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이 영화를 아주 어렸을 적에 봤다.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시리즈의 2탄이 1989년에 개봉을 했으니 정말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33년 전 영화다.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준 영화다. 그건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발명품들이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정말 혁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에 실현된 것들도 꽤 많다. 대화면 벽걸이 TV도 당시엔 상상의 산물이었고, 화상통화도 먼 미래에 벌어질 일이었다. 3D 영상도, VR 장치도, 하늘을 나는 택시도(요즘 드론 택시 기사를 보면 정말 신기하다) 상상 속의 일이었지만 어느새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화 속에 나온 여러 가지 발명품 중에서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았고, 아마도 앞으로 먼 미래에도 불가능한 영역을 꼽는다면, 단연 타임머신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도 갈 수 없다. 갈 수 없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과거든 미래는 그곳에 가서 뭔가 힘을 가하거나 조정을 할 수 없다. 과거를 바꾼다거나 미래에 먼저 가서 어떤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미래를 내다본다는 예언가나 점술사들도 미래를 본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바꾸는 시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바꿀 수 있다는 차원으로 주술이나 부적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술에 불과하다.
그저 단순한 일상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너무나도 흔하게 이런 말을 한다.
"저번에 네가 여길 왔어야 해"
"네가 여기 있었어야 해"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야"
무슨 소리인가?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그 말을 한 사람은 집에 타임머신이 있는 걸까?? 어차피 그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 지나간 과거를 붙드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어차피 존재하지 않아서 붙들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지난번'과 같은 차원은 시간도 공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재현되지 않는다. 어쩌면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말이다.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 상황을 후회하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다만 거기까지다.
가끔 혼자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이 조금 더 부자였다면'
'내 어린 시절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이다.
천만번을 그렇게 생각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그 생각을 몰두해서 정말로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집이 좀 더 부자였다면 현재의 내 삶이 훨씬 더 나아졌을까?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더 행복했을까? 좋은 친구를 만나면 내 삶이 더 나아졌을까? 그보다는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함에도 말이다.
정말 아쉬웠던 그 상황에서 아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한들 지금 현재가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충분히 더 나아질 수도,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렇게 좀 더 나아졌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불평과 아쉬움들을 내뱉고 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이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지금 바로 그 현재라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결정과 상황들이 지금 현재에 대한 어떤 설명이 되는 일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설명이 될 뿐이지 지금의 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쉬웠던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거부하고 부인하고 안 그런 척해봐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대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순간 과거를 생각하면서 우울해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좋음을 더 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