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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21. 2024

미성년자는 아니시죠?

배달기사님이 하신다면 좋을 멘트

내 나이 마흔 하고도 넷인가 다섯인가 여섯인가. 

내 나이 나조차 모르고 산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다. 남편은 야근이고, 일찍 자야 키가 쑥쑥 큰다는 달콤한 협박으로 아이 둘 다 일찌감치 재우고 나 홀로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간단한 야식 하나 시켰다. 야식만 먹으면 뭔가 심심할 것 같아 소주도 같이 메뉴에 담았더니 음식 수령을 직접 해야 한다고 안내가 나온다.


신분증을 보여 줘야 해서다.


그동안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신분증을 굳이 확인하자 하신 배달기사님이 없으셨기에 이번엔 애초에 신분증을 꺼내놓지 않았다. 


만일 내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다면 모르겠다만 내 나이쯤 되면 얼굴이 곧 신분증이다.


이것저것 샅샅이 뜯어볼 필요도 없이 얼굴만 힐끗 보아도 대충 몇 살인지 짐작 가능하므로 나이를 확인할 때 필요한 신분증은 슬프게도 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 달라 했거늘 나의 메모는 쓰자마자 휘발되는 것인지 우렁찬 초인종 소리에 쯧쯧쯧 혀를 차며 나는 잽싸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어서일까.

음식 받느라 고개를 숙여서일까.

아님 내 체구가 왜소해서일까.

머리가 단발 이어서일까.


배달기사님이 내게


"저어 신분증..."


하고 말씀하신다.


 슬며시 웃음 지으며


"굳이 신분증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하며 옛다 나의 신분증 하는 식으로 고개를 들어 얼굴을 살짝 보여주었다.


저녁나절에 샴푸향이 은은히 나도록 머리를 감은 데다

세수도 뽀독뽀독 깨끗이 해서 그런가.

아님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라 그런가.


다시 돌아오는 귀를 의심케 하는 질문.


"미성년자는 아니시죠?"


하고 묻는다.


"예에에?"

ㅋㅋㅋ


보통 립서비스를 할 땐 얼굴에 티가 부쩍 나면서 "저 지금 립서비스 들어갑니다~" 하는 표를 확실히 내는 데다 웃음까지 장전하기 마련인데, 웃음기가 싹 빠진 진지한 표정의 질문에 오히려 내쪽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의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듣고는 뒷머리를 긁적긁적하시며 뒤돌아 가시는 배달기사님.


문을 닫고 상에 음식을 놓으러 가는 길에 왠지 어깨가 으쓱으쓱하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니지, 이 정도면 적게 산 건 아닌데 ㅋㅋㅋ

내 나이를 착각하는 상대방의 이런 질문은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배달기사님 혹시 노안이신가 슬며시 걱정도 해 드려 보면서 어쨌든 기부니가 참 좋은 하루였다.


조금 식상하긴 하지만 배달기사님들이 이벤트성으로 "미성년자는 아니시죠?"라고 한 번씩 말씀해 주시면 무료한 하루가 반짝 빛날 것도 같고, 표정 없던 하루 끝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할 것 같다. :)




위 사진 작성자 아님 주의.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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