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망가지기 위한 방황

괜찮은 척 가면 뒤의 나

by 강훈

대학교 캠퍼스의 낮과 밤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낮의 나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이었다. 동아리 모임에서 큰 소리로 웃고, 선후배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아무도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몰랐다. 아니, 알 수 없도록 완벽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해가 지고 혼자가 되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술병을 붙잡고 거리를 배회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체육학과 학생들에게 덤비다가 처참하게 맞기도 했다. 술에 취해 칼로 손가락을 그었고, 지금도 그 흉터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창피하기 그지없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이 일종의 복수라고 믿었다.

"봐, 내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어.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야."

나를 버린 어머니와 지옥 같은 환경을 만든 아버지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내가 망가지는 것이 그들을 아프게 할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살든 관심조차 없었고, 결국 상처받는 건 나 자신 뿐이었다.


##이중생활이라는 방어막

"너는 정말 긍정적이야." "항상 밝아서 보기 좋아."

친구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크게 웃었다. 마치 '봐, 나는 아무 문제없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 웃음은 가면이었고, 그 밝음은 연기였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 패턴을 '생활양식(life style)'이라고 부른다. 네다섯 살 때 형성되어 평생을 지배하는 행동 양식. 나의 생활양식은 명백히 '회피형'이었다.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가짜 모습 뒤에 숨었고, 동시에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아들러가 말한 '남성적 반항'이다. 이는 약자의 위치를 거부하고 과도하게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심리적 기제다. 대학생이던 나는 술과 담배, 그리고 폭력으로 '강한 남자'임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약함을 숨기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야."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

이런 잘못된 신념들이 나의 생활양식을 지배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왜곡'이라고 부른다. 객관적 현실과 무관하게 자신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사고의 오류. 나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감정의 마비, 삶의 마비

브레네 브라운의 연구는 내가 겪었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녀는 "감정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킬 수 없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수치심, 공포, 실망감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술로, 거짓 웃음으로, 폭력으로 마비시키려 할 때, 우리는 동시에 기쁨, 감사, 행복 같은 긍정적 감정까지 잃어버린다. 나는 상처를 숨기려다 삶 자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매일 밤 술을 마시며 나는 점점 더 무감각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뭘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고, 몸에는 새로운 상처들이 늘어갔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여전히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

이런 이중생활은 나를 극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학교를 자퇴했다. 주변에는 "할머니를 돌봐야 해서"라고 둘러댔지만, 진실은 달랐다. 나는 그저 포기한 것이다.

"나 같은 놈이 대학 나와서 뭐 하나."

자퇴는 또 다른 자기 파괴였다. 미래의 가능성마저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이다.


##드라마가 보여준 거울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게 되었다. 조인성과 공효진이 주연인 이 드라마는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첫 회부터 나는 울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너져 내렸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너무나 익숙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다른 여자의 성관계를 목격한 아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 사랑받지 못해 삐뚤어진 영혼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내 인생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특히 주인공이 "나는 괜찮아, 다 극복했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이 나를 뚫어버렸다. 그동안 나는 상처를 극복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잔인하게도 진실을 보여주었다.

"알고 보니 상처가 그대로 있더라고요. 심지어 숨겨놔서 더 독하고 강력하게."

16부작을 보는 내내 나는 울었다. 처음으로 내 상처를 똑바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쿨한 남자', '강한 사람'인 척하며 숨겨왔던 진짜 나. 여덟 살에 버려졌다고 느낀 그 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서 울고 있었다.


##방어기제라는 이름의 감옥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들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라고 부른다.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전략이다.

나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을 통해 내면의 약함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상처받은 아이였지만 강한 어른인 척했고, 사랑이 필요했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 행동했다.

동시에 '행동화(acting out)'를 통해 내면의 고통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했다. 술, 싸움, 자해. 이 모든 것이 "나는 아파!"라고 외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외침을 듣지 못했고, 들었다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레네 브라운은 '비난(blame)'을 "아픔과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부모를 비난하고, 세상을 비난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비난했다. 하지만 비난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었다.


##단절에서 연결로

감정적 마비(emotional numbing)는 트라우마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뇌의 정서 조절 기능에 영향을 미쳐,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마비시켰고, 진짜 나와 연결되는 대신 가짜 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서 진짜 나는 질식해가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운 그날은 전환점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 상처를 인정했다. "나는 아직도 아프다"라고. "나는 괜찮지 않다"라고.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가면을 벗고 진짜 나와 마주하는 용기의 시작. 망가뜨리려던 내가 아니라 치유하려는 나로의 첫걸음이었다.

손가락의 흉터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복수하려 했던 어리석은 시절.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복수는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는 것이라는 걸. 상처받았지만 살아남는 것이라는 걸.

가면은 여전히 유혹적이다. '괜찮은 척'하는 것이 때로는 더 쉽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가면 뒤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진짜 나로 살아갈 때만이 진정한 연결과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망가지기 위한 방황은 끝났다. 이제는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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