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은 나다
분명히,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부모 덕분이다. 그것이 '덕분'이든 '때문'이든, 내 존재의 기원은 부모에게 있다. 유전자를 통해 성격이나 체질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조차 그것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좋은 것만 골라서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건 부모에게도,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라고 했다.
그의 개인심리학은 '목적론적 관점'을 강조한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목적이 현재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다. 성인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책임'과 '권한'의 차이다. 책임은 돌봄이지만, 권한은 통제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삶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원하는 걸 할 때는 "내 인생이니까!"라고 외치지만, 뭔가 잘못되면 "부모가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라고 탓한다. 키가 작은 것도, 살이 찌기 쉬운 체질도, 모두 부모 탓이라고 한다.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도 형제자매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범 죄 관련 뉴스를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한부모 가정이나 보육시설의 모든 아이들이 잠재적 범죄자란 말인가?
심리학자 에미 워너(Emmy Werner)의 카우아이 종단연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중 3분의 1은 오히려 평균 이상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부유한 부모를 둔다고 행복이 보장되는가? 대기업 회장의 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상류층 부부가 이혼 소송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반대로 가난한 환경에서도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제임스 팰런(James Fallon)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그는 자신의 뇌를 스캔하다가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를 가졌다는 걸 발견했다. 게다가 가계도를 조사해 보니 7명의 살인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저명한 과학자이자 사랑받는 가족의 일원이다. 그는 말한다.
"유전자는 총알을 장전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건 환경과 선택이다."
심리학의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적 귀인'을 한다. 즉, 결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반면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외적 귀인'을 한다. 부모 탓, 환경 탓, 운명 탓.
정신분석가 칼 융(Carl Jung)은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선장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타고난 조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배를 어디로 몰고 갈지는 결정할 수 있다.
부모가 교수여도 내가 꼭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가 청소부여도 내 미래가 정해진 건 아니다. 부모가 이혼했어도 내가 사랑에 실패할 운명은 아니다. 부모가 나에게 최신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아도 내 인생이 불행한 건 아니다.
사르트르(Sartre)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고 했다. 이 자유는 때로 무겁고 두렵다. 더 이상 탓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해방이다. 내 삶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사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당신의 열등감에 대해 당신만큼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그만 부모를 탓하고, 당신의 삶을 살아라."
내 삶은 부모의 것도, 자녀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나의 것이다.
부모가 날 만들었을지 몰라도, 날 결정할 수는 없다. 내 삶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뿐이다.
그것이 때로는 버겁더라도,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