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춤추기

by 강훈

말 그대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를 부를 수는 없다. 아침이 싫다고 곧장 저녁으로 바꿀 수도 없다. 이런 당연한 것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너무나 명백해서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우산 없이 약속 장소로 가던 날이었다. 지하철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짜증 낼 만한 상황이다. 소나기는 금방 그칠 테지만, 기다리면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비를 맞고 약속 시간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기다릴 것인가.

그런데 또 다른 선택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짜증을 낼 것인가, 아니면 즐겁게 받아들일 것인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그는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나는 비를 맞고 약속 시간을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선택했다.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비를 흠뻑 맞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할까?'

생각해 보니 그런 경험은 자주 있는 게 아니었다.

이왕 비를 맞는 것,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의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대부분의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소나기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 빗속을 걷는 내 마음가짐은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더 큰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날씨와 달리, 이건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도 이런 통찰을 얻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하나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다."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의 평온기도문은 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통체증에 갇혔을 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앞차를 욕하며 혈압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예상치 못한 휴식 시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교통체증 상황에서 팟캐스트를 듣거나 호흡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40% 낮았다.

같은 상황, 다른 선택, 다른 결과.


불교에서는 이를 '수용(Acceptance)'이라 부른다. 수용은 포기가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는 말로 어떤 상황에 관계없이 만족하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다.


심리학자 마샤 리네한(Marsha Linehan)이 개발한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의 핵심도 '근본적 수용(Radical Acceptance)'이다. 바꿀 수 없는 것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UCLA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를 하면 실제로 뇌의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편도체의 반응이 감소한다. 즉, 우리의 해석이 실제로 뇌를 바꾸고,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한다.


존 카밧진은 말했다.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서핑을 배울 수는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내 선택이다.


비가 와서 계획이 틀어졌을 때,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빗속을 걷는 특별한 경험을 즐길 수는 있다. 병에 걸렸을 때, 병을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결정할 수 있다. 교통체증에 갇혔을 때, 차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삶의 품격은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로 결정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짜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날 빗속을 걸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산이 없어도, 비를 피할 수 없어도,

나에겐 여전히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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