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직후, 본 블로그에서는 보리스 존슨 영국 수상의 퇴임과 아베 사망 이후의 국제 정세를 예측했었다. 지난 글을 읽어 보았다면 새삼 느끼겠지만, 지난 한 달간의 국제 정세는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대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의 전황은 이제 세계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고,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직후 벌어진 선거에서 당연히 자민당이 압승하고 이제 개헌을 통한 재무장으로의 행보가 노골화되고 있다.
최근 일본 기시다 정권은 아베 전총리의 장례식을 9월 27일에 국장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른바 ‘시체 팔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망 후 두 달이나 지난 이례적으로 늦은 시점에 일본 국민 53%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베의 국장을 추진하는 상황은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이는 분명히 아베 추모 분위기를 올해 연말까지 최대한 길게 끌면서 일본 재무장 등 일본의 예민한 현안들에 아베 추모의 후광을 활용하고자 하는 노림수이다. 게다가 아베의 장례식에서 세계 주요 정치인들이 조문하는 이른바 ‘조문 외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러시아의 연합 전선에 대항하는 서구 진영이 구성원들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아베의 사망을 최대한 ‘우려 먹는’ 모습을 조만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미국 권력 서열 3위의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현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에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를 요격하겠다는 협박까지 불사하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고,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떠난 후에도 타이완 섬을 사실상 포위하고 실탄 사격훈련까지 감행하면서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 현재 양안의 긴장감은 역대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데,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상황을 미국이 의도적으로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국 하원에서도 올해 11~12월경에 대만을 방문할 것이라는 가디언 지의 보도[1]까지 나오면서, 이른바 앵글로 색슨이 협력하여 중화민족을 공격하는 지난 역사의 한 장면까지 다시 연출되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미국(또는 앵글로 색슨)의 대만에 대한 간섭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따지고 보면, 실상 양안전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왜냐하면 만약 미국이 대만 정국에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대만에게는 결국 자연스럽게 중국의 일부로 흡수되는 구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만의 반중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2016년 차이잉원 총통의 정권 교체 전까지만 해도, 당시 여당이었던 대만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교류하는 온건한 친중 노선을 걷고 있었다. 당시 대만은 사실상 일국양제를 인정하면서 중국의 일부가 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을 위시한 서구 진영은 중국이 지배하는 대만의 현상을 변경하기로 마음 먹었고, 이에 대만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맥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과 대만의 실상을 보면, 양국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서로 극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래 표는 2021년 4분기까지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반영한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순위이다. 국적별로 분류하면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위시하여 UMC, PSMC, VIS이 대만 국적이다. 그리고 SMIC, HuaHong Group, Nexchip이 중국 국적이다. 즉 세계 10대 파운드리 업체 중 7개가 대만과 중국 국적이다. 중국과 대만 국적이 아닌 파운드리 업체는 삼성전자과 이스라엘 국적인 Tower Semiconductor, 미국에 본사를 둔 GlobalFoundries의 3개 업체뿐이다.
