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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sian Dec 12. 2022

두긴의 지정학을 통해 살펴 본 푸틴의 패권 전략 (3)

지난 글에서는 두긴의 지정학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독일, 일본 및 이란의 세 개의 추축이 있음을 밝혔고, 그 중 독일과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을 개략적으로 밝혔다. 이번에는 이란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법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對중동 및 중앙아시아 전략을 정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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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긴은 키에프에 기반한 유럽적 레거시와 더불어 북방 유라시아의 유목민적인 레거시가 러시아 정신문명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의 우라늄, 카프카스의 유전 등 에너지, 자원은 러시아의 핵심 이익이 된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관문이 되는 중동에 대한 해양 세력의 침투를 저지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부각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체첸, 조지아에 침공하여 중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수단의 활용도 불사한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각인시켰고, 시리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등에도 군사력을 투사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저주가 되는 광활한 영토와 기나긴 국경선의 부담을 감안할 때, 러시아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러시아와 협력할 니즈가 확고한 중동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하게 되었고, 현재 앵글로 색슨과 처절하게 항쟁하는 이란은 러시아에게 둘도 없는 유효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두긴은 주장한다.


우선, 러시아에게 있어서 이란이 가지는 가치는 다음의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하나는 러시아의 숙원인 부동항의 확보와 인도양으로의 진출이 이란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이란이 중앙아시아로 침투하는 해양세력에 대항하는 방파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중동에 강력한 군사적 거점을 확보한 미국에 군사적으로 대항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전자보다는 후자의 관점에서 이란의 가치가 부각된다. 즉 만약 이란에 과거의 팔레비 왕조와 같은 친미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란 접경의 투르키메니스탄을 위시한 일련의 ‘스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침투를 저지할 방파제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현재의 시아파 이란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은 중동 주둔 미군이 아니라 터키(개인적으로 튀르키에라는 새로운 국명이 아직 불편하여, 그냥 친숙한 명칭인 ‘터키’를 계속 사용하겠다.)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그리고 두긴 역시도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두긴은 자신의 저서에서 터키에 대한 지정학적인 쇼크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쿠르드나 아르메니아인 등을 이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두긴의 주장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터키는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들이 있다. 전통적으로 터키와 러시아는 캅카스에서의 오랜 경쟁자이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는 캅카스를 두고 나이팅게일의 활약으로 유명한 크림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실리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현재의 터키는 공식적으로는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에서는 러시아는 정부군을, 터키는 반정부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도 터키는 아르메니아를,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터키가 러시아에게 주는 진정한 어려움은 단지 국지적인 잇권 다툼 이상의 보다 전략적인 영역에 있다. 우선 터키는 자신들의 내해인 보스포러스 해협에 어떠한 해군 함정의 통과를 금지시키고 있는데, 이로서 러시아의 흑해 함대는 터키와 일전을 불사하지 않는 이상, 흑해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말하자면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더불어 터키는 최근 이른바 범튀르크주의를 내세우면서 팽창주의 노선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의 일체성과 모순되는 논리가 됨과 동시에, 중앙아시아의 ‘스탄’ 국가들을 러시아로부터 분리시키는 원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The Organization of Turkic States 즉 이른바 Turkic Council이 현실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른바 튀르크 경제권이라는 실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튀르크 문화의 정체성을 가진 국가들 중 가장 국제적 영향력이 높은 터키가 튀르크 국가들(주로 ‘스탄’ 국가들)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Flag map of the Turkic World


현재 The Organization of Turkic States의 공식 회원국들은 아제르바이젠,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며, 헝가리, 북키프로스, 투르키메니스탄 등이 옵저버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독립국가 이외의 집단까지 범튀르크주의의 영향권을 넓혀보면 중국의 신장 위구르(소위 동투르키메니스탄), 러시아의 타타르 공화국까지도 범튀르크주의의 영향권에 속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범튀르크주의는 사실 아무런 근거 없는 정치적 수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터키부터, 아제르바이잔, 카자스스탄을 거쳐 위구르까지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 내지 유사성이 실재하고 있다. 언어적으로는 부분적으로 통역 없이 상호 부분적인 소통이 가능하기까지 하며, 이들 국가나 지역 내 구성원들도 터키의 선진 문화를 TV를 통해 즐기면서 상호간에 정서적인 일체성이나 친밀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의 입장에서 터키의 존재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심지어는 러시아의 국가적 일체성까지 침해할 위협요소가 되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비록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하였지만, 쇠퇴하는 경제력과 광활한 영토와 긴 국경선이 족쇄가 되면서 지정학적으로는 수세에 처해 있다.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은 수세적으로 몰리게 된 상황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거대한 영토로 인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비자발적으로 주요 지정학적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현재 기후변화로 북극해가 서서히 녹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라시아의 중심이 되어 버린 러시아가 유라시아를 분열시키려는 영국과 미국에 저항하기 위해 독일, 일본 및 이란과 협력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유라시아에 침투하는 해양 세력을 저지해야 하는 대륙 세력의 입장에서는 이미 해양 세력에 잠식되어 버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는다면, 두긴이 생각하는 유라시아적 정신 문화와 전통의 근간은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된다. 


사실, 현재 러시아를 공격하는 영국과 미국이 패권전쟁에서 상정하고 있는 최종 타겟은 중국이며, 애초에 러시아는 중간 목표물 이상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껏 논한 러시아의 전략적 입장은 사실상 중국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물론 중국은 스스로가 동아시아의 주요 플레이어인 이상 일본과의 협력은 불필요하지만, 현재 독일은 러시아 대신 중국에 접근하면서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반색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 핵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중국과 이란의 협력 관계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비록 러시아가 중국과 역사적인 경쟁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영향권 내로 포섭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점진적인 쇠퇴 양상을 고려하면, 향후 두긴의 이상과 전략은 중국을 통해서 실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특유의 지정학적인 관점에 대해서도 별도로 논의해 볼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러시아 또는 중국의 이러한 지정학적 인식에 근거하여, 영국과 미국이 현재 취하고 있는 패권 전략의 골자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현재 이란에서는 히잡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그 배후에 영국과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히 히잡 시위로 영국과 미국은 지정학적인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전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파괴한 것이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아마도 그 실상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해당 파이프라인이 파괴되면서 독일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미국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독일은 현재 중국과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영국과 미국이 독일에게 기대하던 바람직한 형태의 반응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독일의 이러한 움직임에 영국과 미국이 어찌 대응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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