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편도 1차로의 도로가 많다. 그래서 도로 공사를 하게 되면 한쪽 차선을 막고 공사 구간의 양 끝에 있는 안전요원들이 차량 통행을 한쪽씩 통제하며 공사를 진행한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도 도로 공사가 자주 있는데 하루는 공사구간 앞에서 안전요원이 차를 막아섰다. 반대편 차량들이 다 지나가고 나서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출발하려는 찰나, 안전요원이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기다려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안전요원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사한 것인지 업무상 지시를 받아서 인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인사가 적절한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의 인사였지만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안전요원으로서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기 위함이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의 인사를 흔쾌히 받기 어려웠다. 인사를 받고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랄까? 그분은 하루 종일 자신의 일을 하면서 몇 번의 인사를 해야만 했을까?
강원도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리조트 안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버기'에 리조트 직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 그 직원분이 운전 중 나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두 차량 모두 서행중이었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굳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리조트 직원의 서비스 정신이라기보다 서비스를 빙자한 리조트 직원에 대한 횡포로까지 느껴졌다. 리조트의 안전을 책임질 직원들에게 안전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사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 배웠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가르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제대로 인사할 줄 알아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사의 방법들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악수로 인사를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손으로 자신의 중요부위를 만지면서 악수를 했다고 한다. 중세시대 기사들도 악수를 했는데 이는 모두 자신은 무장하지 않았고 공격 의사가 없음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한 하나의 신호였다. 어떻게 악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어 원서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주먹 악수를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첫인상을 좌우하는 인사에 사람들은 많은 공을 들인다. 관계의 시작을 제대로 하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소개했던 공사현장과 리조트 직원의 인사는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어린 입주민에게까지 고개 숙여 인사시키는 일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일이다.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 무조건 옳은 것인가? 그것이 직업윤리와 안전에 대한 필요를 상회하는 가치가 있는 것인가?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