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오류지만 예쁘다
이제 10살이 된 둘째가 부쩍 그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오로라 보러 가는 게 소원이라면서? 그럼 멀리 가야 해? 오래 걸려?"
그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응, 오로라를 직접 보고 싶어. 근데 나중에, 아주 나중에 너가 크면 갈 거야."
며칠 뒤, 녀석이 또 묻는다.
"아빠는 왜 오로라를 보고 싶어?"
이번엔 차원이 다른 질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나에겐 오로라를 보고 싶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직접 보면 더 신비하고 아름다울 거라는 전형적인 기대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오로라는 잘못 태어났거든. 그런데도 엄청 예뻐. 정말 멋지지 않아?"
"잘못 태어난 건데 예쁘다는 건."
"에이, 그게 뭐야?"
그럴 만하다. 아이에겐 그 의미가 와닿지 않을 테니까.
오로라는 사실 '아름다운 오류'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즈마가 지구 자기장과 충돌하며 생기는 현상. 원래는 지구에 들어오면 안 되는 에너지가 침투하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오류가 만든 빛이 너무 아름다워 로마 신화의 여명의 여신 '아우로라(Aurora)'의 이름을 받았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종종 상처에서 태어난다"라고 했다.
일본의 킨츠기(Kintsugi) 예술처럼,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여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불완전함이 오히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와비사비(Wabi-Sabi)'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난 그 태생이 좋다. 일반적이지 않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것. 오류로 만들어졌지만 황홀한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부른다.
테데스키(Tedeschi)와 칼훈(Calhoun)의 연구에 따르면,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경험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한다. 상처가 단순히 상처로 끝나지 않고, 성장의 촉매가 되는 것이다.
오로라를 보고 싶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남들처럼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내 삶. 어쩌면 '오류'처럼 보일 수 있는 이 삶도 오로라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다.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니고, 그런 남편을 피해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난 엄마.
그 후에 만난 10명의 새엄마들은 한 명 한 명 바뀔 때마다 그 자체로 날 망가뜨렸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덮어 두고 싶기만 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모습 아닌가.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취약함은 용기의 가장 정확한 척도"라고 했다. 우리가 숨기려 하는 상처와 부족함이 사실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이다.
살아온 시간 속 상처들을 수치스러워하며 숨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안다.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도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한다는 걸. 반대로 우리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드러낼 때, 그것은 놀라운 힘이 된다.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다. 그래서 빛이 들어올 수 있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자신의 태생이 오류임을 알면서도 하늘에 당당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오로라처럼.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니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언젠가 극지방의 차가운 밤하늘 아래 서서, 춤추는 오로라를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봐, 너도 나처럼 오류로 태어났구나. 그런데 정말 아름답다."
그나저나 정말 언제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