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딸아이는 학교 결석하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것 같다며 그 좋은 에버랜드도 별로 안 내킨다고 안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수능 전날(2024년 11월 13일)은 딱히 중요한 수업도 없는 데다 단축수업까지 한다고 해서 다행히 부담 없이 에버랜드를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남편은 마침 비번이고 아이들 둘 다 없다면 무엇을 한다?
오래간만에 당일치기 데이트를 간다! Go Go~
"우리 어디 갈까?" 물으니
"글쎄. 단풍 구경하러 갈까?" 하며 남편은 폭풍 검색을 했어요.
그리하여 결정된 가벼운 당일치기 여행지는
<문광저수지>
위치> 충청북도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 3-8번지
문광이라, 문광...
문광이면 달빛이 되는 건가.
피아노 선율에 고독이 배어 잔잔한 월광소나타도 있고, 1300살 먹은 아이유가 나오는 호텔 델루나의 개기월식도 생각이 나네요.
아무튼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문광저수지였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꽝입니다. 꽝! ㅠ
보고 싶었던 노오란 은행잎은 죄다 어디 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것이지요. 한발 늦었으... 좌절...
뭐 그래도 갔으니까 좋다. 하늘빛, 물빛, 하늘의 구름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와 쾌적한 습도, 살랑거리는 바람 그 모든 게 완벽했으니까.
은행잎은 바닥에 모두 떨어져 있었지만 은근하고 구수한(?) 은행 내음은 맡을 수 있었다. >.<
방문한 날은 2024. 11. 13일 어제인데요.
딱 일주일 전에만 갔어도 노란 은행잎이 듬뿍 달린 나무들 사이로 영화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우니까 근사한 남의 사진 하나 첨부해 보자면
원래 이래야 하는 건데 망했쥬?ㅎㅎ
실망을 뒤로하고 다음 풍경을 둘러보았습니다.
저수지 둘레에 낚시터가 있고 물 위에 떠 있는(?) 낚시터도 있었는데요. 아마도 저기는 밤낚시도 가능한 1박 2일용 낚시터겠죠?
마치 물 위로 걷는 느낌이 나는 낚시터 길인데요. 저 길 위에 초록색의 네모난 것은 뭐지? 하고 사진을 확대해 보았더니 아~ 화장실이네요. ㅎㅎ
집이 왜 물 위에 떠있지? 낚시를 1도 모르는 저는 저것을 '수상 좌대'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처음 알았습니다. ^^
제가 사진을 잘 못 찍는 똥손으로 유명한데 크으... 뭐 대충 찍어도 구도는 괜찮았죠?
물속에 잠긴 나무의 희귀한 광경도 감상하고요.
비록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을 만끽하진 못했지만 산에 핀 울긋불긋한 올해의 끝자락 단풍은 눈에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저수지 주변으로 크게 둘러져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광합성을 좀 해주고.
걷다 보니 이렇게 풍경과 딱 어울리는 이동엽 님의 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인데 무척 서로를 그리워하는 걸 보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나 봅니다. ㅠ 옆지기가 내 옆에 있을 때 더 잘해야겠구나 마음을 먹었어요. (자기도 나한테 잘하자? 기브 앤 테이크 알지?)
황금빛 벼가 금물결 쳤을 모습을 상상하며 텅 빈 논을 보고 있자니 대하소설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오는 설움 많은 소작인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하고 매우 예의를 갖추어 부탁하시더라고요. (자식뻘 되는 사람들에게 공손한 존대는 저를 더욱 예의 바르게 만들어주네요.)
사진을 찍고 싶은 건
아마도 몇십 년을 함께 한 아내와 또 하나의 추억을 마음에 꼬옥 담고 싶어서였겠죠.
정성을 다해 찰칵찰칵 찍어드리면서 우리 부부도 이다음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그날이 오겠지 싶고... 그날이 되어서도 서로에게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싶어집니다.
이 사진에 우리 부부가 보이는데요. 어디 있을까요?
한 복판에 개미만 한 그림자 둘이 저흰데요.
그중 작은 개미는 저, 큰 개미는 남편입니다. ^^
사진은 역광으로 찍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저는 아랑곳 않고 햇빛과 맞서 셔터를 찰칵 눌러주었고요.
마찬가지로 햇빛과 맞서 싸워 끝내 이긴 사진입니다. 아이 눈부셔.
산책로를 걷는데 <소금문화관>이 보이네요.
곤충박물관이나 식물원 등등은 종종 가 보았지만 소금 주제는 처음 보는지라 신선해서 냉큼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요.
동절기(11월~2월)는 4시가 입장 마감이라 시간이 늦어 들어가 보질 못했어요. 아쉽...
소금을 맷돌에 갈아보는 체험도 가능하고 내가 간 소금은 통에 담아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던데 다음엔 꼭 아이들과 함께 시간 맞춰 와 봐야겠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샐까. 역시나 방귀대장 뿡뿡이 남편이 밀폐된 공간에서 만행을 저지른 거겠지 싶어 "또야?"라고 물어보려는데 남편이 먼저 제게 말을 겁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차 안에서 냄새나는 거야, 밖에서 냄새가 들어오는 거야? 아니면 우리가 은행을 밟은 거야?"
웬만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남편의 이 말은 참말이기에 저는 제 신발 밑창을 얼른 보았는데요. 별다를 게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몇 안 되는 은행 열매를 밟았고 보이지는 않아도 냄새는 딸려 온 모양입니다.
은행길을 걷고 돌아갈 때는
차 타기 전에 반드시 발을 탁탁 털고 타야 하는구나
한 가지를 또 배웁니다~
소소한 여행길
나뭇가지에 듬뿍 걸린 노란 은행잎도 못 보고, 시간을 맞추지 못해 소금문화관도 입장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은행의 구수한(?) 내음새와 함께니까. ㅋ
하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혹시라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을 기대하고 계시다면 2024년 올해는 끝, 내년을 기약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마도 내년엔 지금보다 더 발달한 A.I한테 "괴산의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에 가기 좋은 날은 언제야?" 하고 물어보면 "네에~ 올해는 언제 언제가 딱이에요~" 하고 적당한 날을 선택해서 알려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