세계 10대 파운드리 업체 매출 순위 (2021년 4사분기)
따라서 TSMC의 기술이 중국으로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미국 정부의 의심이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최근 중국의 SMIC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뚫고 7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개발에 성공하면서 백악관은 또 다시 TSMC의 기술 유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유출이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인 것은, 대만과 중국은 결국 동일한 언어를 쓰고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는 동일한 또는 매우 가까운 역사적, 문화적 및 민족적 배경을 가진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아무리 정치체제가 다르다고 해도, 경제 및 문화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남북한과는 천양지차로,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으로서 오랜 기간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남북한에서조차 대북송금을 통해 현재 서서히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니 중국과 대만의 경제적 결속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미국이 대만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본토의 노동력과 홍콩의 자본력을 대만의 기술력과 결합하는 무서운 역량을 보유하게 된다는 결론이 된다. 특히 반도체 기술은 미사일, 전투기, 잠수함 등 모든 무기 개발의 핵심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대만과 중국을 분리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전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현재 공세적인 입장은 미국이고, 중국이 수세에 몰려있다는 것이 정확한 상황 판단일 것이다. 따라서 흔히 이해하듯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만을 침략하는 공격 측이고, 이에 대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는 수비 측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미국이 통제하는 전세계 주류 미디어가 연출하여 만들어낸 이미지 메이킹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흔히 전쟁을 일으키는 쪽이 악(惡)으로, 그리고 침략을 당하는 쪽을 선(善)으로 인식한다.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마블(Marvel)의 만화나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현실이 반드시 그러한지는 명확하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이 외부의 간섭이 없는 대만에는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세계 제2위의 강대국인 중국이 막강한 구심력을 미치고 있다. 즉 그대로 내버려두면 대만은 당연히 중국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아니 대만은 이미 중국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한 판단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단 대만에 대한 중국의 지배가 확고해지면, 대한민국의 삼면의 바다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바다, 그리고 서태평양에 중국의 핵잠수함이 출몰할 것이다. 현재는 비교적 수심이 얕은 대만해협에서 미국이 중국의 잠수함을 감시하고 있지만, 일단 대만이 중국에게 넘어가면, 대만과 괌 사이의 심해에서는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의 잠수함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중국의 잠수함이 대만해협을 돌파하는 순간, 중국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흔적을 효과적으로 지워나갈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게 된다. 이른바 제1, 제2 및 제3 도련선이 순차적으로 돌파 당하는 것이다.
제1 도련선 및 제2 도련선
이제 괌의 미군 기지는 그 존립을 위협받게 될 것이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자신들의 안마당에서도 중국 핵잠수함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진전되면서 한반도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을 서서히 압도하면서 중국이 한국을 서서히 흡수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될 것이며, 오직 일본만이 오키나와와 센가쿠 열도를 놓고 중국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하는 양상을 초래할 것이다. 말하자면 대만은 와인이 흘러나오지 않게 막는 코르크 마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만이 열리면, 와인이 바닥에 쏟아지는 것처럼 중국의 핵잠수함이 아시아 전역의 바다와 태평양으로 쏟아져 나오고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흥미롭게도 미국은 스스로 자신의 군사력이 약체화 되어 있음을 끊임없이 공론화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In Taiwan war game, few good options for U.S. to deter China(대만 워게임에서,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좋은 옵션이 거의 없다)”[2]와 같은 헤드라인이 미국의 주류 미디어를 통해서 수시로 노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극초음속 미사일 역량에 있어 중국이 미국보다 경쟁 우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미국의 주류 미디어를 통해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그 정보 제공 방식 역시 본의 아닌 유출로 보기 어려운데, 미국의 약체화를 강조하는 뉴스가 주류 미디어를 통해 과도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고, 미국 정부나 군 당국 역시도 미국 군사력의 약체화에 대한 공론화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군사력의 약체화를 널리 알려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의 도발 가능성 제고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침공을 유도하기 위해 진주만에 대한 헛점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 일본의 도발이 필요했던 미국은 진주만 방어의 헛점을 노출하여 미국을 두려워하던 일본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만 방위에 있어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스스로 폄하하는 모습에서 과거 일본 제국해군을 상대하던 미 해군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일종의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대만은 이미 중국의 일부나 다름없으며, 미국(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미국은 끊임없이 대만 주변의 위기를 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안전쟁을 원하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은 중국의 침략 유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낸시 펠로시가 굳이 대만을 방문하여 중국의 도발을 유도하는 상황이 이해가 될 것이다.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중국을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다. 게다가 격화되는 양안의 긴장 상황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전쟁은 어떻게든 대부분 현실화되었다는 측면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양안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다음 번 양안전쟁과 관련한 글에서는 양안전쟁과 관련한 미중 간 득실, 양안전쟁 이후의 세계, 양안전쟁에 대해 한국이 취해야할 스탠스 등에 대해서 논의해 볼까 생각 중이다. 양안전쟁은 현재 그 어떤 이벤트보다도 중차대한 사안이니만큼 한두 번의 글로 정리되기 어려울 것이다.
[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aug/01/british-mps-plan-visit-to-taiwan-as-tension-with-china-simmers
[2] https://www.washingtonpost.com/national-security/2021/10/26/us-taiwan-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