심조차 없었다.
"이 모든 잘못이 내가 한 게 아닌데."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어서 깨달았다.
"그런데 정작 손해 보는 건 나뿐이네."
이상하게도 이 단순한 깨달음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래, 내가 태어난 환경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의 삶은?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후 퇴원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부모 탓을 하지 않겠다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부정한다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까웠다.
'천륜'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천륜이 뭐든, 존중 없는 관계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것이 부모라 할지라도.
특히 아버지와는 완전히 연을 끊기로 했다. 어머니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 삶에서 지우기로 했다. 사실 어머니도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다.
물론 그렇다고 자식을 버리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인 사고에서는 불효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웨인 다이어의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보는 대상도 바뀐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거였다.
나는 내 삶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혼자서도 살아남은 강한 사람으로. 가난한 환경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능력으로. 폭력의 상처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으로.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니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재구성'이었다. 같은 사실이라도 다른 틀로 보면 다른 의미가 된다. 나는 피해자의 틀에서 벗어나 생존자의 틀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술을 줄이는 거였다.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몇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 거다.
놀랍게도 친구들은 나를 다르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해해 주고 가까워졌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거 자체가 대단한 거야."
매일 아침, 나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넌 잘될 거야."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넌 대단해."
"오늘 하루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엔 어색했다. 마치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믿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도 근육처럼 단련하면 강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별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괜찮아. 잘 살았어."
이런 자기 격려가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말이 맞았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실패에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고, 내 삶은 내 것이다.
물론 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부모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평생 이렇게 살 거야?"
대답은 늘 같았다. 아니다. 나는 다르게 살 것이다.
할머니가 생각났다.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할머니는 끝까지 나를 지켜주셨다. 매일 새벽 교회에 가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셨고, 밤마다 내 방문 밖에서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벌 받는다. 정신 차려라."
할머니의 잔소리가 이제는 사랑으로 들렸다. 할머니는 내가 망가지는 걸 그냥 보고 있지 않으셨다.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걱정하고, 기도하셨다. 그것이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아들러는 인간에게 '창조적 자아'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에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믿는다. 내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내가 만들 수 있다.
병원 침대에서 시작된 이 깨달음은 내 삶의 분수령이 되었다. 환경 탓을 멈추는 것. 그것은 단순히 부모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었다.
손가락의 흉터를 볼 때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가장 아팠지만 가장 중요했던 날. 내가 진정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시작한 날.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가 산다."
이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한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